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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가 '배짱' 부릴 수 있는 진짜 이유는?

'주주에 의해 이미 탄핵' vs '연기금 의결권 제약해야'

아시아나항공의 감사보고서 파문에 대해 책임을 지고 28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실질적인 경영권 고수 논란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날 조 회장은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 안건이 부결되면서 경영권을 상실했다. 그러나 대한항공 측은 "사내이사직 상실이며 경영권 박탈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룹 지주회사격인 한진칼의 지배권을 이용해 실질적인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조양호 회장이 경영권에 미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룹 수장으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하거나 대한항공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큰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내이사 연임이 부결된 것은 주주들에 의해 '경영권 탄핵'을 당한 것을 의미한다. 이런데도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사내이사도 아니면서 경영권을 행사할 경우 '오너 리스크'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신호를 시장에 줄 수 있다.

'미등기 임원'이 재벌그룹 계열사들의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도록 허용해 온 것은 이사회의 명백한 배임행위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재벌주의'라는 비아냥이 계속돼 온 상황을 근절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이 좌절된 이후에도 '실질적인 경영권'을 고수할 지 주목받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 조양호 회장 경영권 배제 위한 2차 시도


실질적으로 조 회장의 한진칼을 이용한 경영권 행사가 가능할까? 조 회장은 우호지분까지 합해 28.93%의 지분으로 한진칼의 최대주주다. 한진칼은 대한항공 지분 29.96%를 가져 경영권을 사실상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항공의 2대 주주로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저지하는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국민연금이 다시 나섰다. 29일 열릴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경영권을 제약하는 정관변경 안건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한진칼의 3대 주주로 횡령, 배임 혐의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이사는 결원으로 본다는 정관변경 안건을 주주제안했다. 270억 원대 횡령, 배임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 회장을 겨냥한 것이다.

정관변경이 좌절되고 조양호 회장이 경영권을 고수하게 되면 '오너 리스크'는 그대로 남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한항공을 포함한 한진그룹의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독립적인 이사 선임 등을 포함한 이사회 운영 개선 방안을 대한항공에 요구하고 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기관투자자들의 투자 규준 역할을 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을 중점 관리기업으로 공개 지정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자유한국당, 철지난 '색깔론' 주장하며 '친재벌 법안' 내 조 씨 일가 서포트?

조 회장이 이사 연임에 실패해도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이유는 있다. 재벌그룹에 대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을 통제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는 자유한국당과 일부 보수매체들은 '연금사회주의'라면서 이번 국민연금의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색깔론' 성격이 짙어 보인다.

심지어 자유한국당은 28일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5%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현 정부는 국민연금의 수익성 증대와 노후보장에는 관심이 없고 시장 개입, 기업 겁박에 악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한국당이 추진하는 법안은 "국민연금은 보유 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하되, 보유 주식 수가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5를 초과할 경우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선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는 것이 골자다. 2016년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 규모는 102조 원, 5% 이상 지분 보유 기업 수는 276개에 달한다.

만일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5%로 제한한다는 법안이 통과된다면, '주주 촛불혁명'이라고 불리는 대한항공 주주총회 사건은 다시 일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법이 이미 존재했다면, 대한항공 주주총회 사건도 일어날 수 없었다. 대한항공 지분 11.7%를 가진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졌다고 해도 5%만 인정했다면, 조 회장 연임안 부결 요건에 미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주 행동주의'가 한국에서도 강화됐다고 하지만, 대한항공이 사내이사를 특별결의 사항으로 변경하지만 않았어도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부결은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대한항공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사냥꾼'의 사내이사 진입을 막기 위해 지난 1998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 요건을 ‘주총 출석주주 3분의 2 이상 동의'로 특별히 강화했다. 경영권을 방어하려던 장치가 '양날의 칼'이 된 셈이다. 같은날 열린 SK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 사내이사 연임을 반대했음에도 통과된 것은, SK는 상법상 기본규정인 '참석 주주 과반수 찬성'을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문에 주요 외신들이 대한항공 주주총회 사건에 관심을 보이며 일제히 보도를 하면서도 "조 회장의 패배는 예외적인 사례"라며 의미를 축소하기도 했다. 한국의 '재벌 자본주의'는 여전히 공고하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친재벌 법안'으로 사실상 '조양호 경영 보장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방증이다.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 연임이 좌절됐다고 해도, 한국의 기업지배구조에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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