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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젊은 것들을 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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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젊은 것들을 논하지 말라"

[화제의 책] <요새 젊은 것들>의 세 저자를 만나다

TV에서는 하루에도 수십번 "나답게, 나답게, 나답게" 살라고 하지만, '루저'와 '엄친아'의 구분을 체화한 요새 '젊은 것들'은 더 이상 남들과 달라도 된다는 한가한 주문을 믿지 않는다.

15초짜리 주문에 잠시 안심할 것인가, 당장 TV를 끄고 스펙 하나라도 더 쌓을 것인가. '속성 자격증 취득' '글로벌 해외 연수'를 내건 현수막이 나부끼는 스펙의 전장(戰場)에서 젊은 것들은 루저가 될까 불안하다.

그런데 여기 일찍이 무기를 버린 이들이 있다. 투항은 아니다. "경쟁? 안 하면 그만"이라고 <요새 젊은 것들>(단편선·전아름·박연 지음, 도서출판 자리 펴냄)의 저자들은 말한다. 세 명의 저자들은 지난해 9월 캠퍼스에 나부끼는 '엄친아 되기' 기획안을 찢어버리고 그들만의 대자보를 붙일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렇게 나온 책은 젊은 것들의 젊은 것들에 대한 경험담이자 '급진적인' 사심이 녹아있는 사담집이다. 그 안엔 기성세대의 세대론이 포착하려고 한 20대의 보편적 형상이 아니라, 각각 치열한 삶의 현장이 있다.

학보사에서 글을 쓰다 시사월간지 <민족21>의 기자로 '꽂혀' 버렸으나 슬금슬금 소설가를 꿈꾼다는 전아름, 집회에서 '투쟁!'을 외치는 음악 노동자이자 인터넷에선 노이즈를 몰고 다니는 음악 평론가 단편선(본명 박종윤), 음악·다큐멘터리·사진 등 재밌어 뵈는 일은 다 하면서도 '욕망의 정치성'을 고민하는 쾌락주의자 박연. 세 젊은 것들은 왜 이 책을 썼을까.

▲ <발칙한 반란을 꿈꾸는 요새 젊은 것들>(단편선·전아름·박연 지음, 도서출판 자리 펴냄). ⓒ프레시안
"이 책은 도구다"

"88만 원 세대에 대한 내 생각은,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다. 우리 스스로 명명한 적 없는 이름이다. 우리 책은 또 다른 세대론을 내세우기 위한 게 아니다. 세대론은 현상의 껍질이나 뒷북에 불과하다." (박연)

저자들은 20대를 화두로 꺼내면서도 '88만 원 세대'니 '실크로드 세대', '20대 개새끼'처럼 20대 전체에 이름을 붙일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윗세대가 부여한 세대론을 갈아엎고 그들의 서사를 기록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펜을 인터뷰이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넘긴다. 이 책은 다만 도구일 뿐이란다.

그러니 특정 세대를 하나의 덩어리로 취급하거나, 88만 원 세대라는 프레임 속에서 20대가 가진 게 없기 때문에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라면 저자들이 공모하는 '반란'의 의미를 오해하고도 남는다.

27일 저자들을 인용한 <조선일보> 칼럼이 그런 경우다. 베이비붐 세대와 88만 원 세대를 돈벌이의 관점에서 비교한 이 칼럼에서 요새 젊은 것들은 "가난했더라도 희망가를 부르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군 베이비붐 세대의 옛 모습"으로 곡해됐다.

<조선일보> 쪽에서 박연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이 날품팔이꾼은 책 수천 부는 팔아 치워 줄 광고 효과를 가진 '1등 신문'과의 만남을 거절했다. 신문이 박연을 G(Global)세대로 묘사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G세대란 해외 경험이 있고 선진국을 적절히 활용하는, 외국어 능력과 글로벌한 마인드를 갖춘 이들을 이르며, 어른들이 시키는 일이 아니라 좋아서 하는 일을 한단다.

