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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섭 망언' 파문, "과연 한국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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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섭 망언' 파문, "과연 한국인인가"

<김완섭-이시하라 대담 전문> "한일군사동맹 만들자"

"북한에 대응해 한일 군사동맹을 만들자."
"앞으로도 일본은 아시아의 맹주로서 아시아를 리드해야 한다."
"조선총독부가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 발전도 없었다."
"일본 통치시대에 착취라는 것은 없었고, 근대화의 노우하우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일본 극우의 상투적 주장인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김완섭(金完燮.40)이라는 한국인의 주장이다. 그것도 한때 민주화운동을 했다던 이의 망언이어서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같은 망언은 일본의 대표적 극우 주간지인 <SAPIO>의 톱 대담기사(1.22~2.5 합본호)로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SAPIO>측은 이번 대담이 자신의 저서와 소설 연재를 통해 일본에게 '아시아의 맹주'가 되라고 호소해온 김완섭씨가 평소 '가장 만나고 싶었다'던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도지사(71)를 방문해 성사됐다고 적고 있다.

이시하라 도지사는 자민당 국회의원직을 25년간 역임한 뒤 99년부터 도쿄도 민선 도지사를 맡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 극우정치인. 오는 4월 도지사 임기가 다하는 그는 일본의 차기총리를 꿈꾸는 극우진영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조선총독부가 없었다면 현재 한국의 발전도 없었다"**

대담에서 김완섭은 이시하라가 도리어 낯 간지러워 할 정도로 철저한 저자세로 일본을 칭송하고 한국을 비하했다.

"이씨조선의 말기는 조선인들에게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은 나날이었다. 일본의 통치에 의해 근대국가로의 행보가 시작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전혀 사실과 정반대로 가르치고 있다. 요컨대 일제시대 이전은 대단히 좋은 시대였으나 일본이 오면서 지옥같은 사회가 만들어졌다고. 그런 교육에는 문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때 조선총독부가 세워지지 않았다면 현재 한국의 발전도 없었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일찌기 나폴레옹이 거느린 프랑스군이 독일에 쳐들어왔을 때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나폴레옹군이 자국의 낡은 관료체제를 타파하고 혁명정신을 전파하는 만큼 독일국민은 오히려 프랑스군과 함께 구체제와 싸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아시아 진출은 결과적으로 아시아의 근대화에 공헌한 면이 적지않다. 착취라는 것은 없었고, 근대화의 노우하우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일본은 아시아의 맹주로서 이 지역을 리드하기를 기대한다."

"북한에 대해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은 한일 양국이 동일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한일 군사동맹'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

한마디로 과연 김완섭이란 인간이 한국인인가조차가 의심스러운 망언의 연속이었다.

***박정희, "나는 일본의 조선통치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시하라는 이같은 김완섭의 주장에 혼쾌히 동의하면서, 자신이 아는 박정희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나는 70년대 후반에 후쿠다 전 수상과 함께 한국을 방문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만났었는데, 박대통령과 그의 각료들은 모두가 술을 마시면서 일본어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박대통령은 "나는 일본의 조선통치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대통령이 말하기를, 자신은 대단히 가난한 농촌의 자녀로 학교에 다닐 수 없었는데 일본인이 와 의무교육을 받지 않으면 부모가 처벌받는다고 명령해 학교에 가게 됐다. 그리고 성적이 좋자 일본인 선생이 사범학교에 가라고 권했고, 그후 군관학교를 거쳐 도쿄의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해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일본의 교육은 대단히 공평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게 박대통령의 말이었다. 그의 말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김완섭과 같은 망국적 사고의 '역사적 뿌리'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를 가늠케 하는 발언이었다. 친일잔재 청산이 안된 결과는 이처럼 독소가 오래 작동하는 것이다.

***김완섭이 '국가유공자'라면 제명해야 마땅**

문제의 김완섭은 지난해 2월 국내에서 <친일파를 위한 변명>(문예춘추 간)이라는 책을 펴내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당시 출판사는 "김구나 안중근은 과연 훌륭한 사람들이었나? 친일파는 과연 민족의 적이었나"라는 카피를 만들어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란 책은 국내 출간에 앞서 2001년 7월 일본에서 출간돼 30만부나 팔리기도 했던 문제의 책이었다. 이 책은 국내 출간후 청소년유해도서로 지정됐으며, 이에 김완섭은 "정부에 의해 판금조치를 당했다"고 일본에서 주장하고 있다.

당시 출판사측은 저자 김완섭의 프로필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작가, 저술가, 문화평론가. 1963년 광주에서 출생해 1982년 사레지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같은 해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1989년까지 물리학과 천문학, 역사와 정치경제학을 공부하였다. 1989년부터는 하이테크정보, 소프트월드 등 잡지사 기자로 일하다 1992년 이후에는 프리랜서로 번역 저술 등의 일을 했다. 5.18 국가 유공자이며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구로구청 농성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96년 이후 2년간 호주에서 거주하였으며 귀국 후 코스닥 신문사를 창간, 편집주간으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는 저술과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아인슈타인 원저인 <물리학의 진화>가 있으며 저서로는 <윈도우3><창녀론> 등이 있다."

