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혜선씨가 '코리안 드림' 연재를 중단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간 뒤 많은 독자들이 연재를 다시 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이 보도가 나간 직후인 28일 자카르타에서 그동안 프레시안에 좋은 글을 보내주신 기태형씨가 리혜선씨에게 전해줄 수 있냐며 리혜선씨에게 보내는 한 편의 편지글을 보내왔다. 편지를 보니, 리혜선씨는 물론 '우리' 모두가 반드시 깊숙이 생각해볼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 편지글 전문을 싣기로 한다. 편집자
***"힘 내십시오. 당신의 노력이 우리를 바꿀 겁니다"**
리혜선씨께.
귀하께서 프레시안에 연재중이 던 글 '코리언 드림'을 잘 읽고 있던 해외거주 한국인입니다.
귀하의 글에 많은 부분 공감하고 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글이 일단 연재가 잠정중단 된다니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물론 귀하의 글이 프레시안에 연재된 후 독자의견란에 온갖 말도 안돼는 억지, 욕설, 근거 없는 비방, 인간적 모욕이 가득한 편협한 글이 올라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한국인이 중국의 한국교포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당신의 조상이 일제의 폭정을 피해갈 때에도 당신들은 현지의 중국인들과 갈등을 겪었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점차 그곳에 적응하며 중국에 동화되었습니다. 물론 한민족인 것은 사실이지만 당신들은 기본적으로 이곳의 사람들과는 다른 교육제도와 사회제도 안에서 성장한 세대입니다. 다행히도 그리고 고맙게도 당신은 우리가 한민족, 한 동포라는 것은 잊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에게 많은 기대감을 가져 주었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그곳의 한인교포 들이 다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만나기까지 거의 5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 세대가 단절된 시간이 지난 후에 그 다음 세대들이 만난 것입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도, 당신들도 변했습니다. 그 거리감이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단숨에 해결 되리라 생각하셨습니까?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는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이해되는 세대였지만 애석하고 부끄럽게도 우리의 세대는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우린 서로 다른 가치관을 교육 받고 자랐습니다. 당연히 서로의 가치관이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충돌을 두려워 한다면 우린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만일 당신의 기대처럼 모든 한국인들이 중국거주 한인동포를 한없이 포용하고 끝없이 이해한다면 당신은 르포 자체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어디에나 핑크빛 미래가 가득한데 무엇 때문에 갈등하고 반목하겠습니까?
당신들 중국의 한인교포가 한국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만큼, 중국에 진출한 많은 한국인들도 당신들을 이해 못하고 때로는 극단적인 증오감마저도 표현합니다.
우린(중국의 한인교포와 한국의 우리 모두) 서로에게 기대감만 가득했지 현실은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겁니다.
이젠 현실을 알고 서로 이해해야 하질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갈등은 필연적입니다.
사랑하는 연인도 서로에 대해 차츰 알게 되면 갈등을 빚고 반목합니다. 그걸 극복하면 부부가 되고 제 고집만 부리면 결국 다시 남으로 갈라서곤 하지요, 그러나 오늘도 많은 연인들은 서로의 사랑을 믿고 부부가 됩니다.
우리에게는 서로 시간이 필요합니다.
솔직히 한국인들은 그간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가난을 벗어 나고자 옆을 볼 시간 없이 앞으로만 치닫다가 이제 겨우 살만하니 IMF라는 덫에 걸려 넘어졌다 일어났습니다. 그 와중에 독재의 억압 속에서 부정적인 교육을 세뇌당하며 획일적인 가치관을 강요받아왔습니다. 많은 기성세대 들은 아직도 세상을 적과 동지로만 나누고 '굴복시키느냐? 굴복하는냐?' '지배하느냐? 지배당하는냐?'의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지 못합니다.
어딜 가나 한국인은 유난히 목소리가 큽니다. 조용히 얘기하면 자신의 의견을 남들이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는 과거의 군사독재 시절의 경험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란 말속에는 남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차라리 '나'만을 안다면 '너'에 대해 생각해 볼 텐데 '우리'속에서 보호 받고 협력하다 보니 '너희들'에 대해 자연 소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그 잘못된 '우리'의 개념이 서서히 지워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밝은 '나'의 개념이 자리잡아 가고 있지만 그 개념의 정돈이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리혜선씨, 만일 당신이 진정 한국인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한국인인 것이 지워야 할 부끄러움이 아니라면 연재중단에 대해 다시 한번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 형님 세대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갔고 차가운 감옥에서 신념을 다졌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기에 시련에도 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신마저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누가 있어 한국인과 중국동포사이의 깊어 가는 골을 메꿀 수 있겠습니까?
힘든 것은 압니다. 그리고 아무도 당신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했던 것이 당신에게 혼란스러웠으리란 것도 이해 됩니다. 그러나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해서 당신을 잊은 것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당신과 나는 같은 말과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민족이니까요.
지금의 한국은 보다 밝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엔 "때려잡자 공산당, 무찌르자 김일성"만 가득했던 우리의 사회에 이젠 북한동포를 돕자는 말이 나오고 있잖습니까?
당신의 노력이 우리를 바꿀 것입니다. 부디 당신의 노력을 중단하지 마십시오.
주제넘은 말씀 드렸던 점 죄송합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이해해 주십시오. 당신이 용기를 내면 당신과 나 중국교포와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보다 긍정적인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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