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마감됐습니다^^
*7월 오름학교는 7월 12금)-13(토)일, 1박2일로 열립니다.
오름학교 이승태 교장선생님의 얘기입니다.
세상사가 대충 그렇지만 오름 중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어 기고만장해 보이는 몇몇이 있고, 큰 인기와 관심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지만 변함없이 묵묵히 자신의 특별한 모습을 지키고 있는 오름들도 있습니다. ‘잘 알려진’ 오름들은 번듯한 주차장과 이정표, 지도는 물론, 쾌적한 탐방로도 갖추고 있습니다. 제주를 소개하는 관광책자에도 번듯하게 소개되죠.
그러나 ‘안 알려진’ 오름의 경우 생소한 이름에 들머리 찾는 것조차 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혹할 만한 요소가 덜하고, 풀밭 오름이 아니어서 조망이 가려질 때도 있고요, 무엇보다 교통이 불편하며 구석에 처박힌 듯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오름을 자꾸 다녀보니 이런 오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깊은 묘미가 있습니다. 어렵게 들머리를 찾고, 사람의 발길이 뜸한 오솔길을 걷노라니 좀 더 특별한 하루를 선물 받은 느낌이 듭니다. 어쩌면 오름의 본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곳이기도 합니다. 신록으로 넘쳐나는 이번 5월엔 이런 숨어있는 오름, 숨어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제주스런 아름다움’의 오름들을 찾아 떠납니다.
제주국제공항에서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수없이 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고, 그 많은 비행기가 실어온 관광객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만, 그 많은 관광객들 중 아무도 찾지 않는 곳, 그래서 오롯이 제주스런 공간이 기다립니다.
오름학교(교장 이승태. 여행작가·제주오름 전문가)의 5월, 제10강은 <꼭꼭 숨어있다! 제주스런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오름들-개오름, 비치미오름, 돌리미오름, 성불오름, 돝오름, 지미봉>을 찾아갑니다.
2017년 11월 개교한 오름학교는 제1강 <애월의 오름>, 제2강 <안덕의 오름>, 제3강 <표선의 오름1>, 제4강 <제주서부 중산간오름>, 제5강 <곶자왈 특집>, 제6강 <초지능선오름>특집, 제7강 <오름, 가을풍광 속으로>, 제8강 <제주 서부오름 소병악과 대병악, 비양도의 비양봉과 제주의 특별한 건축물 기행>, 제9강 <봄빛 가득, 제주 서남부 오름들>에 이어 2019년 5월 24(금)-25(토)일 제10강 <제주스런 아름다움으로 가득! 개오름, 비치미오름, 돌리미오름, 성불오름, 돝오름, 지미봉>으로 향합니다.
제주 출신 화가 강요배 선생은 “오름에 올라가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고, 오름을 모르는 사람은 제주인의 삶을 알지 못한다”면서 제주 오름의 소중함을 얘기했습니다. 이는 제주도가 오름과 오름이 세포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진 곳이어서 제주를 알려면 반드시 오름을 알고 올라보아야 한다는 말일 겁니다. 들판 한가운데, 바닷가에, 작은 마을 뒤편에 순하디 순한 모양으로 솟아 제주의 자연풍광을 이룬 오름.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유명 관광지에서는 만날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제주의 모습이 그곳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제주도 오름을 순례하는 <오름학교>는 격월로, 제주 자연풍광의 결정체이며 마을 형성의 모태인 오름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그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짚고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름’은 ‘산’의 제주도 방언으로, 한라산 산록으로부터 해안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있는 작은 화산체들을 이릅니다.
2019년 5월, <꼭꼭 숨어있다! 제주스런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오름들>을 준비하는 교장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제10강 1일차 / 5월 24일(금)
<개오름, 비치미오름, 돌리미오름, 성불오름>
분화구 흔적 없는 원추형 오름
-개오름
요즘 아이들은 ‘최고’, ‘갑’, ‘엄청’, ‘매우’라는 의미로 ‘개’를 접두사처럼 단어에 붙여 쓰기를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매우 부러울 때를 ‘개부럽’이라 하고, 심하게 진상부리는 것을 ‘개진상’이라고 하는 식이죠. 생각해보면 ‘개’는 시대를 불문하고 어떤 형태로든 사람 주변을 맴도는 것 같습니다. 애완동물로나 욕설로나, 이런 식의 신조어를 통해서라도…. 그래서일까요? 제주엔 ‘개오름’이 있습니다. 그것도 여럿입니다.
