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대체 이건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 <인사이드 경제>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문서를 읽기도 해봤고 온라인상 글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우선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고, 다루는 분야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나라별로도 4차 산업혁명 논자들의 강조점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다양함 속에서도 공통적인 얘기가 2가지 있었다. 첫째 경기침체가 일상화될 정도로 자본가들 이윤율이 바닥을 기고 있다는 점, 둘째 기술혁신을 결합시킨 산업 구조개편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겉으로 봐서는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논리이다. 자본주의가 생겨난 이래 기술혁신의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은 시절이 있었던가?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구하기 프로젝트
기술혁신 관련한 얘기는 사실이다. 하지만 '낮은 이윤율' 얘길 빼먹으면 안 된다. 물론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이윤율이 떨어지며 경제가 위기로 치달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최근 반세기 동안만 해도 2~3차례는 있었던 사건이다. 그때마다 부동산 거품이니 주식 거품이니 다양한 경기부양 요인을 만들어 탈출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다. 백약이 무효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폭삭 내려앉은 세계경제와 자본의 이윤율은, 잠시 반등하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이내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제 버블(bubble, 거품)로는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자본주의 자체가 위기에 빠진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가들 입장에선 좀 더 근본적인 처방을 필요로 한다. 증기기관의 발명, 과학기술혁명과 같은 수준의 처방 말이다. 어쩌면 이게 바로 4차 산업혁명이 지향하는 바이자 진짜 실체가 아닐까? 낮은 이윤율을 반등시키기 위한 기술혁신과 산업구조 재편,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구하기 프로젝트 말이다.
가설은 일단 여기까지로 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파헤쳐 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인사이드 경제>는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이 있는 건 비단 자본가들만이 아니다. 이 문제를 중점사업으로 추진하는 정부는 대체 어떤 산업을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꼽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가들이 꼽은 새로운 먹거리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대통령 직속으로 '4차 산업혁명 위원회'가 설치되기도 했지만 이 위원회가 하는 일은 이런저런 토론에 불과하다. 실제로 일을 추진하고 있는 곳은 청와대·기획재정부·산업자원통상부다. 그들은 자신들 프로젝트에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혁신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그럼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어떤 부문을 꼽고 있을까?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혁신성장’의 8대 선도사업으로 다음과 같은 업종을 선정한 바 있다 : 미래자동차, 드론, 스마트공장, 스마트팜, 스마트시티, 에너지신산업, 초연결지능화, 핀테크.
이렇게만 보면 그저 ‘떠오르는 신산업’ 정도로만 보인다. 이걸 좀 이해하기 쉽게 범주화 하는 방법은 없을까? 다행히 정부가 지난해 8월에 발표한 ‘혁신성장 전략투자 방향’ 중 전략투자 분야를 살펴보면 8대 선도사업 개념과 함께 ‘플랫폼 경제 구현을 위한 3대 분야’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작년 8월 13일, 정부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된「혁신성장 전략투자 방향」
대체에너지, 인공지능(AI), 플랫폼
정부가 선정한 ▵8대 선도사업과 ▵플랫폼 경제 3대 분야를 함께 분석해 보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개요를 파악할 수 있다. <인사이드 경제>는 8대 사업과 3대 분야를 아래와 같이 플랫폼 △AI(인공지능) △대체에너지 3개의 범주로 나누어 보았다. (파란색 글씨는 플랫폼 경제 3대 분야, 까만 글씨는 8대 선도사업에 포함된 영역들임)
이렇게 범주화를 시도해보니 4차 산업혁명이 눈에 좀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래, 자본가들이 낮은 이윤율을 반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먹거리로 선택한 게 바로 저 3가지로구나! 실제로 자본가들은 △대체에너지 △AI △플랫폼, 3개 부문을 새로운 먹거리로 선택하고 기술혁신을 집중시키고 있는 상황 아닌가.
석유·석탄·원자력을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아낸다면 대박이 난다는 건 상식이다. 인간처럼 사고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낸다면 노동력 대체가 가능해 인건비 절감이 가능하며, 소비자와 노동력을 직접 연결시키는 플랫폼을 장악한다면 특별 이윤을 노려볼 수 있다. 너도 나도 '플랫폼' 선점에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면 바이오 의료 같은 것도 포함되지 않나요?"
앞으로 이런 질문들이 던져지면 앞의 3가지 범주를 적용해보면 된다. 의료 산업에서 자본가들이 찾아낸 새로운 먹거리는 ‘원격 의료’이다. 기존 병원 시장은 포화 상태이니 차라리 환자와 의사를 원격으로 연결시키는 플랫폼을 장악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바이오 의료는 ‘플랫폼’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상용화되고 있는 건 플랫폼과 미래자동차
자본가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게 3가지 분야이긴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영역은 ‘플랫폼’ 뿐이다. 인공지능(AI)의 중요성이야 모든 자본가들이 칭송하고 있지만 아직 상용화 단계까진 멀었다. 가끔 광고에서 “◯◯야, 조용한 음악 좀 틀어줘~”라며 마케팅을 시작하긴 했지만 아직까진 ‘딥 러닝(Deep Learning)’ 단계이다.
