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바른미래당 내홍이 8일 극적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패스트트랙 과정에서의 무리한 사보임 논란에 대해 김관영 원내대표가 사퇴하고, 손학규 대표의 거취에 대해서는 일단 논의하지 않기로 하면서다.
김 원내대표 등 지도부 인사들이 당내 바른정당계를 향해 의심어린 시선을 보냈던 상황에 대해서는 의원 전원 명의로 "민주당·한국당·평화당과 어떤 형태로든 통합·선거연대를 추진하지 않고 바른미래당 이름으로 당당히 출마할 것"이라는 결의문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매듭을 지었다.
바른미래당은 8일 오후 국회에서 2시간 30분에 걸쳐 의원총회를 열고 이같은 내분 수습 방안을 발표했다. 김 원내대표는 "15명의 의원이 의총 소집을 요구했고 '그 동안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개혁을 위한 안건을 통과시켰고 이제는 새로운 모습으로 원내지도부를 꾸려야 한다'는 진심어린 말을 해줬다"며 "원내대표가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여러 의원들께 드린 마음의 상처, 당의 어려움을 모두 책임지고 오는 15일 차기 원내대표가 선출될 때까지만 임기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당이 가졌던 많은 갈등을 치유·회복하고 새롭게 단합하는 말씀을 드릴 수 있어 대단히 기쁘고 행복하다"며 "의원들이 오해·불신을 해소하고 새로운 결의를 했다. 다음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합의해 발표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김 원내대표가 낭독한 결의문 전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 전체는 선거제도·사법제도 개혁 패스트트랙과 관련한 당내 갈등을 오늘로 마무리하고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바른미래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한국당·평화당과 어떤 형태로든 통합·선거연대를 추진하지 않고 바른미래당 이름으로 당당히 출마할 것이다. 또 창당 정신에 입각해 당의 화합·자강·개혁의 길에 매진할 것을 온 국민 앞에 약속드린다."
의원들 전원은 김 원내대표의 발표가 끝난 뒤 박수를 쳤다. 그간 대립했던 김 원내대표와 하태경·오신환 의원이 악수를 나눴고, 김 원내대표가 권은희 정책위의장의 어깨를 쳐주기도 했다. 바른정당계 유승민 의원이 호남계 김동철 의원과 미소띤 얼굴로 악수를 나누며 귀엣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손학규 지도부 총사퇴를 주장해온 측에서 보면, 1차 공격 대상에서 손학규 대표를 빼고 김 원내대표로 과녁을 좁힌 셈이다. 손·김 사퇴 불가론으로 강경하게 맞서던 지도부도 임기가 한 달 남은 김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선에서 사태 봉합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사보임 갈등' 당사자 오신환의 최고위 참석, 봉합 전조였나
앞서 이날 오전부터 일부 조짐은 엿보였다. 손 대표는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사보임 문제와 연관된 의원 여러분들이 널리 양해하시고, 당과 의회의 앞날을 위해 통 크게 헤아려 달라"고 김 원내대표 사퇴론을 일축하면서도 "서로 양보할 것은 양보하자"고 했다. "한국당 혹은 평화당과 합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합당·연대 없이 독자 출마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방해야 한다"고도 했다.
오신환 당 사무총장이 보름여 만에 최고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권은희 의장도 이날 결국 불참하긴 했으나 손 대표에게 최고위 참석 의사를 통보했었다고 한다. 손 대표는 회의 후 기자들이 '권 의장에 대한 인사 조치가 있을 예정이냐'는 취지의 질문을 하자 "조치할 게 없고, 오늘 오기로 했는데 안 왔다"고 말했다. 권 의장은 지난달 24일 참석을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불참을 이어오고 있었다.
앞서 당 안팎에서는 손 대표가 당연직 최고위원인 정책위의장과 당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직에 반(反)손학규파 의원들이 앉아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두 사람에 대한 교체 인사를 검토 중이라는 말이 나왔다. 전날 YTN은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에는 지도부와 뜻을 같이하는 임재훈, 채이배 의원이 유력하고 수석대변인은 최도자 의원이 물망에 오른다"고 후임 인선안까지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중에 오 사무총장이 지난달 22일 이후 16일 만에 최고위에 참석한 것과 관련해 이날 오전 이런저런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오 총장 본인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원내 문제와 당 문제는 별개"라며 김 원내대표 사퇴 요구와 최고위 참석은 분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 총장은 "지난주에 손 대표를 만났고 '오늘부터 복귀하겠다'고 말했다"며 사무총장 교체설에 대해 "대표가 한 번도 언질이 없었다. 최고위를 못 나오는 과정에서도 당무를 소홀히한 적은 한 번도 없고, 패스트트랙 과정에서도 당사에 가 결재도 했다"고 말했다.
