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활동 하게 되면 생기부에 기록해주나요?"
"이 내용 생기부에 적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 생기부 잘 좀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오늘 배우는 내용 시험에 나오나요?"라면서 분주하다.
실력 향상에 힘쓰고 학교생활 즐기려 하기보다
성적에만 신경 쓰고 생활기록부만 엄청 챙기는 아이들을 보면
씁쓸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학교생활기록부가 자신의 인생을 좌우하는
요술방망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아이들이 불쌍하다.
안쓰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생기부를 위해 학교에 다니는 것 같아 답답하고
모든 활동이 생기부를 위함인 것 같아서 많이 씁쓸하다.
아이들은 힘들다. 학부모들도 선생님들도 힘들지만
아이들은 힘들다는 표정을 지을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더 많이 힘들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비교과영역, 수행평가, 모의고사,
봉사활동, 경시대회, 진로활동.
해야 할 일 너무 많아 고달프기 그지없고,
너무 많아서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학교생활기록부 비교과영역은 절대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 기획하고 탐구한 활동이라면 평가받을 수 있지만
일반적인 활동이나 학교에서 기획하여 다 같이 한 활동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교과 전형은 성적만으로 사정하니까 말할 필요 없고
종합 전형에서도 중요한 것은 학과 성적과 면접 점수이지
비교과영역 아니다.
천편일률적이고 대동소이한 특기 사항을 눈여겨볼 대학은 없다.
학교생활소설부라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떠도는 상황인데
어떻게 점수화하여 당락을 결정하는데 사용한단 말인가?
자기소개서 또한 대학입시 전형에 그다지 영향 미치지 못한다.
몇 백만 원을 주고 대필한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데
수험생이 썼다는 확신 전혀 없이
어느 대학이 어떻게 자소서 내용을 참고하겠는가?
상황이 이러함에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후 시작된 자기소개서 작성은
수시원서접수가 마감되는 9월 중순까지 두 달 이상 계속된다.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간에
수능 공부 밀쳐놓고 자소서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 모습은
코미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소서 작성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모습도 안쓰럽지만
더 큰 안쓰러움은 쓸거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상당 수 아이들은 쓸거리가 없다.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학업에 기울인 노력과 학습 경험'
을 쓰라 하는데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학업에 기울인 노력과 학습 경험이 없고,
'재학 기간 중 본인이 의미를 두고 노력했던 교내 활동'
을 3개 이내로 쓰라 하는데
의미를 두고 노력했던 교내 활동이 없으며,
'배려 나눔 협력 갈등관리 등을 실천한 사례'를 쓰라 하는데
배려, 나눔, 협력, 갈등관리 등을 실천한 사례가 없다.
쓸 내용이 없음에도 잘 쓰겠노라 낑낑대는 모습은
물고기 없는 웅덩이에서 고기 잡겠다고 뛰어다니는 어리석음이고
음식 재료도 없이 맛있는 음식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는 바보짓이며
맨손으로 그림 같은 예쁜 집 짓겠다고 덤비는 돈키호테이다.
대학입시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함이 분명한 자기소개서임에도
대학입시에 엄청난 역할을 한다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호들갑에 현혹되어
수능을 준비하는 대신 자기소개서에 매달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쓸거리 없이 학창생활을 보내도록 만든 교사인 나 자신이 밉다.
이래저래 많이 안쓰럽고 많이 화가 나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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