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패스트트랙 추진 과정에서 캐스팅 보터 역할을 톡톡히 한 바른미래당이 한 달째 당내 갈등에 휩싸여 있다. 지난 4.3 보궐선거 패배 이후 바른정당계와 일부 안철수계 의원들이 손학규 지도부 사퇴를 촉구하며 시작된 내홍은 패스트트랙 추진 과정에서 '사개특위 사보임' 문제로 극을 달렸다.
특히 안철수계의 가세는 손학규 지도부에 위협적이었다. 패스트트랙 반대파였던 이태규·이동섭·김중로 의원에 이어, 사개특위 위원 사보임 문제에서는 김삼화·김수민·신용현 의원도 지도부에 등을 돌렸다. 이태규 의원 등은 23일 패스트트랙 추인 의총에서도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고, 김삼화·신용현·이동섭 의원은 사보임 반대 의원총회 소집에 연서명했다. 김 의원과 김수민 의원은 당직까지 사퇴했다.
이들이 돌아서면서 김관영 원내대표는 한때 "성찰과 숙고의 시간을 갖겠다"고 자세를 낮췄고, 지난 주말 패스트트랙은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다. 지난 26일에는 안철수계·유승민계 원외 지역위원장 49명이 합동으로 원내지도부의 사보임 결정을 비판하고 손학규 지도부 사퇴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성명서 발표와 연락은 안철수 전 대표 측근인 김철근 전 국민의당 대변인이 맡았다.
안철수계의 움직임이 주목받는 것은 바른미래당의 독특한 계파 구도 때문이다. 바른미래당은 옛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한 정당이다. 탄핵 국면에서 '개혁 보수'의 기치를 들고 새누리당을 탈당한 유승민·하태경·오신환·유의동·지상욱 의원 등은 보통 '바른정당계' 또는 '유승민계'로 불린다. 이들은 4.3 보선 후 손학규 지도부 사퇴를 주장했고, 패스트트랙 추진에도 비판적이었다.
다른 축인 국민의당계는 다시 호남계와 안철수계로 나뉜다. 호남계에 속한 박주선·김동철·주승용 의원 등은 손학규 대표와 가깝고, 패스트트랙 추진 찬성파였다. 안철수계는 당초 지난 전당대회 당시 손학규 대표를 물밑 지원하는 등 손학규 지도부에 호의적이었고 패스트트랙 추진에도 찬성 기류가 강했으나, 4.3 보궐선거 이후 안 전 대표 측근 이태규 의원을 중심으로 현 지도부에 대한 비토 기류가 시작됐다.
현재 바른미래당 당권파를 구성하고 있는 호남계와 안철수계의 연합세력에서 안철수계가 이탈해 바른정당계(유승민계)와 손을 잡게 될 경우, 바른미래당 당권 교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패스트트랙 국면 내내 나왔던 배경이 여기에 있다. 호남계와 유승민계 사이에서 안철수계가 바른미래당의 캐스팅 보트를 쥔 셈이다.
그러나 안철수계 인사들이 모두 이태규 의원, 김철근 전 대변인과과 일치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문병호 전 의원과 장진영 전 최고위원, 이수봉 인천시당위원장, 김정화 대변인, 고연호·이행자 전 대변인 등 안철수계 원외 인사 80명이 회동을 갖고 이태규 의원, 김철근 전 대변인 등 그룹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앞서 지난 18일 이태규 의원 등이 서울 마포에서 90여 명(현직 지역위원장 20명 내외 포함)이 참석한 대규모 회동을 갖고 '손학규 지도부 총사퇴'로 의견을 모은 데 대해, 문 전 의원 등은 지난 23일 손 대표 사퇴론에 반대하는 취지의 성명을 50명 연명(현직 지역위원장 22명 포함)으로 내기도 했다. 여기에 이어 의원회관에서의 회동으로 세 대결 맞불을 놓은 것.
