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만 1조8천억원에 달했던 룸살롱, 골프장 등 이른바 '향락성 접대비'를 손비처리하지 않으려던 국세청의 개혁 시도가 사실상 재정경제부 등의 반대로 백지화했다.
정부가 내세운 백지화 근거는 '어려운 경제여건'과 '획일적 규제에 따른 부작용'. 기업들로 하여금 연간 1조8천억원을 계속해 룸살롱과 골프장에서 접대비로 소비토록 하는 것이 과연 어려운 경제를 살리는 길이며, 향락성 접대비를 없애는 것이 과연 획일적 규제인지 의문이다.
***재경부, "접대비 계속 인정해주기로"**
재경부 고위관계자는 1일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려운 경제여건과 획일적 규제에 따른 부작용을 감안해 현행 세법이 정한 한도내에서 사용한 접대비는 인정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도 '시기상조론'에 동의해 일단 재경부 의견을 수용키로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로써 이용섭 신임 국세청장이 지난 4월8일 박원순 참여연대 상임위원장과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세정혁신추진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골프장과 룸살롱 등에서 사용한 접대비는 업무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비용으로 인정해주지 않도록 한다"는 개혁방안은 법인세법 개정권을 쥐고 있는 재경부의 강력한 반대로 백지화될 상황에 처하게 됐다.
국세청 관계자는 2일 이와 관련, "언론보도 등을 통해 재경부 입장을 전해들었다"며 "재경부가 법인세법을 고치지 않겠다고 하는 이상 현행 세법내에서 업무와 무관한 비용을 손비처리 대상으로 불인정하는 방향으로 처리하는 길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미 부분적으로 법인세 손비처리 대상을 심사하는 과정에 업무와 무관한 비용을 파악해 이를 인정하지 않아왔다"며 "앞으로 이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국세청의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재경부 등의 강한 반대로 국세청의 향락성 접대비 손비처리 불인정 계획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미국은 건당 75달러만 손비 인정**
현행 법인세법 제25조 '접대비의 손금불산입' 조항을 보면, 기업의 수입금액(매출액과 유사한 개념)에 따라 손비처리 한도가 정해지고 있다. 예컨대 수입금 1백억원이하 기업에 대해서는 수입금액의 0.1%, 1백억~5백억에 대해서는 2천만원 더하기 1백억원을 초과하는 수입금액의 0.1%, 5백억원 초과시에는 6천만원 더하기 5백억원을 초과하는 수입금액의 0.03%를 손비처리 대상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이렇다 보니 매출액이 수조~수십조원대에 달하는 대기업의 경우 천문학적 거액을 접대비로 사용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이 조항에 근거해 지난해 기업들이 손비인정을 받은 접대비가 4조7천억원에 달하고 이 가운데 룸살롱과 골프장에서 사용한 접대비만 1조8천억원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재경부가 주장한 '어려운 경제여건'이 과연 향락성 접대비 존속의 근거가 되는가이다. 전문가들은 도리어 향락성 접대비의 존재가 경제를 어려운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한 요인이 되고 있지 않냐고 반문하고 있다. 기업들로 하여금 제품경쟁력 향상이나 사내복지 증진을 위한 생산적 투자보다는 뒷거래를 통한 음습한 사업거래 관행을 유지토록 존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이같은 향락성 접대비의 용인이야말로 세계 제1위의 양주수입과, 성적으로 세계적 규모로 확산된 매춘-향락산업의 물적 토대가 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현행 법인세법이 손비처리 액수를 '총액' 개념으로 인정하고 있는 대목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 예로 미국의 경우 접대비 손비처리 액수를 건당 75달러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으며 이 액수가 넘을 경우에는 접대한 상대방의 이름과 접대내역 등을 상세히 적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 매출액의 일정비율을 '총액' 개념으로 무조건 손비처리해주고 있어, 룸살롱 등에서 한번에 수백만원씩 고액접대가 가능하다.
시민단체 등은 이미 미국, 유럽 등 대다수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개도국에서조차 손비처리 대상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만성적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옆나라 일본에서조차 손비처리 대상을 대폭 축소한 향락성 접대비 폐지 시도가 개혁을 표방한 현 노무현 정부하에서 좌절된 대목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며 강력대응을 모색중이어서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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