▲ 박연. ⓒ프레시안(최형락)
박연은 "글로벌에 세대가 붙어 어떤 보편을 가정한다면 그 보편이 다루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해외 연수 경험이 있는 사람이 G세대라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도 등록금을 내기 어려운 이들은?"이라고 반문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세대론이 싫다며 왜 20대인가다. 대답은 명료하다 "얘네가 연대하기 가장 쉽거든"(단편선). 아직 가진 게 없어서란다.

자신을 '생계형 빈민 포크 날품팔이'로 소개하는 단편선은 "88만 원 세대라는 규정은 현재 은폐되고 있는 날품팔이, 비정규직 문제를 드러나게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날품팔이면 할 수 있는 게 더 많다. 왜냐하면 (기존 룰에서) 가진 게 없으니까. 어떤 식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재편하는지 보여줄 수 있으니까"라고 긍정한다.

"난 아직 88만 원 세대란 말을 이용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대가 이 명칭을 죽도로 싫어해서, 우리의 긍정성을 찾아내야 한다는 거다. 그건 88만 원 세대가 300만 원 세대로 업그레이드 해서 '봤지? 우리 안 불쌍해'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틀 자체를 거부할 수 있는 급진적인 기제를 찾아내기 위한 방식이 돼야 한다. 우리는 경쟁 논리로 살지 않는 방식들을 계속 실험할 필요가 있다." (단편선)

"이 책에서 박가분이 '굳이 고급 모텔에서 섹스해야 되나?'라고 말한다. 그럴 필요 없다. 윗 세대에서 내려준 기준을 답습하지 말고 우리의 판을 짜야 한다는 의미다." (박연)

"보편적인 20대? 본 적 없다"

새 판을 짜기 위해 젊은 것들은 그들만의 서사가 필요했다. 따라서 취직을 희망하는 35퍼센트, 공무원 시험 패스를 희망하는 19퍼센트처럼 '다수의 20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아직 한 줌도 안 되지만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들의 사례를 깊이 캐러 다녔다.

"20대를 보여주고자 했을 때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보편성에 대한 집착이었다. 진로의 기로에 서 있다는 공통점 외엔 서로 너무나 다른 이들을 하나씩 보여주고 싶었다." (박연)

<조선일보> 주최 논술 대회에서 1등을 해놓고 신문과의 인터뷰를 거부한 '안티 조선' 운동의 아이콘 한윤형, 운동권의 길을 걸으며 천막 속에서 대학 생활을 해야 했던 '고대녀' 김지윤, 어린 나이와 독특한 문체로 기존 문단에서 애 취급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되받는 김사과, 큰 무대보다 거리 공연을 고집하는 '좋아서 하는 밴드' 등은 자신들도, 필자들도 인정하듯 모두 중심부로부터 튕겨 나온 예외적인 존재다.

그럼에도 이들을 한 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이유는 모두 나름의 유명세를 떨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단편선은 어느 사이트에서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를 싸잡아 '요즘 잘난 것들'이라며 비아냥하는 댓글을 읽었다고 한다. 스스로도 "기획 자체가 갖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일종의 엘리트주의적인 담론일 수밖에 없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만 예외적이라는 의식은 허구적"이라고 덧붙였다.

▲ 단편선. ⓒ프레시안(최형락)
"인문학도가 '인문학 공부 안 한 애들이랑 말 안 통한다'고 하지만, 공대 다니는 애들도 똑같다. 우리만 튕겨져 나온 게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 '평범한 애들'이란 표현을 쓰지만 정작 '보편'에 있다는 애들, 난 본 적 없다. 우리 세대에 유일한 보편성이 있다면 서로 할 얘기가 없어진다는 것뿐이다." (단편선)

