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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대신 자전거?…"'밥이 하늘' 모르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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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대신 자전거?…"'밥이 하늘' 모르는 대통령"

[현장] 4대강 사업으로 30년 농토 잃게 된 팔당 농민들

북한강 줄기를 따라 비닐하우스 수백 채가 끝없이 이어진 팔당 유기 농업 단지. 비가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은 을씨년스러운 겨울 날씨 탓일까. 봄철 과일 생산을 위해 한창 바쁠 시기인데도, 정작 농민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30일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에 위치한 팔당 유기농 단지를 찾았다. 이곳 팔당생명살림 앞 임시 천막에는 '4대강 사업 막아내자'는 내용의 현수막이 여기 저기 내걸린 가운데, 많게는 30년 동안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이 몇달 째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오랫동안 일구어 온 농토를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두물머리의 오후.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서 '두물머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의 자연 경관은 4대강 사업으로 제방과 위락 시설이 생기면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프레시안(선명수)

'4대강 사업 저지' 단식 농성하는 천주교 신부들

"신부님이 기자는 만나지 않겠다고 하세요. 죄송하지만 두 분 교수님만 모시겠습니다."

4대강 사업 저지를 요구하며 한 달 가까이 단식 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윤종일(54) 신부는 언론 노출을 꺼렸다. 결국 윤 신부의 단식 소식을 듣고 위로차 방문한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의 이상돈 중앙대 교수와 이원영 수원대 교수만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4대강 사업으로 고통 받는 피조물의 아픔과 함께 하겠다"며 단식 기도를 시작한 지 이날로 벌써 20일. 그가 혼자 머물고 있는 컨테이너 앞에는 '침묵 기도 중'이라는 작은 알림판과 함께 낡은 신발 한 켤레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 윤 신부가 침묵 기도를 진행하고 있는 농성장. 그가 혼자 머물고 있는 컨테이너 앞에는 '침묵 기도 중'이라는 작은 알림판과 함께 낡은 신발 한 켤레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프레시안(선명수)

윤 신부는 지난해 말 이곳에서 열린 '생명 살림 미사'와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비상 행동'을 이끄는 등, 줄곧 팔당 지역 농민들의 싸움에 함께해왔다. 그는 이달 1일로 단식을 마치고, 천주교 연대의 다른 신부가 '릴레이 단식'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사실 이 지역에서 단식 농성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농지 보존·친환경 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상수원공동대책위원회' 유영훈 대표(56)도 지난해 말 20일 동안 단식을 진행했었다.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던 농민들이었다. 정치권도 언론도 주목했던 4대강 사업 반대 여론은 금방 식는 듯했고, 사람들의 관심도 멀어져 갔다.

30년 일군 농토에서 '불법 점유자'가 된 사람들

"정부가 지원금까지 주면서 장려했던 유기농인데, 이제 와서 상수원 오염의 주범이라니요. 하루아침에 오랫동안 일군 농토를 잃게 된 것만으로도 속상한데, 친환경 농업을 한다는 농민들의 순수한 자긍심마저 빼앗다니…."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두물머리에서 10년 째 농사를 짓고 있는 서규섭(42) 씨.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난다고 해서 '두물머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에는 약 43만 평의 유기농 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2000년부터 딸기와 달래 농사를 짓고 있는 서 씨는 곧 땅을 잃어버릴 처지가 됐다. 정부의 4대강 사업 중 '한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이곳 유기농 단지는 전면 철거되고, 이곳엔 곧 자전거 도로와 위락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팔당 지역은 국내에서 유기농 '태동지'로 꼽힌다. 수도권 최대의 유기농 단지로, 수도권의 35만 가구에 친환경 식품을 공급한다. 1975년 팔당호 일대가 상수원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뒤부터,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하천 부지를 개간해 채소·과일 등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화학 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거름으로 꼬박 30년을 경작해온 농토였다.

정부의 지원도 활발했다. 1995년부터 경기도와 농협은 상수원 보호 차원에서 농민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며 직거래 판로를 열어줬다. 지자체는 이곳을 '유기 농업 특구'로 지정하고 유기농을 적극 권장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 이명박 대통령도 이곳을 찾아 농민들을 격려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서 '한국 유기 농업의 메카'는 한 순간에 '한강 살리기 사업 제9공구'로 '전락'했다. 국토해양부는 하천 부지 내 비닐하우스를 철거해 유기농 단지를 없앤 뒤 제방 도로·생태 공원·자전거 도로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로 인해 사라질 면적은 총 21만여 평. 전체 유기농 단지 면적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정부의 느닷없는 발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농민들도 100여 가구에 이른다. 이곳 주민들이 2007년 팔당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을 거꾸로 들고 다니는 이유다.

두 번 쫓겨나는 사람들…"친환경 농토 죽여 '레저 시설' 만든다니"

사실 '어이없이 쫓겨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5년 팔당댐이 생기면서 이미 한 차례 땅을 빼앗긴 농민들은 간신히 하천 부지 점용 허가를 얻어 농사를 지어왔다. 농민들의 분노가 더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팔당생명살림 방춘배 사무국장은 "5~6대째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온 토착민의 경우, 아버지 세대가 한 번 쫓겨난 것에 이어 두 번째로 땅을 잃게 될 위기"라고 말했다. 방 국장은 "1975년 이곳이 상수원 보호 구역으로 묶이면서 많은 규제들이 생겼다. 사실상 경제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땅을 잃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유기농업"이라고 설명했다.