‘개오름’은 제주시와 서귀포시, 안덕면에 각각 하나씩, 표선면에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동서남북 사방으로 흩어져 있군요. 우리가 찾아갈 표선면과 구좌읍의 경계에 솟은 개오름은 오름 꼭대기에 개를 닮은 바위가 있어서 붙은 이름입니다. 또 풍수지리적으로 한라산을 중심으로 개의 자리에 있어서 붙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래서 옛 문헌이나 지도엔 ‘狗岳(구악)’이라고 적혀있기도 합니다.
성읍민속마을의 북서쪽, 번영로 가에 원추형으로 솟은 개오름은 표고 345m에 오름 자체의 높이도 120m쯤으로, 꽤 탄탄한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밖에서 본 오름은 아래서부터 꼭대기까지 숲이 전체를 뒤덮어서 사철 짙은 녹색이죠. 숲은 삼나무가 대부분이고, 간간이 소나무와 사스레피나무, 녹나무 같은 늘푸른나무도 뒤섞여 자랍니다.
성읍2리 마을회관에서 출발해 서북쪽 비치미오름과의 사이 농로를 따라 들어서면 목장 한켠에 있는 팔각정자가 보입니다. 정자 옆으로 출입문이 있지요. 목장 초지대를 통과하면 곧 빽빽한 삼나무숲이 나타나며 그 사이로 좁은 산길이 이어집니다. 바닥에 깔린 친환경매트는 오래되어 형체조차 희미합니다. 인적 드문 곳이라 보수가 더디 진행되나 봅니다. 삼나무 아래로는 개모시풀이 가득합니다. 예전에, 개오름에 나무가 울창하지 않았을 때는 뿌리가 빨간 피뿌리풀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초지대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피뿌리풀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5월과 6월이 피뿌리풀이 꽃을 피울 때라고 하니 운이 좋다면 우리도 만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주에 사는 지인 말로는 남획이 심해 제주 전체에서 피뿌리풀을 보기가 쉽지 않아졌다고 합니다.
쉬엄쉬엄 걸어서 20분 남짓이면 정상부의 완만한 지대를 만납니다. 이곳엔 편백나무와 소나무가 자주 보이고 억새도 무덕져 있습니다. 간간이 조망도 트이며 일대의 오름들이 어우러진 풍광이 눈에 들어오죠.
오름 이름을 낳게 한 ‘개를 닮은 바위’쯤으로 짐작되는 작은 바위가 있는 정상에서는 남쪽조망이 좋습니다. 영주산부터 모지오름, 따라비오름, 큰사슴이오름(대록산)을 지나 한라산까지 모두 시원스럽습니다. 동쪽으로는 여러 알오름을 거느린 좌보미오름과 대수산봉, 성산일출봉도 보입니다.
발 아래로 펼쳐진 너른 들판은 성읍목장인데, 옛날 ‘큰손’으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어음사기 사건의 장본인 장영자씨 소유였답니다. 구속과 석방을 거듭하던 장영자씨는 지금 네 번째 사기 혐의로 또 수감 중이라고 하네요.
하산은 남쪽으로 곧장 내려선 후 오름을 반 바퀴쯤 돌아 출발지점으로 나오게 되며, 전체 탐방시간은 1시간 30분쯤입니다.
사방 조망이 빼어난 꿩오름
-비치미오름
꿩이 나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飛雉岳(비치악), 飛雉山(비치산)이라고 불리던 오름입니다. 비치미, 비치메, 비찌미 등은 속칭이라고 하는데요, 지금은 ‘비치미오름’으로 통일되어 불립니다. 해발고도는 344m.
비치미오름은 개오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서로 훤히 보일만큼 가깝죠. 그러나 이 두 오름 사이로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가르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지납니다. 그래서 비치미오름은 제주시 구좌읍에, 개오름은 서귀포시 표선면에 속하죠. 원추형의 개오름에 비해 비치미오름은 동쪽으로 열린 말굽형 분화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린 두 능선이 무척 길게 뻗어 있어서 말굽자석을 닮았습니다. 옛날엔 전체적으로 초지대를 이뤘다는데, 지금은 오름의 아랫부분엔 삼나무가 빼곡하고, 위쪽으로 갈수록 소나무가 많습니다.
