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삼성그룹 인사가 '찻잔속 폭풍'으로 끝났다. 노무현 당선자의 부산상고 1년 선배라는 이유로 승진여부가 관심을 끌었던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유임되는 등 소폭 승진인사로 끝났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같은 결정은 이 본부장을 승진시킬 경우 안팎의 따가운 눈총과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다른 기업 및 공공부처의 인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학수 구조본부장, 8년째 사장 유임키로**
삼성그룹은 13일 양인모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부사장 8명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승진 9명, 전보 5명 등의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 허태학 신라호텔 사장이 삼성석유화학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유석렬 삼성생명 사장이 삼성카드 사장으로, 이상현 삼성전자 국내영업사업부 사장이 중국본사 사장, 이재환 삼성벤처 사장이 삼성BP화학 사장, 배호원 삼성투신 사장이 삼성생명 자산운용 담당사장으로 전보됐다. 사장 승진인사에 따라 이현봉 삼성전자 부사장이 삼성전자 국내영업사업부 사장으로 올라가고 김인 호텔신라 부사장이 삼성SDS 사장, 이석재 삼성전기 부사장이 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으로 내정됐다. 반면에 이경우 삼성카드 사장은 카드부실 책임을 물어 경질됐다.
삼성의 이번 사장단 인사는 2명에 그쳤던 작년에 비해 대폭 늘어난 것이지만, 예년에 비해서는 중폭 정도라는 게 지배적 평가다. 하지만 삼성전자 등 계열사가 지난해 창사후 최대의 수익을 올린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소폭의 승진인사라는 게 지배적 평가다.
그러나 이번 인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인사를 앞두고 회장 승진설이 나돌았던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전자 부회장 승진설이 나돌았던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유임된 대목이다.
이와 관련, 재계에서는 예년보다 임원승진 발표일이 며칠이나 늦춰진 대목이나 삼성그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인사 갈등성'이 재계에 흘러나왔던 점 등을 근거로 들어, 삼성이 이번 인사결정을 하기까지 적잖은 내부진통을 겪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의 대정부 원칙은 '불가근 불가원'"**
재계 소식통에 따르면, 특히 이번 인사에서 삼성이 막판까지 고민한 대목은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의 거취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본부장의 경우 노무현 당선자의 고교 1년선배라는 점 때문에 그의 거취가 삼성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한때 삼성전자 부회장 내정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또한 그가 95년 사장이 된 지 올해로 8년째가 된다는 점에서도 그의 거취가 관심사였다.
그러나 노당선자의 고교 선배라는 이유로 이 본부장을 승진시킬 경우 재계 안팎의 따가운 눈총이 예상되는 데다가, 승진을 시키더라도 도리어 노 당선자의 '불쾌감'을 살 수 있다는 이유에서 '유임'쪽으로 최종결론이 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성은 이날 이밖에 전경련측이 이건희 회장에게 내달 6일로 임기가 끝나는 전경련 차기 회장직을 맡아줄 것을 여러 경로로 제의해 왔으나, 이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맡지 않기로 방향을 잡았다고 밝혔다. 삼성으로서는 가능한 한 새 정부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차원에서 내려진 결정으로 추정된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삼성의 정부와의 관계는 '불가근 불가원'이 원칙"이라며 "이번 인사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후계상속 차원에서 승진여부가 관심을 끌었던 이재용 상무보는 오는 14일 임원인사때 승진여부가 발표될 예정이며, 상무로의 승진설이 흘러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재용 상무보가 승진할 경우 정권교체라는 예민한 시점에도 후계상속은 예정대로 계속하겠다는 메시지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한편 이학수 구조본부장의 승진 여부를 예의주시하던 재계와 금융계, 관료계에서는 이번 삼성의 조심스런 인사를 계기로 한때 검토했던 부산상고 출신들의 중용 방침을 보류할 가능성이 높아 귀추가 주목된다. 국세청등 일부 부처의 경우 최근 부산상고 출신을 승진시켜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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