▲ 위로차 농성장을 찾은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의 이원영, 이상돈 교수가 지역 농민들과 함께 역시 농성장을 방문한 이화여대 학생들과 감담회를 열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사실 하천 부지는 국유지다. 국가의 점용 허가를 받아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인 만큼, '공익'을 위해 다시 땅을 내놓으라는 정부의 목소리가 거센 이유다. '4대강 사업 반대 국민 소송단'의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는 "소유권도 재산권이지만, 엄밀히 말해 임대권도 재산권의 범주에 포함 된다"며 "적법하게 허가를 얻어 몇십 년 동안 무리 없이 일궈 온 땅을 갑자기 국가 재산이라며 빼앗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친환경 농업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농민들이지만, 이들은 정부에 의해 한 순간에 '상수원 오염의 주범'으로 전락했다. 농민들의 분노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규섭 씨는 "유기 농업은 균형 잡힌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땅의 지력을 살리는 농업인데, 이것도 오염이라면 물을 가두고 강 바닥을 준설을 하는 4대강 사업이야 말로 오염이 아닌가"라며 항변했다. 수도권 시민의 건강과 직결된 상수원 보호 구역에서 4대강 사업으로 위락 시설이 생겨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상수원을 파괴하는 정부의 '억지 논리'라는 주장이다.

정부의 논리에 당장 유기농의 환경 영향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달 팔당 농민들은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 캐서린 디마티오 회장이 보내온 "유기농은 수질을 오염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물을 정화시킨다. 프랑스와 독일 등에선 상수원의 수질을 유지하기 위해 유기 농업을 하도록 정부가 지원한다"는 내용의 연구 자료를 공개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국제유기농운동연맹 회장단을 만나, 유기농이 수질에 긍정적이라는 연구 자료를 제시하면 농지 유지에 노력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연구 자료 제시에도, 정부의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 북한강을 따라 비닐하우스 수백 채가 이어진 팔당 유기농 단지. 30년 동안 수도권에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해왔던 이곳은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곧 헐릴 위기에 놓였다. ⓒ프레시안(선명수)

밀어붙이기 식 개발로 생채기 난 지역 공동체

당장 정부는 지난해 11월 하천공사시행계획 고시를 내고 착공을 위한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미 공사 업체 선정이 끝났고, 농민들에게 보상과 대체 부지 협의에 응할 것을 요구하는 압박도 점점 심해지는 실정이다.

이에 요즘 이곳 농민들은 일주일에도 수차례 씩 '긴급 호출' 연락을 받는다. 지난해 10월 국토관리청이 경찰 7개 중대를 동원하며 측량을 시도해 농민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힌 이후로도, 몇 차례 씩 현장 실사를 위해 이곳 농지를 찾고 있기 때문. (☞관련 기사: "유기농 살린다던 약속, 대통령은 벌써 잊었나")

정부는 이주의 대가로 대체 부지와 2년치 농업 소득 보상을 제시했지만, 농민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남양주시는 덕소 인근 '신안농장'에 5만 평의 부지를, 양평군은 단월면에 1만 평의 부지를 각각 마련했다. 그러나 이들 땅이 사유지를 임대하는 것인 데다가 기간도 10년으로 한정돼 있어, 기한이 지나면 농민들은 또 땅을 찾아 떠돌아야 하는 신세가 된다.

더구나 이들 대체 농지를 개간한다 해도 유기 농업 인증을 받기까지는 시간이 걸려, 농민들로서는 쉽사리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강 하천 부지를 개간할 때도 토양 검사, 수질 검사 등을 받으며 토질을 살리는 것에만 꼬박 3~5년이 걸렸다.

▲ 두물머리에서 10년 동안 농사를 지어온 서규섭 씨. 그는 "4대강 사업은 땅을 잃은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죽어가는 생태계와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아야 하는 시민 전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프레시안(선명수)

무엇보다 정부의 보상 제의는 이곳 농민들이 오랫동안 일구어 온 '생활 공동체'에 생채기를 냈다. 벌써 7가구가 대체 농지 및 보상 신청을 마쳤다. 보상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갑자기 서 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면서, 일찌감치 포기하는 분들이 계시죠.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연세가 있는 분들은 체념부터 생기고…다 잃더라도 함께 가면서 이 공동체를 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인데…. "

팔당 농민들은 법원에 행정 소송을 비롯해 '하천공사시행계획고시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4대강 사업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단식 농성 등의 행동을 통해 꾸준히 알려나갈 예정이다.

서 씨는 "이 싸움은 땅을 잃은 농민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4대강 사업으로 죽어가는 생명체와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가 있는 시민 모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오랜 농성에 지치지 않냐'는 질문에 옅은 웃음만을 짓는 농민의 어깨 뒤로, '밥은 하늘입니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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