바른미래당 지역위원장은 원내·외를 합쳐 100여 명(2월 20일 기준 102명)이다. 원외 위원장은 80여 명이다. 의원은 29명이지만, 지역구를 맡지 않고 있는 의원도 있다. 지역위원장은 지역조직을 관리하는 당의 골간이고 중핵이다. 국민의당 시절부터 당내 최대 계파였던 안철수계 위원장들은 손학규 지도부 퇴진파(마포 그룹. 가)와 그 반대파(의원회관 그룹. 가)로 반분돼 있는 양상이다.
'의원회관 회동' 결과에 대해 이수봉 위원장은 "세 가지다. 첫째, 우리 당은 안철수 현상과 촛불혁명 정신에 기초한 정당이고 선거법 개정은 시대적 과제다. 우리 당 대표가 목숨을 건 단식으로 선거법 개정의 불씨를 살렸다"며 "가해자는 패스트트랙을 반대하고 당을 한국당 2중대로 전락시켜 지역 주민들의 비웃음을 사게 한 의원들"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이어 "둘째, 이태규 의원은 '안심(安心)팔이' 자기 정치를 즉각 중단하라"며 "안 전 대표는 제3당 가치를 위해 온갖 수모를 겪고 싸우다가 와신상담을 하고 있다. 안 전 대표를 더 이상 당내 정쟁의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했다. 그는 "셋째, 당내 분열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며 "당은 신속히 재창당 사업에 착수해야 한다. 어렵게 만든 영호남 통합정치의 정신을 훼손하는 어떤 분열 책동도 단호히 거부한다"고 브리핑에서 밝혔다.
특히 이날 하태경 최고위원이 교통방송(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차기 총선 전략과 관련해 "한국당 입장에서는 우리를 각개 격파하려고 하지 않느냐. 우리는 어쨌든 당을 키우려고 한다. (다만) 정의당-민주당이 후보 단일화를 하듯이 우리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나름의 전략전술을 생각할 수 있다"며 "(한국당과) 선거연대 할 수 있다. 후보 단일화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우리가 민주당한테 3당, 4당 구도로 가면 다 질 건데, 그런 일을 자기들은 선거연대·단일화 하면서 우리는 못하란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한 것은 '의원회관 그룹'의 정서에 기름을 부었다.
'의원회관 그룹'은 손학규 지도부 사퇴론에 대해서는 "지금은 아니고, 당 수습 방안을 제시하면서 그 속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이 위원장은 전했다. 문병호 전 의원은 기자와 만나 "손 대표 사퇴에 반대하는 분들의 모임"이라고 말했다.
반면 '마포 그룹'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태규 의원은 이날 불교방송(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내 갈등의 근본적 배경은 패스트트랙에서 시작된 게 아니고 오랫동안 누적된 지지율 답보와 정체"라며 "그것이 지난 4.3 보궐선거 참패로 나타났지 않느냐. 결국 현재 지도부가 어떤 비전과 대안이 없다, 총선거 전망이 굉장히 어둡다 이런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도부 사퇴론에 힘을 실었다.
지난 26일 유승민계와 연합해 '지역위원장 49인 성명'을 발표한 김철근 전 대변인은 이날 당 지도부 기자회견(☞관련 기사 : 손학규·김관영의 '정면돌파')을 겨냥해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김 전 대변인은 "패스트트랙 지정을 자화자찬하면서 '7공화국' 운운하며 새 판을 짜자고 한다. 참으로 한심하다"며 "대학 강단에서 이론으로 말씀하기엔 좋은데 현실정치 힘의 논리, 지지율 논리앞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손 대표를 비난했다.
김 전 대변인은 "손 대표와 김 원내대표는 이미 리더십을 상실한 상태"라며 "당의 정상화를 위해 현 지도부는 순리를 따라 총사퇴하시기 바란다. (그것이) 당 지도부로서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주장하고 "이 뜻에 동의하는 동지들과 함께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반드시 관철해 나갈 것"이라고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강조했다.
김 전 대변인은 또 "'마포 그룹'은 이 의원을 통해 안 전 대표와 상의해온 게 사실"이라며 "'안심팔이'라는 비난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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