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정부는 2018년 12월, 4개의 개혁 대안을 포함하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하고 국회에 보고했다. 아울러 국민연금 개혁 방안에 대한 '사회적 대화' 추진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작년 11월부터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소득보장 특별위원회(이하 연금특위)'에서 개혁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6개월로 정해진 1차 논의 시한이 4월 말에 끝나면 필요 시 7월까지 3개월 더 연장할 수 있다.
의미 있는 합의 도출을 위해 연금 개혁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다시 새겨보며, 지금까지의 개혁 논의 진행 사항을 평가해 보고, 성공적인 사회적 타협에 이르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 모든 공적 연금 포괄해야
'국민연금 개혁 논의' 모든 공적 연금 포괄해야
먼저 작년부터 지금까지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살펴보자. 이번 개혁에서는 정부는 '국민연금 제도 발전위원회'의 건의를 바로 정부 입법으로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연금 개혁 논의는 국민연금에 한정되지 않고 다른 공적 연금을 포함한 노후 소득 보장 제도 전반을 포괄해야 한다. 공적 연금들은 물론 퇴직연금 등 사적 연금까지 포괄한 폭넓은 개혁 논의를 해야 지속가능한 노후 소득 보장 제도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장관 산하의 제도발전위원회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넘어서는 영역까지 다룰 책임이나 권한이 없다. 따라서 대통령 직속 상설 자문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연금특위'에 사회적 논의를 부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8월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국민과 함께 충분히 논의하여 기초연금과 퇴직 연금까지 포함한 개혁 논의를 하라"고 지시하였다. 개혁 논의의 범위에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을 포함하는 것, 개혁 전략에 제도 간 통합을 포함한 구조 개혁이나 근본 개혁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노후 빈곤과 연금 격차, 그리고 세대 간 갈등의 엄혹한 실상을 해소하고 사회적 연대라는 공적 연금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근본 개혁과 구조 개혁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 이슈는 연금 사각지대, 용돈 수준의 불충분한 연금 문제, 재정 불안정성 문제 등 무수히 많다. 연금을 둘러싼 집단 간 이해도 현 세대와 미래 세대, 노동자와 대기업 경영자, 소상공인 등 각 주체마다 복잡하게 대립한다. 이렇게 방대한 의제들과 복잡한 이해관계들을 단칼에 해결하기는 어려운 만큼, 제대로 된 사회적 타협 과정이 필요하다.
이제 사회적 논의 기구를 설치한 곳의 위치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의 사회적 대화 기구를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의 경우와 달리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설치하지 않았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에 설치하였다.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가지고 노후소득보장 문제를 제대로 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선진국에서 연금 개혁 성공의 열쇠였던 '인내하는 사회적 대화'
지금처럼 독립적인 대타협기구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율적인 논의 과정을 거친다면 매우 의미 있는 타협의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 논의'가 실질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선진국들의 예를 들어보자. 서구 복지국가들은 과도한 복지에 대한 위기를 느껴 1980년대 이후 너도나도 급여 삭감 개혁을 추진하였다. 제도 가입자들은 격렬하게 반발하였다. 그 와중에 정년을 1~2년 연장하는 정도의 연금 개혁을 시도하다가 좌초한 경우도 있고, 새로운 제도 도입 등 어려운 구조 개혁을 국민의 반발을 잠재우고 성공시킨 사례들도 있다. 연금 개혁에 실패한 경우를 보면 대개 개혁의 당위성만 믿고 정치적 힘에 의지하여 조급하고 일방적인 개혁을 시도한 경우였다. 반면에 어려운 개혁을 성공시킨 이면에는 정부가 인내를 갖고 정치, 사회, 경제의 사회적 파트너들과 진지하게 대화하고 타협을 시도한 결과였다.
여기서 근본적 개혁을 성공시킨 사례 하나만 들어보자. 1980년대 후반, 스웨덴은 국민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면서도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겠다는 비전을 세우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이념과 이해를 초월한 개혁 노력을 지속하였다. 13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정당 대표들을 중심으로 한 논의기구에서 대화와 타협을 이어갔다.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1998년에 '명목 확정 기여 제도(NDC, 가입자가 낸 보험료에 연동해 연급이 지급되는 방식. 미래 연금액이 가입자가 낸 보험료 수준과 상관 없이 결정되는 확정 급여형보다 재정 안정화에 방점을 둔 방안이다)'와 '최소 연금 보장 제도'를 동시에 도입하는 개혁에 성공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럽과 같은 '민주적 코포라티즘(democratic corporatism)', 즉 노동계와 경영계가 대화의 주체가 되고 정부가 적절히 개입하여 사회 정책을 결정하는 전통이 없다. 따라서 이번 국민연금 개혁에서 '사회적 대화'에 성공한면, 우리나라 사회정책의 역사에 하나의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우리의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이 부분을 살펴보자.