개오름과 마주보고 있지만 개오름에서 곧바로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큰 도로까지 나와서 개오름 들머리를 찾아 따로 들어서야 합니다. 번영로를 따라 송당리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성불오름과의 사이에 비치미오름 쪽으로 좁은 길이 보입니다. 들머리에 작게 오름 이정표도 서 있습니다. 조금 들어서면 한라산에서 발원해 신천리 앞바다로 흘러드는 천미천을 만나고, 건너에 푸른 숲에 둘러싸인 비치미오름이 서 있습니다. 목장 울타리가 끝나는 곳에서 비치미오름 탐방이 시작됩니다. 잣성을 넘어 들어서면 곧 빼곡한 삼나무숲이 나타나고, 그 사이를 헤집고 좁고 희미한 길이 나 있습니다. 찾는 이가 드물어 길은 중간에서 흔적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처음 찾았을 때 저도 20분쯤을 헤맨 후에야 제대로 방향을 잡아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길만 찾으면 이후로는 쉽습니다. 초입부엔 바늘이 꽂힌 듯 빼곡한 삼나무 숲이 계속되고, 이를 벗어나면 솔숲이 나타나다가 점점 초지대가 넓어집니다. 능선이 가까워질수록 어린 소나무들이 많은 걸 보니 몇 해만 지나면 이 오름도 울창한 솔숲이 될 것 같습니다.
억새와 띠, 수크령 같은 풀이 섞여 자라는 능선은 걷기 좋고 조망도 확 트입니다. 주변 목장의 소들이 예까지 오르내리며 풀을 뜯는 듯, 곳곳에 배설물이 보입니다. 서쪽으로 한라산이 멋들어지게 펼쳐집니다. 바로 앞 성불오름 너머로 희미하지만 선명한 선을 보여주는 한라산은 포스가 장난이 아녀서 눈길을 뗄 수가 없을 지경이죠. 그 왼쪽으론 따라비오름과 대록산 사이로 풍력발전기가 가득한 갑마장이 펼쳐지고, 오른쪽으론 오름이 숲을 이룬 송당리가 아름답습니다.
굼부리가 터진 동북쪽으로는 백약이오름과 좌보미오름, 문석이‧동검은이‧높은오름, 다랑쉬오름 등이 어우러진 최고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앞엔 짙은 숲에 덮인 개오름이 손에 닿을 것 같고, 그 뒤로 영주산이 성읍저수지에 제 얼굴을 비추며 서 있고요.
양지바른 곳엔 자리한 무덤이 오름에 난 창(窓) 같습니다. 초지대와 잡목 속에서 이제는 오름의 한 풍광이 된 무덤과 주변 풍광이 무척이나 제주스러워 능선에 앉아서 한참을 보았습니다. 가을에 비치미를 찾았을 때는 꽃향유와 쑥부쟁이, 씀바위, 민들레, 당잔대 같은 들꽃들이 아름다웠는데, 봄날의 비치미는 어떤 꽃으로 향기로울지 기대가 됩니다.
오름 뒤에 숨은 오름
-돌리미오름
비치미오름의 화구벽을 이루는 두 능선 중 북동쪽 줄기가 안부를 지나 돌리미오름과 이어집니다. 그래서 돌리미오름이 비치미오름과 하나의 오름처럼 보이지만 돌리미는 어엿한 독립오름입니다. 서쪽으로 분화구가 트인 돌리미는 완만한 화구벽이 둥그렇게 돌려져 있어서 ‘도리미’ 또는 ‘돌린미’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돌리미오름은 따로 독립된 탐방로가 없으며, 비치미오름의 서북쪽 능선을 따라 안부로 내려섰다가 정상을 다녀오는 정도입니다.
비치미에서 돌리미로 내려서는 능선엔 어린 소나무가 가득하고, 소가 다니며 땅이 파인 흔적이 뚜렷합니다. 그 흔적에 오솔길이 묻혀서 내려서다 보면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전체적인 방향을 놓치지 않도록 애써야 하죠. 내려서는 길에 돌리미 뒤로 백약이오름과 좌보미오름, 문석이‧동검은이‧높은오름과 다랑쉬오름이 배경을 이룬 멋진 풍광이 펼쳐집니다.
비치미오름과의 사이 안부에서 돌리미오름 정상을 다녀오는 데는 소나무가 듬성듬성 자라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30분 남짓 걸립니다. 가파르지 않아서 쉬엄쉬엄 걷기 좋습니다. 정상까지는 길이 또렷하지만 정상에서 그 너머로는 길이 희미해지며 사라집니다.
잡목에 둘러싸인 바위로 된 정상은 터가 좁아서 서너 명이 서 있기에도 빠듯할 지경입니다. 정상에 서면 개오름과 비치미오름이 한라산을 배경으로 또렷하고, 민오름도 가깝습니다. 여기서 보는 개오름은 삿갓을 닮았습니다.
