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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노무현'을 기다리며

[기고] 노무현의 '부동산 전투'를 기억한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생각난다.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벌인 2차 포에니 전쟁은 기실 한니발 개인과 로마 민족 전체의 싸움이었다. 한니발은 전쟁의 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완벽한 승리라고 불리는 칸네전투를 비롯해 연이은 대승으로 로마를 파멸 직전까지 몰아붙였지만, 카르타고 본국의 지원 부족과 일치단결한 로마의 압도적 힘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한니발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 역사의 흐름이라는 해일을 한 개인이 돌려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 개인의 역량이 아무리 출중하고 의지가 굳세다 해도 말이다. 한니발도 어떤 시점에서는 로마를 멸망시키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니발은 자신이 지닌 모든 걸 바쳐 운명에 맞섰다. 패배할 줄 알면서도 초자연적 운명의 힘에 맞서고 결국 장엄한 패배를 당한 한니발에게서 나는 인간 실존의 숭엄함과 존귀함을 발견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한니발처럼 쓰나미같이 밀려오던 역사의 파도에 정면으로 맞섰다. 특권과 반칙의 혁파라는 지상과제(이 과제는 지금 오히려 더 적실하고 절박하다)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노 전 대통령이 벌인 전투 중 백미는 부동산 전투다. 노 전 대통령은 부동산 불로소득이 특권의 대명사라는 사실을 너무나 명확히 인식하고 부동산공화국을 혁파하기 위해 정면대결했다.

노무현, 부동산 적폐와 정면대결하다

노무현 정부는 먼저 토지공개념이라는 명확한 철학을 가지고 부동산 문제를 바라봤다. 올바른 철학이 전제되어야 올바른 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첫 단추를 근사하게 꿴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토지공개념의 철학 위에 구축한 정책패키지는 눈이 부실 정도다.

노무현 정부는 수요관리, 시장투명화, 주거복지, 과잉유동성 관리, 개발이익환수, 공급 등의 부동산 정책 전 분야를 총체성과 유기성의 차원에서 조직하는데 성공한 최초의 정부다. 이를 풀어 설명하겠다.

노무현 정부는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해 역대 정부의 숙원이던 보유세 강화를 실현했고, 양도세를 현실화하는 등 수요관리에 역량을 집중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노무현 정부가 2005년 5.4대책을 통해 보유세 실효세율을 2017년까지 1%수준으로 올리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2018년 현재 보유세 실효세율은 고작 0.16%에 불과하다.
부동산 문제가 부동산의 소유 및 처분 시에 발생하는 불로소득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특히 보유세를 강화한 노무현 정부의 업적은 아무리 상찬해도 부족하다. 불투명성과 정보의 왜곡이 지배하던 부동산 시장을 실거래가 신고 의무화 및 실거래가 등록 의무화, 토지소유 현황 통계 공표 등을 통해 투명한 시장으로 일거에 바꾸어 놓은 것도 노무현 정부의 큰 업적 중 하나다.

노무현 정부는 주거복지 부문에도 역대 정부 중 가장 뛰어난 성취를 남겼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임대주택 건설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2003)을 제정하면서까지 장기공공임대주택 확충에 매진했다. 그 결과 노무현 정부는 역대 정부 중 최다라 할 56만1873호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했는데,그 중 85.9%인 48만2510호가 저소득층(소득 1~4분위)을 위한 장기공공임대주택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저소득층 위주의 장기공공임대주택 확충에 힘입어 2000년 전체 가구 가운데 0.44%(6만3312가구)에 달하던 비주택거주가구가 2005년 0.36%(5만7066가구)로 줄어든다.

특기할 점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지나면서 비주택거주가구의 수가 2.18%(42만9730가구)로 폭증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저소득층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펼쳤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상식이 된 부동산 관련 대출 관리도 노무현 정부 시기에 비로소 LTV(담보인정비율) 및 DTI(총부채상환비율)이라는 형식으로 안착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과잉유동성의 부동산 시장으로의 유입이 갖는 위험성을 최초로 인식하고 대비한 정부였다. 한편 노무현 정부는 기반시설부담금제 및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통해 재건축아파트의 개발이익을 직접적이며 강도 높게 환수하려 했다. 끝으로 노무현 정부는 2기 신도시 건설, 15년 내 최대 규모의 택지 공급 등을 통해 공급확대에도 소홀하지 않았던 정부였다. 단언컨대 건국 이후 어떤 정부도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지닌 총체성과 유기성을 따라가지 못한다.

흔히 보수와 진보,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실패라 함은 서울 등 수도권의 주택가격 폭등을 막지 못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 당시는 전 세계적 유동성 과잉으로 주요국의 주택 가격이 폭등을 거듭하던 시기였다. 오히려 참여정부 기간 대한민국의 주택가격 상승률은 OECD 주요 24개국 중 18위에 해당할만큼 낮았다. 가격을 유일한 기준으로 보더라도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곡학아세나 혹세무민에 가깝다.

물론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노무현 정부가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정책의 투입 타이밍, 유동성 관리의 적극성, 메시지 관리의 세련됨 등의 측면에서 분명 노무현 정부는 실수도 있었고, 미숙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 문제를 한국사회의 핵심 모순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였고 발군의 성과를 이뤘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노무현은 어떤 노무현이어야 할까?

노무현 서거 10주기를 맞아 '새로운 노무현'이라는 슬로건이 등장했다. 좋은 슬로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새로운 노무현'의 내용은 무엇이어야 할까? 나는 '새로운 노무현'의 내용이 대한민국의 핵심모순과 정면대결하되, 싸움의 방식은 겸손하고 세련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보다 중요한 건 한국사회의 핵심모순과 정면대결하는 것이지, 스타일의 세련됨이 아니다.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에 그의 정신을 이어 받아 한국사회의 핵심모순과 정면대결하는 사람이 정치권에 잘 보이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의 도전과 서거를 거치면서 한국사회 핵심모순과의 정면대결은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핵심모순들을 애써 외면한 채 현상유지에 급급하는 모습들만 정치인들이 보인다고 평하면 지나친 폄하일까?

'참여정부 때 해 봤는데 안 되더라. 정권 뺏기고 대통령도 비참하게 서거하시고', '세상을 잘 모르니까 근본적 개혁 운운한다. 세상이 그리 간단치 않다' 같은 패배적, 냉소적 태도가 정치권을 풍미하고 있다는 느낌은 나만 갖고 있는 것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과 죽음을 생각해 본다. 역사와 대화하며, 시민을 믿고 한국사회의 핵심모순들과 온몸으로 대결한 노무현, 전투에선 무수히 패했지만, 전쟁에선 승리한 노무현, 정치와 권력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긴 노무현,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기에 최고 권좌에 오를 수 있었던 노무현, 정의를 향해 힘겹게 나아갔지만, 괴로움과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은 노무현.

이게 내 머릿 속에 있는 노 전 대통령의 삶과 죽음이다. 그리고 나는 노무현의 정신을 겸손하고 세련되게 구현할 새로운 노무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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