연금 개혁의 사회적 대화, 문제 분석과 쟁점 토의에서 더 치열해야
연금특위는 지금까지 12차에 걸쳐 각종 회의와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진행되는 논의를 지면으로 살펴보면서 몇 가지 아쉽고 우려되는 점들이 있다. 먼저,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대한 각 이해단체 대표 상호 간, 그리고 전문가들 간에 집요하고도 치열한 쟁점 토론이 부족한 것 같다.
첫째, 보험료 수준의 적정성에 대한 판단과 처방이다. 보험료 수준이 낮다고 판단하기에 앞서 왜 20년 이상이나 되는 긴 기간 동안 보험료율이 9%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명확히 나와야 한다. 단순히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때문인가? 아니면 보험료율을 올릴 경우 영세 자영업자들이 제도권 밖으로 쫓겨나 국민연금 존립의 정당성마저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우려하기 때문인가? 만약 후자라면 재정 안정화라는 명목으로 보험료를 올려서 노후 소득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영세 자영자들의 보험료 지원이나 최소연금 제도 등의 보완적 장치를 도입하면서 점진적으로 보험료율을 올려야 하는가? 끝장 토론을 해서라도 답을 얻어야 한다.
둘째, 개혁 논의의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국민연금과 특수 직역 연금 간의 연금 격차를 그대로 두어도 좋은가? 공무원연금이 '귀족 연금'이라 비난을 받는 것이 과연 불가피하고 이런 상황을 방치해도 된다는 것인가? 내년이면 공무원연금 재정 계산의 해인데, 또 다시 연금 차별 논란에 휩쓸려 사회적 갈등과 국력 소진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셋째, 국가의 재정 책임에 대한 논의는 왜 진행하지 않는가? 국민연금은 사회보험 연금임에도 그 속에 강력한 소득 재분배 기능을 담고 있다. 그런데 소득 재분배의 부담을 제도 가입자인 고용주와 피고용자들에게 모두 전가하고 있다. 국가가 재정 책임의 주체가 아닌 시혜자로 물러나 있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사회 보험 연금 국가에서 연금 제도에 재분배 요소를 도입한 나라들은 거의 모든 국가가 재정 책임을 무겁게 이행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왜 공적연금 개혁 논의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배제하고 있는가? 국가의 재정 책임을 배제하면서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적정 소득을 보장하고 장기적 재정 안정화까지 이룰 수 있는 비법이 과연 있다고 보는가? 독일은 어떤 논리로 과거부터 연간 연금 급여의 25%에 상당하는 비용을 국가 예산으로 지급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분명한 답을 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충분한 논의 기간을 확보하기를 요청한다. 사회적 논의를 조급하게 마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쟁점 토론의 본격적인 시작일 뿐이다. 한 달 남은 기간에 모든 쟁점을 충분히 토론하여 타협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과도한 욕심이다. 추가 연장 석 달의 기간을 반드시 확보하여 최대한 쟁점토론과 타협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개혁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래도 시간이 부족하다면 해를 넘겨서라도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정부나 국회에서 구체적 논의를 이어갈 수 있도록 중요한 정책 방향과 이행 기준만이라도 합의를 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연구 인력과 재원 등 모든 역량을 사회적 논의의 지원에 투입해야 한다. 또한 국민에게 중간보고를 하고 공청회를 거쳐 피드백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다듬어진 개혁안은 명실 공히 전문성과 함께 각계각층 국민들의 이해가 반영된 정당성을 갖춘 개혁안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도, 국회도 이 타협안을 존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이렇게 개혁 법안이 완성됨으로써 역사적인 사회 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것이며, 또 이런 과정과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우리나라도 선진 복지국가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이재섭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회복지위원장은 공적연금개혁대책위원장입니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http://www.podbbang.com/ch/10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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