과연 그의 프로필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현재 그가 일본에 체류중인 까닭에 확인할 길 없다. 하지만 그의 경력이 사실이라면 이는 간과할 대목이 아니다. 그를 '국가 유공자' 대상에서 제명해야 마땅한 게 아니냐는 게 지배적 여론이다.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더라"**

김완섭의 망언은 현재 일본 대학원에서 수학중인 한 프레시안 독자분의 제보와 자료 제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독자분은 <SAPIO>를 통해 김완섭의 망언을 읽고 프레시안에 장문의 글을 두차례에 걸쳐 보낸 데 이어, 문제의 잡지를 직접 구입해 우편으로 보내왔다.

이 분은 김완섭과 같은 '망국적 한국인'이 의외로 많다는 점을 알려와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을 쓴 김완섭이라는 사람은 저서가 한국에서는 유해도서로 규정되어 금서가 되어버린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국내에서 있을 곳이 없으니깐 일본에 와 있는가 봅니다. 두달 전부터 <SAPIO>에 등장해서 한국에 대한 비판과 일본은 한국에 해준 것이 참 많다는 등의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달에는 저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와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시하라가 한국은 사실 한국인이 원해서 일본에 합병된 것이고 일본은 한국에 많은 도움을 주고 근대화를 전파했다는 망언을 하자 옳다고 맞장구치는 식의 그런 기사였습니다. 기사주제는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가 되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이시하라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 그렇다치고 한국인인 이 김완섭이라는 사람은 조국에 무슨 원수를 졌다고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울화통이 터지더군요.
이런 사람이 해외에서 한국의 이름에 먹칠하는 것을 그냥 두고 봐야 하는 걸까요?"

"의외로 이런 극우계열의 잡지에 학국의 소위 사회적 인사라는 사람들이 많이 기사를 씁니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기사는 한국을 비난하고 폄하하는 재료로 쓰이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방송에도 자칭 한국 전문가라고 하는 한국인인지 재일동포인지 잘 모를 사람이 나와 노무현 당선자에 대하여 그릇된 정보를 제공하고 (코리아 리포트라는 잡지의 편집장이라고 하는데 노무현이 민족주의자라 앞으로 한일관계가 걱정된다는 근거없는 발언을 후지TV에서 뱉어내는 사람입니다. 이름은 변진일이라고 합니다. 제가 보낸 잡지에 그 글이 실려 있습니다.)

북한 문제에는 조선일보 관계자 및 기자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을 일본에서는 많이 봅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했습니다. 해외에서 그것도 한국과는 언제나 크고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는 일본에서 국익을 생각치 않고 경솔하게 발언하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프레시안이 그런 가짜 지식인들이 나라밖에서 행하고 다니는 잘못에 대하여도 조금 더 신경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김완섭과 이시하라의 대담중 문제 발언 전문.

***대담**

김: 일본이 메이지(明治)유신이후 조선반도와 중국에 왜 진출했다고 생각하는가.

이시하라: 나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대륙으로부터의 압박으로 정치적으로 고통받던 조선을 그냥 뒀다면 아마도 청국이나 제정 러시아의 식민지가 됐을 것이다. '그것보다는'이라는 판단에 따라, 당시 조선인들은 스스로 선택으로 일본과 합병을 바랬던 것이지 이것은 식민지화가 아니다. 일본이 무력으로 이를 강제한 적이 없다. 그것은 당신의 말대로 냉정하게 역사를 바라보면 대단히 정확한 사실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예컨대 한국사학의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시카고대학의 브레스 커밍스 교수도 일본의 조선경영은 영국의 인도경영과는 대조적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영국은 인도의 산업화에 역행해 농업사회로 퇴행시킨 반면, 일본은 1930년대 흥남의 질소비료공장, 수풍의 수력발전소, 진남포의 공업단지 등 당시 세계적으로 보아도 최고수준의 시설을 만들었다고.

내 책에도 상세히 쓰여있는데, 일본은 통치시대에 다양한 개혁을 한국에서 실행했다. 일본은 중국에서도 교육에 많은 투자를 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지금도 많은 한국인들의 증오의 대상이나 그의 공적은 대단히 크다.
조선에서는 1894~95년의 갑오개혁에 의해 근대교육이 시작됐으나 실상은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총독에 취임한 1906년만 해도 초등학교는 전국에 40개에 불과했다. 이토는 취임하자마자 조선인 관료들 앞에서 "당신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고 질타한 뒤 학교건설사업을 최우선시했다고 한다. 그 결과 1940년대에는 전국에 1천개가 넘는 각종 학교가 세워지기에 이르른 것이다.

