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정국이 격랑에 휘말렸다. 여야 4당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합의한 날짜는 25일이다. 하지만 '디 데이'를 하루 앞둔 24일 사개특위 바른미래당 간사인 오신환 의원이 패스트트랙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하면서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 휘말렸다.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이날 반대 표결 의사를 공언한 국회 사법개혁특위 위원인 오신환 의원을 다른 의원으로 교체(사보임)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사보임을 강행할 경우, 패스트트랙 통과는 가능해지겠지만 바른미래당은 극한 내홍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인 오 의원은 "독재"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24일 오전 최고위원회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오 의원이 이날 새벽 SNS에 반대 투표 의사를 밝힌 데 대해 "원내대표 사안이기는 하지만, 제 생각은 오 의원이 '나는 반대표를 던질 테니 사보임을 해 달라고 요청한 거라고 본다"며 "원내대표가 적절하게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내대표가 4당 합의를 어렵게 만들고, 의원총회에서 아주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추인을 받았는데 그것을 헌신짝처럼 내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손 대표는 "어제 의원총회에서 비밀투표 2번에 걸친 투표로 당 입장을 확정했다. 4당 원내대표 합의문을 당의 입장으로 추인한 것"이라며 "그러면 당을 대표해서 나간 사개특위 위원은 당의 입장을 의결에 반영하는 것이 당연한 책무인데 '나는 내 소신이 있어서 반대하겠다'는 것은 '당에서 나를 바꿔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손 대표는 바른정당계 등 패스트트랙 반대파에서 '사보임이 없다는 전제로 표결을 진행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대해 "제가 알기로는 김관영 원내대표가 사보임을 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며 "사보임을 하지 말라는 강요 같은 얘기는 많이 있었는데, 원내대표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 '당헌상 당론이 아니니 위원 개개인에게 추인안에 따를 것을 강요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당헌상 당론이냐 '당의 입장'이냐 하는 구분은 의미가 없다"며 "그러면 의총에서 왜 비밀투표를 2번 했겠나. 그게 당 입장을 모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당사자인 오 의원은 손 대표가 이같이 말한 데 대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오 의원은 이날 일부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단연코 사보임을 거부한다"며 "제 글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사보임을) 강행한다면 그것은 당내 독재"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오 의원은 "김 원내대표는 사보임을 안 하겠다고 약속했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최고위 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 중으로 오 의원을 만나서 진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어제 의총에서 어렵게 민주적 절차에 의해 합의안이 추인된 만큼 합의안대로 추진하는 것이 당에 소속된 의원의 도리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설득이 되지 않으면 사보임을 강행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최대한 설득을 하겠다"며 즉답을 하지 않았다.
특히 김 원내대표는, 앞서 손 대표가 '오 의원이 사보임을 요청한 것으로 본다'고 말한 데 대해 "많은 분이 그렇게 해석하실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그는 다만 "원내대표로서는 오 의원이 마지막까지 매듭을 짓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어제 오 의원을 만나 '합의안이 추인됐기 때문에 협조해 달라'고 부탁드렸고 오 의원이 많은 고민을 했다"고 전했다.
김 원내대표는 그러나 25일 신속처리안건 지정을 하기로 한 4당 원내대표 합의안에 대해 "합의를 가능한 지키도록 노력하겠다"며 "합의안이 추인돼서 당의 총의를 모았다고 생각한다. 추인 결과에 따라 집행할 책임도 원내대표에게 있다"며 최종 설득이 되지 않을 경우 강행 돌파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사보임이 없다는 전제로 의총 투표가 진행된 것'이라는 반대파의 주장에 대해 그는 "그건 그쪽의 주장"이라며 일축했다.
자유한국당이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을 찾아가 바른미래당 사개특위 위원 사보임을 막아 달라고 요청한 데 대해 김 원내대표는 "각 당이 자기 입장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겠지만, 저로서도 여러가지 방법을 고민하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손 대표도 한국당의 이같은 행동을 전해듣고 "사보임은 (각당) 원내대표 권한"이라고 반격했다.
나경원 원내대표 등 한국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 문 의장을 찾아가 '사보임은 안 된다'며 항의했으나, 문 의장은 특위 위원 사보임은 각 교섭단체 권한이지 의장이 관여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이들을 피해 방을 나섰다.
다만 바른미래당 내 패스트트랙 찬성파 및 당직을 맡고 있는 구 국민의당계 의원들 가운데에서도 오 의원을 사개특위에서 빼는 방안에 대해서는 "이러다 당이 깨진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아, 당 지도부의 고심이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바른미래당 소속 사개특위 위원 2인 가운데 한 명인 권은희 의원(재선, 광주 광산을. 바른정당계 권은희 최고위원과 동명이인)도 여야 4당 원내대표 합의안에 그대로 동의하지 않고 수정을 시도할 뜻을 밝혀 이 역시 패스트트랙의 막판 변수가 될지 관심이 모인다.
권 의원은 이날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 회의에 당 정책위의장 자격으로 참석해 "바른미래당 사개특위 위원인 오 의원과 저는 공수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때문에 공수처의 수사·조사관 자격을 실무 경력자로 제한하고 강제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을 제안했다"며 "그리고 공수처가 옥상옥의 사정기관이 되지 않기 위해 처장 임명의 중립성을 보장하고 수사-기소권을 분리하는 내용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이어 "바른미래당의 제안에 대해 민주당은 수사-기소권을 분리하되 판사·검사·경무관 이상 경찰에 대해 기소권을 주는 것을 수정 제안해 왔으나, 수정 제안은 공수처가 옥상옥의 사정기관으로 변질되는 데 대해 아무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4당 원내대표 합의에 민주당 안을 하나의 예시로 두고 '실질적 견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고 재수정 제안을 했고 이 재수정 제안에 여야 4당이 합의한 것"이라고 여야 원내대표 합의에 대해 다소 결이 다른 해석을 내놨다.
권 의원은 "때문에 사개특위를 열어 실질적 견제가 필요한 검사 등의 기소권을 국민에 돌려주는 기소대배심제 등애 대해 논의하겠다"며 특히 "이런 방안은 오 의원과 제가 함께 동의해서 논의하고 있는 안"이라고 말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권 의원은 최고위 회의 후 <프레시안> 기자와 만나, 오 의원이 반대투표를 공언한 데 대해 "그것은 민주당 안 그대로 올라오면 반대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제가 말한 내용으로 오 의원과 얘기를 해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권 의원은 공수처법의 패스트트랙 지정 여부와 관련 "당장 내일 공수처법이 사개특위에서 성안(成案)될지도 므르고, 지금까지 사개특위가 공수처법을 논의한 적이 거의 없다"면서 자신이 '예시'라고 표현한 원내대표 합의안 내용대로 법안이 만들어질 경우의 찬반 여부에 대해선 "특위에서 얘기를 해봐야 한다"고만 했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권 의원과 어제 별도로 만나서 말씀을 나눴다"며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권 의원이 공개 발언한 내용에 대해서는 "합의는 최소한의 내용이고, 그것 이외에 '이런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고 본인이 평소에 말씀하던 것을 (회의에서) 말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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