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불거진 이른바 '김학의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자유한국당이 '김학의 정국'에는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당이 '김학의 정국'으로 명명한 최근의 상황은 당사자인 김학의 전 법무차관이 공항에서 심야 출국을 시도하다 저지되고,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김 전 차관과 곽상도 의원(당시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 권고를 하면서 촉발됐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26일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뜬금없이 '국회에서 일 좀 하라'고 하는데 속뜻이 무엇이겠느냐"며 "김학의 사건을 들고 나와서 사실상 '1타4피'를 노리고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경제 파탄으로 떨어지는 지지율을 막기 위한 생존 본능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나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 이후 김학의 사건 재수사를 권고했고 법무부·검찰이 호응해 '김학의 정국'이 돼버렸다"며 "이것은 첫째, (문 대통령 딸) 문다혜 사건 제기 묵살하기 위해 관련 의혹을 제기한 곽상도 의원의 입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둘째, 공수처를 밀어붙이기 위한 국민 선동"이며 "셋째, 인사청문회를 덮고 이슈를 다른 곳으로 돌리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그는 "사흘 간 7명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하는데 최근 2주 동안 (김학의 사건 관련) 옐로우 페이퍼 같은 언론 보도로 인해 장관 후보자들의 의혹 사건은 거의 보도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넷째, 하노이 회담 결렬 등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의 눈을 돌리려고 하는 것"이라며 "(이처럼) 1타4피로 김학의 재수사를 들고 나왔는데, 만약 그런 큰 의혹이 있었다면 여권 인사인 조응천 의원(당시 공직기강비서관)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가만히 있었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김학의 사건, 특검하자"며 "그동안 주장한 많은 의혹 사건도 같이 하자. 드루킹 불법 대선 특검, 김태우 특검 등 부분에 대해 여당이 응해달라"고 했다.
검찰과거사위로부터 수사 대상으로 지목된 곽상도 의원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서 직접 "보복"이라며 반발했다. 곽 의원은 "대통령 딸 가족의 해외이주 (의혹에 대한) 답변 대신 보복에 나서고 있다"며 "표적수사에 굴하지 않겠다"고 했다. 같은 검사 출신인 최교일 의원도 "전혀 조사도 안 하고 여러 관련자 중 (곽 의원만) 찍은 것은 정치보복"이라고 가세했다.
곽 의원은 전날 밤 보도자료를 내어, 검찰과거사위의 수사 권고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김학의에 대한) 인사검증 당시 경찰청으로부터 '수사나 내사를 진행하는 게 없다'는 공식적인 답변을 받았다. 경찰이 청와대에 허위 보고를 했다면 당연히 질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보고 내용에 대해 관련자들에게 경위를 확인하는 것은 민정수석실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고 해명했다. 경찰에 대한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질책은 '김학의를 수사해서'가 아니라 '허위 보고 때문'이라는 얘기다.
곽 의원은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청와대 행정관이 나타나 김학의 동영상 파일과 감정 결과를 요구했다는 의혹에 대해 "인사검증을 통해 고위공직자에 임명된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사실관계를 조속히 파악해야 되는 것도 민정수석실 업무"라며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행정관을 보낸 업무가 도대체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국당 지도부와 곽 의원 등의 반응은 피해자 측이나 여권은 물론, 심지어 범보수진영으로 분류되는 바른미래당 등과도 온도차가 크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검찰 과거사위의 재수사 권고에 대해 "진실 규명을 바라는 국민 기대에 부합하는 권고가 나온 것을 환영한다"며 "지난 6년 간 김학의 사건 수사 과정에서 누가 경찰 수사에 개입해 진실을 은폐하고 축소하려 했는지, 어떤 권력과 힘이 작용했는지 검찰은 명운을 걸고 철저하게 밝혀내야 한다"고 했다.
홍 원내대표는 "무엇보다 김학의 사건은 왜 공수처가 필요한지 일깨워줬다. 권력자가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누군가의 비호로 6년째 진상 규명도 안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수처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한국당은 더 이상 진상규명을 바라는 국민 요구에 귀를 닫지 말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홍 원내대표는 특히 나 원내대표의 주장을 겨냥해 "'김학의 특검 받을테니 드루킹 재특검 하자'는둥 정말 물타기를 해도 너무 심한 물타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과거 김학의 사건 피해자 변호를 맡은 박찬종 변호사는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검찰과거사위가 김 전 차관에 대해 수사를 권고한 혐의가 '뇌물'인 점과 관련 "일단 이렇게 해서 검찰에 넘겨졌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발단의 본질이 특수강간이니까 그것에 대해서 재조명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박 변호사는 "원주 별장 사건 그날 저녁에 김 전 차관이 거기 있었다는 것도 (건설업자) 윤 씨는 부정을 못 한다"며 "피해자의 의견 등이 거의 원천적으로 무시돼버린 결론을 (당시 검찰이) 내 버렸기 때문에 재수사 과정에서 그것에 다시 착목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특히 "(윤 씨가 피해자에게) 권총을 수시로 보이면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재미 없다'고 협박을 하고, 원주 별장에서 접촉이 있었던 날 거기서 밤을 새우고 다음날도 얼굴을 폭행하면서 '어제 저녁에 그 남자 김학의인데 앞으로도 내가 시키는 대로 잘해야 돼' 이러면서 때렸다. 그러니 그 연약한 여성이 그 사람(윤 씨)의 강제성과 폭력성 범위를 못 벗어났다"고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호소했다.
박 변호사는 "과거사위가 재조사 건의까지 한 마당에 여야 정치권이 정치쟁점화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하는 일"이라며 "수사는 형사사건 절차에 따라서 수사하도록 지켜봐 줘야 한다. 미리 여권과 야권이 자기들 입장에서 예단을 가지고 '배후는 누구다' 특정해서 지목해하고 논쟁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정신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사건을 재수사 하는 본질, 성폭력 사건이라고 것을 좁고 깊게 봐야 하는 절차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당부했다.
바른미래당은 김학의 사건과 관련해 지난 24일 "수사 외압 의혹이 사실이라면 낱낱이 밝혀야 한다"며 "청와대든 검찰이든 경찰 내부든 외압의 정황과 증거가 뚜렷하다면 분명한 수사가 이루어지고 진실이 드러나야 할 것이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황교안 한국당 대표이고 청와대 민정수석은 곽 의원으로, 수사 외압 의혹이 황 대표와 곽 의원에게까지 향하는 것은 당연하며 중요한 것은 진실을 올바로 규명하는 것이다. 황 대표와 곽 의원도 결백하다면 의혹을 밝히는 데 적극 협조해야 한다"(이종철 대변인)라는 입장을 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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