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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국가보안법'이 '대장정'을...이 어색함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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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국가보안법'이 '대장정'을...이 어색함의 정체는?

[민교협의 시선] 국가보안법과 대장정

4월에 시작된 ‘패스트트랙’에 대한 여야 간의 대치는 급기야 ‘동물 국회’를 ‘식물 국회’로 만들어 놓았다. 자유한국당은 국회 내에서 더 이상 어떠한 저항도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4월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거리로 나섰다. 자유한국당은 이미 4월 20일과 27일에도 장외 집회를 통해 현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하지만 4월 29일 패스트트랙이 안건으로 상정된 이후로 자유한국당은 당분간 국회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산적해 있는 민생법안은 패스트트랙 안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하다.

이러한 태도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당의 정치적 재생산이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당의 불안한 미래가 뻔히 보이는 상황이니 말이다. 5월 1일부터 자유한국당은 원내에서의 협상을 거절하고 장외투쟁에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광화문 광장에 천막당사를 설치하려는 시도가 좌절되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인 방식을 택했다. 5월 2일 자유한국당은 전국 순회 투쟁을 선포했고 이에 발맞춰 일부 의원들은 5월 2일 국회 본청 앞에서는 ‘문재인 좌파독재정부의 의회민주주의 파괴 규탄 삭발식’을 거행했다. 이러한 차원에서 황교안 대표가 가장 먼저 찾은 순회투쟁 도시는 광주였다. 하지만 광주 시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역 밖으로 나오지 못한 그는 발길을 되돌려야만 했다. 그다음 황대표가 향한 곳은 부산 자갈치 시장이었다.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 또는 순회투쟁은 지금까지 보면 매우 성공적인 듯이 보인다. 정당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분산되어 있던 보수 우파 세력이 다시 자유한국당의 기치 아래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보수우파 대중들은 이러한 장외투쟁을 기다려 왔다는 듯이 이에 호응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이렇게 해서 거리와 광장에서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은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목소리가 쉬도록 ‘좌파 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지만 뭔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다. 아마도 지금까지 익숙하게 봐온 아래로부터의 정치에서는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 운동이 그 주요한 흐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자유한국당이라고 장외 투쟁을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스스로 과거 독재정권의 후손임을 당당하게 외치고 있는 이들에게 아래로부터의 정치, 거리에서의 정치는 무언가 모순적이다.

황교안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다. 또한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에도 과도한 의전 집착으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소속의 많은 의원들 또한 거리의 정치보다는 집무실 정치 또는 관료주의적 통치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다. 패스트트랙은 이들로 하여금 편한 의자와 안락한 사무실을 내팽개치고 햇볕 따갑고 먼지 풀풀 나는 거리로 나서게 만들었다. 그만큼 이들의 장외투쟁은 더욱 극적으로 보이며 이들의 주장에는 절실함이 묻어나온다.

하지만 그 절실함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독재의 후손을 자임하는 정당의 당리당략인가? 더욱 의구심이 드는 것은 이들이 진정 거리의 정치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있는가이다. 아래로부터의 정치가 민주주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진정한 목적임을 이해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탑다운(top-down) 방식에 길들여진 자들의 바텀업(bottom-up) 운동’, ‘상명하복에 익숙한 자들의 대장정’, ‘사모관대에 운동화’. 현재 자유한국당 장외투쟁의 성격을 이렇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이 어느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을지, 또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민생투쟁 대장정’이라는 명칭은 자유한국당의 재생산과 생존이 바로 민생이라는 아전인수격 해석을 돋보이게 한다. 반면 마오쩌둥에게서 전유한 이들의 ‘대장정’ 구호가 ‘좌파 독재 타도’를 향하고 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앞뒤에 맞지 않는 주장이 당장 보수대중들을 결집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의 탈을 쓴 극우운동인가? 하지만 20세기 전반기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성행한 이러한 운동과 비교해 볼 때 자유한국당의 대장정이 그렇게 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오히려 그렇게 되기에는 너무나 어색해 보인다. 사실 1920~3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극우파 대중정치를 이끌었던 세력은 기성정치인이 아니었다. 이들은 기성 보수 정치를 비웃으며 거리와 광장에서, 당시로서는 매력적으로 들리는 구호와 좌파의 운동 방법을 전유하며 대중에게 호소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제도권에 길들여진 기성 정치인의 에토스를 너무나도 잘 유지하고 있다.

점퍼와 배낭가방, 운동화로 중무장 했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자유한국당의 관료적·권위적 태도는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황교안 대표의 ‘대장정’은 서민 코스프레라도 하면서까지 서민의 지지를 받으려던 기성 정치인들의 ‘민생투어’와는 많이 달라 보인다. 한 점 흐트러짐 없는 황교안 대표의 단정한 머리와 차림새는 이를 잘 보여준다. 기존에 민생투어를 하던 정치인들이 서민과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과 다르다. 구호는 보다 과격하지만 행동은 누구보다 예의바르며 서민들 속으로 들어갔지만 서민과 동화되지는 않는다.

이번 자유한국당의 ‘민생투쟁 대장정’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가볍게 보자면 이는 당 대표의 대선 준비용 민생투어의 연장선상에 이해될 수 있다. 반면 무겁게 보자면 새로운 극우 운동의 탄생과 제도권화로도 평가될 수 있다. 기존의 민생투어보다 더 관료적으로 보이는 황교안 대표의 발걸음과 제도권 바깥의 극우 운동의 만남이 어떠한 방향으로 향하게 될지, 불안과 걱정이 앞선다.

본 칼럼은 민교협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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