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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병' 사건, 검찰 체면인가? 국민 안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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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병' 사건, 검찰 체면인가? 국민 안전인가?

[안종주의 안전사회] '햄버거 병' 사건, 발생 2년 여 만에 재점화

지금은 일곱 살이 된 아이는 2년 6개월 전 자신이 햄버거 하나를 몽땅 먹은 것을 자책한다. "엄마! 햄버거를 (내가) 혼자 다 먹어서 그렇지? 욕심내면 안 됐었는데." 이 말이 자꾸 최은주 씨의 가슴을 후벼 판다. 딸은 지금 '햄버거 병'으로 콩팥 기능의 90%를 잃어 매일 10시간씩 고통 속에 혈액투석을 하며 생을 이어가고 있다. 이 딸을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이런 말까지 들을 때는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다.

아이들이 햄버거를 좋아하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햄버거 하나를 모두 먹은 것은 자책할 일이 결코 못된다. 그날 큰 딸은 하나를 다 먹고 나머지 하나는 아버지와 동생이 나눠 먹었다. 그 때문인지 두 사람은 가벼운 증상을 앓고서 나았다. 이를 알고 큰 딸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엄마와 딸은 집 인근 맥도널드 패스트푸드점에 간 것을 줄곧 후회하고 있다. 하지만 맥도널드 쪽은 단 한 번도 그 책임을 인정하거나 최 씨 가족에게 직접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맥도널드는 아이가 '햄버거병', 즉 요독성용혈증후군에 걸린 것은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그리고 검찰에서 이와 관련해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할 뿐이다.

우리 사회의 풍경 : 피해자는 자책, 가해자는 뻔뻔함

가해자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발뺌하는 반면 피해자가 외려 자책하는 일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많이 보아온 풍경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경우에도 그랬다. 사건이 불거진 2011년에는 물론이고 아직도 많은 피해자 가족들이 자책하고 있다. "내가 마트에서 가습기살균제를 사지만 않았더라도 아이가 죽거나 장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들, 즉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회사들은 검찰이 수사하기 전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증거 조작까지 해가며 다른 원인이 있다고 둘러댔다.

최 씨 일가족 네 명이 경기도 평택의 한 맥도날드 점에서 햄버거를 사먹은 것은 지난 2016년 9월 25일이었다. 큰 딸은 그 다음날부터 설사와 복통에 시달리다 이틀 만에 혈변, 삼일 째 혈소판감소, 급성신부전증과 뇌경련, 그리고 심장마비까지 왔다. 아이는 O157:H7로 대표되는 장출혈성대장균이 내는 시가독소의 의한 다발성 장기손상들과 뇌신경 손상이 있었고, 맥도날드의 불고기버거를 먹은 지 약 일주일만인 10월 2일 심장정지까지 가는 위험에 처했다가 운좋게 겨우 생명을 부지했다.

최 씨의 사례는 그 뒤 일부 언론에 소개됐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증상으로 고통을 겪은 어린이 4명의 부모와 함께 2017년 7월 한국맥도날드를 식품위생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소했다(이때까지의 이야기는 <프레시안> 안종주의 안전사회 "네 살배기 '햄버거 병' 터질 게 터졌다-햄버거 패티가 위험한 까닭", 2017년 7월 7일자 참조)

검찰은 고소가 있은 뒤 석 달 더 넘게 지난 10월 18일 한국맥도날드와 그곳에 패티를 납품한 맥키코리아 그리고 유통업체를 압수수색 했다. 하지만 고소 7개월 뒤인 지난해 2월 한국맥도날드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불기소' 처분을 하고 맥키코리아 간부와 직원 등 3명에 대해서만 불구속기소하는데 그쳤다. 최 씨는 곧 바로 항고했지만 몇 달 후 또 다시 같은 결과를 통보받았다.

2016년 6월 오염 패티 발생 때 맥도날드 허위 통보 의혹

당시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한국맥도날드가 사건 발생 3개월 전, 즉 2016년 6월께 맥도날드 햄버거 패티에서 대장균이 검출된 것을 알고도 병원성대장균에 오염된 패티로 햄버거를 만들어 판매한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제조업체인 맥키코리아 쪽에 "재고가 없다"고 허위로 통보하고, 실제로는 오염 가능성이 있는 패티를 조리해 햄버거를 판매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패티를 매장에서 덜 익혔을 경우 위험할 수도 있는 햄버거를 사먹은 것이다(검찰 수사 결과는 <프레시안> 안종주의 안전사회 "맥도날드 수사에서 드러난 새로운 사실-식품 위험도 외주화" 2018년 4월 4일, 최은주 씨 인터뷰는 <프레시안> 안종주의 안전사회 "맥도날드 햄버거 비극은 진행형-햄버거 먹고 장애인 된 아이 엄마의 절규" 2018년 5월 8일 참조)

최 씨와 일부 방송 보도에 따르면 당시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병원성대장균이 검출되자 이를 감시하고 감독해야 할 공무원이 오히려 납품업체의 편의를 봐준 정황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납품업체는 오염 가능성이 있는 패티를 꾸준하게 판매할 수 있었다. 그 양이 무려 2000톤이 넘는다. 현재 맥키코리아 경영이사를 포함해 직원 3명이 재판을 받고 있다. 납품업체 편의를 봐준 것으로 의심되는 세종시 공무원은 한국맥도날드와 함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지난 1월 30일 최은주 씨와 함께 300여 명의 엄마들, 그리고 시민단체인 '정치하는 아줌마'와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이 맥도날드 본사와 납품회사인 맥키코리아, 그리고 세종시 공무원을 고발했다. 이를 계기로 최근 일부 방송이 다시 최 씨 아이 사례와 '햄버거 병'에 대해 심층보도와 인터뷰 등을 내보내면서 이 사건이 세간에서 다시 조명되고 있다.

검찰 체면보다 국민 생명과 안전이 먼저

하지만 검찰이 다시 수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최 씨의 딸이 요독성요독증후군에 걸린 것에 한국맥도날드 쪽 책임이 있는 것으로 결론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그것은 검찰 스스로 과거 수사가 부실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의 체면이 국민의 생명이나 안전보다 앞설 수는 없다. 오로지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검찰의 의무다.

피해를 당한 어린이, 사경을 헤매다 겨우 목숨을 건진 어린 아이가 스스로를 책망하는 사회는 결코 안전사회가 아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눈앞의 이익에 눈 멀어 어린이의 생명을 소홀히 한다면 그 기업은 최소한의 기업 윤리마저 저버린 것이다.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라도 억울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적 책무이다. 검찰이 과거의 잘못과 소홀함을 딛고 다시 한 번 이 사건을 꼼꼼하게 챙겨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와 함께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면 식품안전 당국이 신속하고 정확한 원인 규명을 해야 하는데 아직 우리의 수준은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다. 이른바 '햄버거 병' 사건에도 식품안전 최고 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자체는 외려 기업과 한통속이 되어 사건 은폐·방해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식약처는 '햄버거 병' 사건 이후 터진 '런천미트 대장균 오염 사건'에서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사건 또한 대장균 오염이 확실하게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밝혀내야 하는데 사건 발생 5개월이 다 되어가는 데도 아직 이를 속 시원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식품안전 최고 기관의 이런 능력 부족은 소비자의 피맺힌 한과 눈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하루빨리 인적 역량 강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물적 토대가 시급하다. 더는 최 씨 가족과 같은 불행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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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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