할 얘기가 없어지는 해체 과정에 맞서려면 어떻게든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시다발적으로 구축하는 수밖에 없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20대가 가진 게 없기 때문에 새 판을 짤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할 얘기가 없기 때문에 비로소 공통의 지평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소수의 담론'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기계적인 평균을 거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큐멘터리 <개청춘>을 봤을 때 내 주위에선 반응이 엄청 뜨거웠지만, 아는 사람들만 아니까 '찻잔 속의 태풍'이 돼버리더라. 이걸 밖으로 이끌어낼 공통적인 지평이 필요했기에 한데 모아 출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자는 거다. 일단은 지금 있는 적극적인 목소리라도 모아주고 싶었다." (단편선)

"'날'(生) 인터뷰, 앞으로도 생산돼야"

이 책의 인터뷰에 참여한 아홉 팀도 대표성을 갖고 있어서라기보다 "뭔가 생산하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많은 사람들"이라서 선정됐단다. 세 저자에게 인터뷰이 '뒷담화'를 부탁했더니 "OOO 씨는 말이 너무 많더라…"부터 터져 나오는 걸 보니 모두 목소리 낼 기회가 간절했긴 했나보다.

"인디고서원 박용준 씨는 진짜 똑똑하고 꼼꼼하고 말도 많다. 뭔가 꽉 차 있는 느낌이었다. 여백 없는 남자라고나 할까? (일동 폭소) 끝나고 연락을 해서 원고를 보냈더니 조사나 이런 것까지 꼼꼼하게 체크해 준 답신이 오더라."

"한윤형 씨 인터뷰에 앞서 내가 준비한 포인트가 있었는데, 이야기 시작하자마자 '안 되겠다' 싶어서 내려놨다. (웃음) 이 사람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게 훨씬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한 거지. 그런데 원고는 그냥 내가 정한 포인트로 갔고." (웃음)

"박가분 씨는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고민 하는 게 많아서 그런지…. 대답을 몇 분간 하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1분 동안 가만히 있는다. 자신의 발언에 대해 판단을 하는 거지. 이게 지금 모순이 아닌가. 거기서 나는 질문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초조하고…." (일동 폭소)

"여성영상집단 '반이다' 세 분들 기가 너무 세서 우리는 눌려서 빌빌댔다. 살짝 농담하려고 하면 우리들을 갖고 노는 거다. 진짜 무섭다." (웃음)


저자들이 "제철 광어마냥 힘 좋게 펄떡거리는 아홉 개의 인터뷰"라 자평한 것처럼 <요새 젊은 것들>의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명력, 혹은 무절제함이 매력이다. 인터뷰도 격식 없이 진행됐다. 박연은 인터뷰이 앞에서 연애 상담을 하기도 했고, 단편선은 김사과와 무려 5시간 가까이 사담을 나누고 정리가 어려워 애를 먹기도 했다.

"별로 가진 게 없으니 간단히 '꼴아 박을' 수 있었다", "또래니 편견이나 계산 없이 만나고 뻔뻔한 질문도 던질 수 있었어", "인터뷰집도 좀 로우(raw) 하게 나오지 않았나. 이리 저리 튀기도 하고", "단편선이 좀 심하지", "인터뷰이 만나러 가는 길 묘사가 왜 이렇게 빡세냐?"

저자들은 앞으로도 날것의 인터뷰가 계속 생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연은 "여러 인물들을 조명해서 요새 젊은 것들 '백과사전'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단편선은 나아가 '릴레이 형식의 랜덤 인터뷰'를 구상 중이란다. 동시다발적 인터뷰와 기록을 통해 '로우 데이터'를 얻고, 이를 통해 공통의 지평을 넓힌다는 기획이다. <요새 젊은 것들>에 실린 아홉 개의 인터뷰는 그 작업의 시작일 뿐이다.

