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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세 아이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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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세 아이의 아버지'

'좋은 아빠 되는 법' 소개한 김승호씨 책 출간

김승호씨와 맨처음 연락이 닿았을 때 일이다. 프레시안에 글을 연재하기로 약속하면서 앞으로 자신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때 '세 아이의 아버지'로 적어달라 했다.

예상치 못한 신선한 주문이었다. 아버지 사랑이야 국내든 해외든 뭐가 다르겠냐마는, 애정 표현에 서툰 우리나라의 아버지들 입장에서 보면 생각해볼 대목이 게 많은 주문이었다.

그후 김승호씨는 매주 한번도 거르지 않고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김승호씨는 네티즌들 사이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25가지 삶의 지혜'라는 글로 이미 유명인사의 반열에 올라있다. 그런 만큼 그의 담백하면서도 위트가 넘치고, 삶의 내음과 지혜가 짙게 배인 글은 그의 글이 실리는 월요일 아침 프레시안 독자는 물론, 많은이들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했다.

김승호씨가 그동안 프레시안에 연재했던 글과, 평소 써놓았던 글을 엮어 이번에 한권의 책을 펴냈다. <좋은 아빠 노릇, 좋은 엄마 노릇하기보다 쉽지>(학원사 간)라는 다소 긴 제목의 책이다.

하지만 그동안 그의 글을 접했던 독자들이 보면 이 책의 제목이 이해간다. '좋은 아빠 노릇하기'를 굉장히 어려워 하는 국내 아빠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글이 단지 아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뿐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내는 글과 그가 살아오면서 느낀 삶의 편린에 대한 글들도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전체 내용을 포괄하기에는 제목이 조금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이메일로만 서로 연락을 주고 받다가 얼마 전 김승호씨가 사업차 잠시 국내에 들러 처음으로 상견례를 할 기회가 있었다. 1964년생의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는 동안(童顔)이었다. 글 속에 담겨 있는 깊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젊었고 맑았다. 김승호씨는 술을 한 방울도 못했으나, 언제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만남은 빠르게 지나갔다.

김승호씨의 맑은 얼굴을 보면 그다지 고생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세 아이의 아버지'인 동시에, 지금 미국 최고역사를 자랑하는 굴지의 유기농 제품 전문백화점 회장으로 미국내 대형매장만 여섯군데를 소유하고 있는 성공한 실업가이다.

하지만 초면에 결례인듯 보여, 그의 성공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 보내온 글을 통해 그가 깨끗한 외모와는 달리 고등학생시절 가족이 다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생활에 적응하기까지에 남모를 고통과 좌절의 시간을 보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은 김승호씨 책에는 실려있지 않은, 그의 살아온 역경이 담겨있는 '개구리 한마리 키워보시죠'라는 글의 일부분이다.

"내게는 오래된 그림이 한 장 있다.
누가 어떤 이유로 내게 보내 줬는지,
하도 오래 된 일이라 잊어 버렸다.

자본도 없이 망한 식품점 하나를 인수해서
온 식구들이 이리저리 뛰어 다니던 이민생활 초기였다.

당시에 누군가 팩스로 그림 한 장을 보내 줬는데
연필로 스슥스슥 그린 그림이다.
휴스톤에 사는 어떤 미국 친구가 그렸다는 소문도 있고
자기 아는 누가 그렸다하는 이야기도 들은 듯한데
보내준 이가 누군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여튼 그날 이후,
황새에게 머리부터 잡혀먹게 된 개구리가
황새의 목을 조르고 있는 이 한 컷짜리
유머러스한 그림은 내 책상 앞에 항상 자리 잡고 있다.

그림을 설명하면
잡풀이 깔린 호숫가에서 황새 한 마리가
개구리를 막 잡아내어 입에 덥석 물어넣은 모습이다.
개구리 머리부터 목에 넣고 맛있게 삼키려는 순간,
부리에 걸쳐 있던 개구리가 앞발을 밖으로 뻗어
황새의 목을 조르기 시작 했다.
느닷없는 공격에 당황하며 목이 졸리게 된 황새는
목이 막혀 숨을 쉴 수도 없고
개구리를 삼킬 수도 없게 되었다.

나는 지치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제목도 없는 그림을 들여다보곤 했다.

이 그림은 내가 사업적인 곤경에 빠졌을 때
그 어떤 누구보다도 실질적인 격려를 주었고
희망을 잃지 않도록 일깨어 주었다.
무슨 일이든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회를 살피면 헤쳐나 갈수 있다는 용기를
개구리를 보며 얻을 수 있었다.

가족이 운영하던 비즈니스가 차츰차츰 성장을 하면서
가족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돈을 벌던 것을 벗어나 보려 했다.
그래서 새 사업을 시작했다가
몇 년 동안의 수고를 다 잃어버리고 난 아침에도,
나는 이 그림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재산보다 많은 빚을 가지고 이국나라에서
실패를 딛고 다시 성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절망감이 온 몸을 싸고돌았고
나의 실수가 내 부모들의 노후와
자녀들의 장래를 모질게 하게 된다는 생각으로
죄책감과 슬픔이 머리채를 휘어잡게 하곤 했던 시절이었다.

어느 수요일 날,
아침저녁으로 지나가는 길에 있던
휴스톤에서 유명한 소매 유통업체가 경영자들의
이권 다툼 끝에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장 하나당 시세가 4백만 불이나 된다는 그 회사는
내 형편으로 욕심을 부리기에는 터무니없었다.
더군다나 동양인에게는 절대 안 넘기겠다는
이상스런 소문도 들렸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68불(68만 불이 아니다) 정도가 있었다.
당장 그 회사 사장을 찾아내 약속을 하고
그 업체의 거래 은행을 찾아가 은행 부행장을
만나 도와 달라 부탁을 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매일 아침마다
그 회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그 회사를 바라보며
“저건 내꺼다. 저건 내 꺼다” 라고 100번씩 외치고 지나갔다.

그로부터 8개월을 쫓아다닌 후,
나는 네 개의 열쇠를 받았다.
나의 죽어가는 회사 살리는 재주를 믿어준 은행과
내 억지에 지쳐버린 사장은 100% 융자로
40년 된 비즈니스를 나에게 넘긴 것이다.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이익의 25%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통해 동요하는 직원들과 함께
비즈니스를 키워나갔다.
매출은 1년만에 세배가 오르고
이듬해는 추가 매장도 열었다.

만약 그때 내가 절망만 하고 있었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그 개구리처럼 황새의 목을 움켜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수많은
절망적인 상태에 놓이게 된다.
결코 다가서지 못할 것 같은 부부간의 이질감,
평생을 이렇게 돈에 치어 살아가야 하는 비천함,
실패와 악제만 거듭하는 사업,
원칙과 상식이 보이지 않은 사회정치적 모멸감,
이런 모든 절망 앞에서도
개구리의 몸짓을 생각하길 바란다. (후략)"

며칠 뒤 김승호씨가 다시 한국에 들른다 연락이 와 함께 자리를 같이 하기로 했다. 벌써부터 만남이 기다려진다. 다음에 만나면 그가 살아온 얘기를 보다 자세히 들어 독자분들에게 '인간 김승호'에 대해 보다 자세히 소개하고 싶다.

이번 글은 '인간 김승호'를 쓰기 위한 예고편 정도로 보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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