'완전진화'는 아니다…유승민 "패스트트랙 이견 여전", 하태경·이준석 "최고위 보이콧 계속"
그러나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당 의원 전원이 동의한 결의문은 '패스트트랙과 관련한 당내 갈등을 오늘로 마무리'한다고 했다. '당내 갈등'은 패스트트랙 국면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있었다. 손학규 지도부 사퇴 주장이 처음 나온 명분은 '무리한 패스트트랙 추진'이 아니라 '4.3 보궐선거 참패와 당 지지율 하락'이었고, 바른정당계 하태경·이준석·권은희 최고위원이 최고위를 보이콧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8일부터다.
문자적으로만 보면, 바른정당계나 일부 안철수계 등이 손학규 지도부 퇴진을 다시 주장한다고 해도 이 결의문에 구속되지 않는 셈이다. 박주선 의원이 의총에서 "원내대표 사퇴가 당 안정과 정상화의 길을 연다면 순교자 정신으로 결단하되, 더 이상의 당 지도부 사퇴를 (주장)해선 안 된다는 종지부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결의문에는 이같은 표현은 결국 담기지 않았다.
실제로 유승민 의원은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당이 새 출발을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고 의총 결과를 평가하면서도 "패스트트랙 과정에 대해 원내대표 사퇴로 결론을 내린 것이고, 그 점에 대해서는 평가하고, 패스트트랙 자체의 내용이나 과정에 대한 여러 각자의 생각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김 원내대표가 의총 결과 브리핑 당시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개혁을 위한 안건을 통과시켰고"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 원래 패스트트랙 추진 반대파였던 유 의원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유 의원은 "(패스트트랙이) 개혁을 위한 것이라는 표현은 결의문에 없었다. 그건 김 원내대표의 개인 의견"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 유 의원은 '손 대표의 거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지의 질문이 3차례나 반복돼 나왔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는 (오늘 의총에서) 전혀 결론이 없었다. 이야기도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면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할 날은 아닌 것 같다"고만 했다. 유 의원은 다만 자신의 당내 역할론이 있는 데 대해서는 "저는 작년 6월에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사퇴하고 백의종군을 선언한 사람"이라며 "뭘 맡겠다, 이런 생각은 전혀없다"고 선을 그었다.
'반쪽 최고위'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수석 최고위원인 하태경 최고위원은 "최고위 문제는 의총 결과와 별개"라며 "상황이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하 최고위원은 "오늘은 원내대표 문제만 정리한 것이고, 손 대표 문제는 오늘 주제가 아니었다"며 "두 가지를 섞으면 (논의가) 복잡해지니 모두 그렇게 양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준석 최고위원도 이날 의총 이후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최고위 보이콧을 풀 생각이 없다"며 "제가 요구한 것은 지도부가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고 노선의 애매모호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손학규 대표가 있는 한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지도부 총사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비교적 중립 성향에 가까운 안철수계 권은희·김삼화·김수민·신용현 의원은 패스트트랙 과정에서의 사개특위 위원 사보임 논란 시점에서 지도부에 등을 돌렸지만, 처음부터 손학규 지도부 사퇴를 주장했던 것은 아니어서 김 원내대표가 사퇴한 이후에도 바른정당계 및 일부 안철수계(이태규·이동섭 의원)와 계속 공동 보조를 취할지는 미지수다.
만약 권 의장 등 4인이 김 원내대표 사퇴를 계기로 다시 지도부 편으로 돌아선다면, 의원단 내에서의 수적 균형은 지난 4월 23일 의원총회 당시와 마찬가지로 13:11로 지도부 측이 다소 우세한 상황으로 되돌아간다. 최고위에서도 권 의장과 김수민 청년최고위원이 복귀한다면 손 대표가 임명한 지명직 최고위원 2명과 함께 지도부가 과반(5명)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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