자뻑과 불안 사이에서

<요새 젊은 것들>의 공동 집필 방식은 <민족21> 기자인 전아름이 취재 때문에 알게된 단편선을 끌어들이고, 단편선이 '옷을 잘 입는다'는 이유로 박연을 영입하면서 틀을 갖췄다. 통일·정치 등 주로 강성 이슈에 발을 담그고 있던 전아름이었기에, '음악한다고 깝치고 평론한다고 욕먹는' 단편선과 문화 운동 전반에 발을 걸친 박연이라면 인터뷰집을 다채롭게 만들어 줄 거라 생각했단다.

기대는 120퍼센트쯤 맞았다. 관심 분야가 다른 셋은 '철타쿠(철학 오타쿠)'부터 패션계 종사자까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을 함께 모셨다. 20퍼센트의 다채로움은? 전아름이 네 번의 인터뷰에서 실패하고, 단편선이 연애사에 휘말려 정신을 못 차리고, 박연이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아프리카로 '도주'해 프로젝트 분산 직전까지 가는 등 사건·사고의 몫이다. 셋은 다시 모여 작업할 의향을 묻자 손사래를 치지만 이번 공동 작업으로 "많이 배웠다"고 입을 모은다.

▲ 전아름. ⓒ프레시안(최형락)
"처음에 박연이 <크래커> 취재하자고 했을 때 반대했다. 내가 속한 곳이 원론적 이야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패션지-광고-자본주의는 같은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뷰 내용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다. 나 혼자 했다면 전통적인 좌파 담론 이야기하는 사람만 섭외했을 텐데, 다양한 이들과의 만남으로 내 틀을 깨는 경험을 했다." (전아름)

"나는 일단, 즐겁게 사는 이들을 만나다 보니 쾌락주의가 더 강해졌고, (웃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데 '단순한 방법'이 많이 있다는 걸 더 확실히 알게 됐다.

어른들에게 진로에 대해 물으면 회사에 들어가거나 어떤 시험을 통과하는 방법밖에 가르쳐주지 않는다. 가령 잡지 기자 되고 싶다고 하면 선배 에디터를 만나보고, 어떤 회사엔 어떤 식으로 이력서를 넣고….

그런데 <크래커> 장석종 씨나 좋아서 하는 밴드나 '붕가붕가레코드'의 곰사장 등 내가 만난 이들 모두는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복잡한 방식을 따르지 않고도 아주 화끈하게 만들고 싶은 걸 만들었다. 이런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박연)


그러나 그 단순한 방식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대기업, 높은 연봉, 외국어 실력처럼 일률적으로 정해진 잘나고 못나고의 기준을 무시하려면 적당한 '자뻑'과 허세는 필수다. 전아름, 단편선, 박연 모두 경쟁 질서에 반(反)해 갈 생각이라니 자뻑엔 도가 텄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들 의외로 수줍다. 전아름이 "나도 자뻑하고 싶다"고 고백하더니, 제 잘난 맛에 사는 줄 알았던 단편선도 "나도 중2병 걸리고 싶다. 허세 제대로 못 부리고 있거든"이라고 실토한다. 중 2병이란 '난 달라'라는 생각으로 꽉 찬 중학교 2학년의 정신 상태를 빗대는 말이다.

"이 책을 보면 내가 경쟁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으로 비춰지겠지만 나도 굉장히 휘둘린다.(웃음) 학자금은 언제 갚지? 다섯 살 쯤 더 먹었을 때 돈을 더 많이 주는 직장에 가고 싶어지지 않을까? 나한테는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닐까? 늘 불안하다." (전아름)

자뻑과 불안 사이, 이들은 바닥을 치더라도 당당하게 행복하길 원한다. 박연은 자신의 인터뷰이들을 떠올렸다. "내가 만난 이들도 학벌에 대한 기대치나 취직해서 돈 잘 벌 수 있는 가능성을 접어두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을 거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런 길에 회의를 느끼고 스스로 바닥을 쳐 봤던 거다. 원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뭔가' 고민했던 거고." 이런 불안이라면, 젊디 젊은 세 저자의 행보에 독이 될 리는 없을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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