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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세상이 바뀔 일은 없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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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세상이 바뀔 일은 없다. 하지만…"

[강연회] <삼성을 생각한다>의 저자 김용철 변호사

검찰 특수부 검사였다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까지 지낸 한 변호사가 책을 냈다. 아마 대개의 경우 자신이 성공하기까지의 궤적과 보통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검찰과 기업의 후일담으로 채워지고, 몇 개의 광고가 나간 후 지인과 이해관계자들이 참석한 출판 기념회로 판촉에 들어갈 것이다. 대형서점 한편에 자리잡은 수많은 '성공신화' 속에서 어느 순간 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엔 조금 다르다. 재계의 가장 은밀한 내용이 담겼지만 주요 일간지들은 출판사의 광고 의뢰를 거절했다. 책의 내용을 소개한 한 일간지의 기사는 얼마 후 포털 검색에서 사라졌다. 누리꾼들이 '트위터'를 통해 출간 즈음의 우여곡절을 소개하고, 지면광고에 실리지 못한 광고 시안을 자신들의 블로그에 게재하며 홍보에 나섰다. 광고를 싣지 않은 언론사와 저자가 근무한 대기업에 대한 '뜬소문'이 나돌자 언론사와 대기업이 먼저 나서 '해명'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 수 만 부가 팔려나갔다. 그가 폭로했던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일가의 비자금은 특검 수사를 거쳐 이 전 회장의 '합법적인 자산'으로 둔갑했고, 불법 로비 의혹 역시 무혐의로 종결됐다. 그에게 남은 것은 일각에서 붙인 '배신자'라는 딱지와 고독한 삶이다. '삼성 특검' 이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중의 시각에서 비켜났던 그가 <삼성을 생각한다>를 계기로 다시 그들 앞에 섰다.

▲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일간지의 광고 거부 속에서도 누리꾼들의 자발적인 홍보를 통해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미네르바 박대성도 잡혀들어갔는데 이 책이면…"

9일 서울 중구에 있는 청어람 아카데미에서 열린 김용철 변호사와의 저자 간담회에는 정원의 2배가 넘는 200여 명의 청중이 몰렸다. 주최 측이 강연장 화면을 스크린에 띄워 생중계하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할 정도였다. 17대 국회에서 '삼성 저격수'라는 별명이 붙었던 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도 자리를 함께했다.

인터넷 서점가에서 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책의 인기는 높지만 정작 저자인 김 변호사는 "발간한 날부터 소화도 안 되고 잠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미네르바 박대성도 잡혀 들어갔는데, (이 책이면) 나는 수백 번 들어갈 것"이라고 책의 여파에 신경이 쓰인다고 털어 놓았다.

김 변호사는 "(제기한 의혹들이) 특검이라는 공적 절차에 의해 사실무근으로 밝혀졌고 일부 유죄인 것도 대통령이 직접 없애줬는데, 논픽션으로 알고 울분을 토할까봐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책을 안 드리고 있다"며 "그냥 픽션(허구적 이야기)으로 봐 달라"고 특검 수사 결과와 이건희 전 회장 사면에 대해 비판해 청중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대법원까지 가서 결정된 사안을 다시 뒤집어 나온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은 아이러니다. 동시에 '삼성 특검'의 결과가 국민의 법 상식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검사 출신임에도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은 없다"고 믿는 까닭이다. "이 책으로 세상이 바뀔 일은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우리들의 후손이 사는 세상은 좀 더 나은 곳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하는데 하나의 자료로 활용되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었다.

▲ 간담회장에 들어가지 못한 청중들이 별도의 공간에서 김용철 변호사의 발언을 스크린으로 지켜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내 아이들이 대한민국에서 취업 안 되는 거 알아"

장래의 계획에 대해 그는 "날마다 고민하지만 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출가해서 세속을 떠나는 것부터 이민까지도 고려해보았다고 했다. 경력이나 출신과 무관하게 소시민의 삶을 살고 싶어서 인터넷 검색으로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살펴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간담회 도중에 반복해서 "내가 할 일은 다 끝났다"고 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속에 책을 완성했고, 어느 정도 호응을 얻은 만큼 남겨진 문제를 풀어나갈 주체는 다른 이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그들이) 썩어서 뇌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편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고 내가 이런 처지에 빠질 걸 알았으면 검사 시절, 삼성 시절에 자살했을 거다"라며 "예지력이 없으니 지금까지 살았고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나쁜 짓을 할 수는 없고…여러분도 나쁜 짓 할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량하게 사는 거 아닌가"라고 농담을 던져 좌중을 다시 웃음 짓게 했다.

그는 "가끔 저에게 자기 회사의 회계부정을 가져와 조언을 구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이 날 찾는 이유는 그 후의 상황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며 "내 아이들이 자기가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취업이 안 될 거라는 걸 나보다 먼저 알았는데 애 망친 아비가 과연 아비인가. 이건 하소연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거로 생각하며 감수했다"고 덧붙였다.

"정계 진출? 걱정할 필요 없다"

▲ 김용철 변호사는 정계 진출설에 대해 단호히 부정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하지만 그에게 그 이상을 기대하는 청중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공익 제보자'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만큼 이에 걸맞은 활동이 있어야 하냐는 물음에 그는 "기왕에 나섰으니 죽으라는 얘긴가. 인터넷에서 '지방선거 전에 태도를 결정하라'는 댓글도 봤다"라며 웃었다.

몇몇 이들은 보다 직접적으로 정계 진출 의향을 묻기도 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의 뜻은 확고했다. 얼마 전 한 시사주간지에서 삼성 에버랜드가 있는 용인에서 시장 후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하자 펄쩍 뛰었던 그다. 그는 "그쪽에 관해선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며 "(여의도는) 담벼락 두르고 안에서 몇 명만 끄집어내면 바로 교도소다. 책에도 썼지만 정치권에서도 (로비를) 안 받은 사람이 몇 명 없는 곳인데 내가 거길 왜 가나"라며 부인했다.

그는 "내가 레지스탕스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일뿐더러 남은 역할은 국회, 금융감독원, 검찰에 다 있다"라며 "여러분 역시 나중에 책임 있는 자리에 올라가서 그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판단하면 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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