올해 구글(웨이모)과 GM(크루즈)이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야심차게 기획하고 있지만 <인사이드 경제> 입장에선 고개가 가로저어진다. 현 시점의 기술 수준으로 운전자를 완전히 대체할 자율주행차가 과연 가능할까? 매우 부분적이거나 다른 보완책을 전제로 해서만 작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칫하면 합법적인 살인기계가 도로 위를 달리게 될 테니 말이다.
대체에너지 부문도 마찬가지다. 전기자동차가 상용화 단계에 올라오긴 했지만 저게 과연 ‘대체에너지’라고 볼 수 있을까? 전기차 배터리를 충전하는 전기의 압도적 부분은 석탄·석유·원자력으로부터 얻는다. 수소차의 수소를 얻는 방식 또한 화석연료를 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전기차·수소차는 사이비 대체에너지 수준일 뿐이다. 하지만 만약 수력·풍력·태양열과 같은 자연적인 에너지원을 바탕으로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그거야말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친환경 대체에너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미래자동차는 비록 ‘사이비’이고 ‘부분적’일 뿐이라 할지라도 4차 산업혁명 먹거리 3가지 분야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공장을 돌릴 만한 전기 배터리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지만 자동차를 구동시킬 수준의 배터리는 개발되어 있고, 아직은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거의 모든 완성차 업계와 IT 업계가 달려들어 자율주행이라는 미래의 꿈을 팔고 있다.
게다가 카쉐어링·카헤일링 부문에서 이미 상용화된 플랫폼은 이미 우리 일상 속으로 깊이 파고든 상태이다. 과거에 미래자동차라고 하면 전기차·수소차나 자율주행차를 떠올렸지만 이제는 누구나 모빌리티 관련 스마트폰 앱을 쉽게 떠올린다. 4차 산업혁명의 아이콘으로 플랫폼과 미래자동차가 꼽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본에게 중요한 건 '필요'가 아니라 '수요'
4차 산업혁명이 모종의 ‘혁명’이라면 현재 이 혁명의 유력한 주체는 자본가들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하였으나, 자본가들에게 이윤을 가져다주는 건 필요가 아니라 ‘수요’다. 산간벽지와 낙도에도 전기와 가스가 ‘필요’하지만, 그리고 그곳에 전기와 가스를 공급할 기술도 개발되어 있지만, 이윤이 남을 만큼의 ‘수요’가 없다면 자본가들은 절대로 이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와 현대차 자본은 수소차가 공기를 정화하는 기능이 있다고 엄청 선전해댄다. 수소 연료전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기 중의 산소를 순도 높게 공급해야 해서 고성능 필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연료전지 효율과 이윤율 제고라는 목적을 추구하다 얻어진 부산물일 뿐이다. 더 효율적인 다른 방법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버려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자본의 이윤율이 바닥을 헤매는 자본주의 위기 시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본가들이 찾는 새로운 수요들은 어쨌건 ‘필요’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어야만 수요가 만들어지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다만 그것이 유효한 수요가 되기 위해서는 이 상품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충분한 소비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산업혁명을 자본가들에게 맡겨놓을 이유가 있을까? 인류가 필요로 하는 것 중에 충분한 수요가 발생하는 곳만 자본가들이 노리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오히려 이 문제를 공공의 영역으로 옮겨놓으면 충분한 수요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류가 필요로 하는 것을 상용화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4차 산업혁명의 주체를 바꿔보자
‘카카오 모빌리티'와 같은 것을 예로 들어보자. 카카오는 콜택시와 유사한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며 빅 데이터를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모빌리티 영역으로 치고 들어오며 택시 부문과 충돌이 벌어진다. 그런데 정말로 모빌리티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서라면 이걸 공공 영역이 수행하는 게 정상 아닐까?
이를테면 택시 승차 거부의 주요 원인이 되는 사납금제를 폐지하고 완전월급제 실시를 유도할 수 있는 실력을 서울시가 갖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시가 저런 모빌리티 서비스와 플랫폼을 운영하면 되는 일이다. 택시업계가 서울시 보조금으로 살아가고 있음은 비밀이 아니고, 서울시민의 택시 사용에 대한 빅 데이터 역시 공공의 용도로 사용됨이 자연스러우니 말이다.
수소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기차와 달리 수소차는 비교적 덩지가 큰 차량에 적용하는 게 적합하다. 그렇다면 시내버스·광역버스·고속버스 등에 수소차를 적용하고, 여기에 투입되는 수소는 풍력·수력·태양열 등 대체 에너지를 사용하면 연비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연비 절감은 교통요금 인하로 직결되고 이는 시민들의 대중교통 이용을 늘려 교통체증 문제도 잡을 수 있다.
특히 이런 대중교통 버스의 경우 노선이 일정하기에 특정 거점에만 수소 충전소를 갖추면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충전소 하나 건설에 수십억이 들어가는 수소 충전 인프라의 비용도 대폭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 역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등 공공의 영역에서 수행한다면 훨씬 친환경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을 자본가들에게 맡겨둘 이유가 더더욱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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