이시하라: 나는 70년대 후반에 후쿠다 전 수상과 함께 한국을 방문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만났었는데, 박대통령과 그의 각료들은 모두가 술을 마시면서 일본어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박대통령은 "나는 일본의 조선통치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대통령이 말하기를, 자신은 대단히 가난한 농촌의 자녀로 학교에 다닐 수 없었는데 일본인이 와 의무교육을 받지 않으면 부모가 처벌받는다고 명령해 학교에 가게 됐다. 그리고 성적이 좋자 일본인 선생이 사범학교에 가라고 권했고, 그후 군관학교를 거쳐 도쿄의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해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일본의 교육은 대단히 공평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게 박대통령의 말이었다. 그의 말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김: 이씨조선의 말기는 조선인들에게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은 나날이었다. 일본의 통치에 의해 근대국가로의 행보가 시작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전혀 사실과 정반대로 가르치고 있다. 요컨대 일제시대 이전은 대단히 좋은 시대였으나 일본이 오면서 지옥같은 사회가 만들어졌다고.
그런 교육에는 문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때 조선총독부가 세워지지 않았다면 현재 한국의 발전도 없었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시하라: 그것은 (일본의 패전을 계기로) 독립한 국가가 근대화의 길을 걸어가면서 과거의 그런 역사는 없던 것으로 하고, 그런 역사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대만 사람에 비해 한국 사람이 일본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민족성에도 한 원인이 있다고 보는데, 당신은 양 측면 모두를 볼 줄 아는 것 같다.

김: 일찌기 나폴레옹이 거느린 프랑스군이 독일에 쳐들어왔을 때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나폴레옹군이 자국의 낡은 관료체제를 타파하고 혁명정신을 전파하는 만큼 독일국민은 오히려 프랑스군과 함께 구체제와 싸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아시아 진출은 결과적으로 아시아의 근대화에 공헌한 면이 적지않다. 착취라는 것은 없었고, 근대화의 노우하우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일본은 아시아의 맹주로서 이 지역을 리드하기를 기대한다.

이시하라: 맹주가 될 수는 없을지 모르나, 일본이 갖고 있는 힘을 발휘하면 한층 존재감이 있는 나라가 될 것은 분명하다. 또 그렇게 되면 일본과 한국의 과거 관계를 둘러싸고 여러 불만이 있는 쪽들도 새로운 우정과 이해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의 태평양함대를 끌고 일본에 개국을 압박한 페리제독이라는 인물이 있다. 나는 하버드대학에서 강연을 마치고 돌아올 때 그의 고향을 들린 적이 있다. 거기서 그의 일기와 보고서를 보았는데, 페리는 자신이 함대를 이끌고 돈 세계속의 여러 나라 가운데 일본이 가장 우수한 나라라고 적고 있었다. 대단히 교육수준이 높아 이 나라가 만약 서양문명과 만난다면 단기간에 거대한 군사.산업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다. 그대로 됐다고 생각한다.

김: 일본은 고립해 행동하는 면이 많다. 개인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다. 하지만 앞으로는 고립적 행동을 그만 두고 한국,대만 혹은 아시아의 각국을 파트너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시하라: 전적으로 공감한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세계가 좁아지면 한 나라가 한 나라만으로 살기란 불가능해지고 좋은 벗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이 일본에게 진정한 친구인가에 대해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일찌기 일본과 한국은 사이가 좋았다. 우리들은 대단히 펀더멘털한 아이덴터티(기본적 정체성)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민족이 갖고 있는 정신적, 또는 정념적인 특징이다. 예컨대 대만 가요를 일본인들은 거의 듣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가요를 일본인들은 대단히 좋아하고 있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예전에 일본 가요를 금지시켰었다. 그러나 그것을 표절하고 한국어화해 한국 가요로 만들어 히트시킨 예는 상당히 많았다. 지금도 일본 가라오케에 때때로 가보면, '이 노래는 가사만 바꿔 한국에서 발행하면 히트할 것'이라는 판단이 서는 가요가 많이 눈에 띈다.

이시하라: 그렇다. 문화교류는 자유롭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젊은이들의 교류가 새로운 일한관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김: 한국이 아직도 일본의 문화 유입을 막고 있는 것을 나는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원래는 2001년에 완전개방할 계획이었으나 역사교과서 문제때문에 연기됐다. 하지만 현재도 북한 문제 등 일본과 한국이 협력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시하라: 그것은 일본보다도 한국쪽에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라 생각된다. 동포가 분열되면서 북한은 대단히 광신적 나라가 됐다. 중국도 아직 정체가 분명치 않다. 러시아에서도 조용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일찌기 냉전구조 속에서 유럽에서 목격됐던 긴장과는 다른 것으로, 지금 북한은 대단히 위험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것에 대한 대응이 일본과 한국은 약간 다른 것 같은데...

김: 북한에 대해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은 동일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한일 군사동맹'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이시하라: 그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되나 아직 일본인들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김: 얼마전 인터넷을 보았더니 이시하라 도지사가 일본의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던데, 앞으로도 계속 도지사를 할 것인지 아니면...

이시하라:(손가락으로 입술을 막으며) 쉿.(웃음)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김: 앞으로는 한국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출판사를 만들겠다. 일본에서도 어떻게 하면 아시아 속에서 한국과 일본이 연대할 것인가에 대해 계속 연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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