암자터는 사라지고 산중 샘만 여전해
-성불오름
성불오름은 번영로를 사이에 두고 비치미오름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들판 가운데 이 오름만 우뚝 솟아 있어서 주변에서 눈에 잘 띄는 오름으로, 보는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양을 보여줍니다. 번영로에서 보면 남북으로 두 봉우리를 가진 듯하고, 다른 방향에서 보면 원추형으로 보입니다. 표고 361m에 오름 자체의 높이는 97m로, 양쪽으로 두터운 능선을 이룬 말굽형 분화구를 가졌습니다.
이름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옛날, 이 산중에 있었다는 성불암(成佛庵)에서 연유했다는 것과 정상의 바위가 멀리서 볼 때 중이 염불하는 모양이어서 성불암(成佛岩)이라 불렀고, 그래서 성불오름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긴 세월에 묻힌 암자는 위치조차 찾기 어렵고, 초지였을 때 잘 보이던 바위도 지금은 무성한 숲에 가려 정상에 오르고서야 겨우 가늠할 수 있을 뿐입니다.
성불오름의 특징 중 하나는 산중턱에 샘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제주 중산간에서 물은 매우 귀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도 오름에서 샘이 솟는 경우는 드뭅니다. 성불오름의 샘은 ‘성불천’이라 불렸으며, 성읍리에 있던 옛 정의현성(旌義縣城)에 샘이 없어서 15리쯤 떨어진 이곳의 물을 길어다 식수로 썼다고 합니다. 성불오름의 골짝 깊은 곳에 있는 성불천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맑은 물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탐방은 번영로에서 목장을 가로질러 400m쯤 들어선 후 오른쪽(북쪽) 능선을 따라 올랐다가 정상을 거쳐 왼쪽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됩니다. 내려서는 길 중간쯤에서 왼쪽으로 성불천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경관 안내도와 벤치 두 개가 있는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조망이 트입니다. 비치미오름부터 개오름, 동검은이‧백약이‧좌보미오름, 모구악, 영주산, 모지오름, 따라비오름, 대록산, 소록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광입니다. 이 외의 다른 곳은 삼나무와 편백나무, 소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지납니다.
찾는 이들이 드문 곳이라서 탐방로는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침목 모양의 통나무 계단과 폐타이어로 짠 매트가 탐방로를 따라 번갈아 나타납니다. 1시간 30분쯤 걸립니다.
제10강 2일차 / 5월 25일(토)
지미봉과 돝오름
파도소리 벗 삼아 외로움 달래나
-지미봉(지미오름)
불과 몇 십 미터밖에 안 되는 높이의 오름일지라도 그 능선에 올라서 만나는 모든 풍광은 마법을 부린 듯 하나같이 별천지입니다. 이것이 제주오름이 가진 최대의 매력으로, 오름이 제주를 감상하는 최고 전망대기 때문이죠. 제주도 동쪽 끝, 파도소리 벗 삼아 외로이 서 있는 지미봉에서 이 점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눈이 시릴 만큼 짙푸른 제주바다와 그 속에서 춤추는 고래 같은 우도,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성산일출봉,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종달리의 검푸른 밭과 울긋불긋한 지붕이 한눈에 조망되는 곳입니다.
지미봉은 정상 높이가 해발 165.8미터로 수치상으론 낮은 편이나 바닷가에 위치하고, 주변에 다른 오름이 없어 꽤 우뚝하고 당당한 산세를 보여줍니다. 동쪽과 남쪽, 서쪽에서 보면 원추형이며, 북쪽에서는 두 봉우리를 가진,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말굽형 분화구가 북향으로 벌어졌고, 그 안쪽엔 돌담에 둘러싸인 밭이 가득합니다. 그 때문인지 북쪽은 비교적 완만하고, 남쪽은 가파르죠. 화구가 벌어진 안부를 따라 나무가 우거져 숲을 이뤘고, 서쪽과 남쪽 사면엔 해송이 빼곡합니다. 남동사면엔 마을의 공동묘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탐방로는 가파른 남동쪽 사면을 따라 정상까지 거의 직선으로 나 있고, 주차장에서 정상까지는 30분쯤 걸립니다. 오름탐방로를 따라 제주올레 21코스도 지납니다.
땅끝 한 모퉁이에 외떨어져 있어 ‘지미봉(地尾烽)’
지미오름 일대는 저어새와 도요새를 비롯한 희귀조류가 많이 관찰되는 곳으로, 북쪽 하도리엔 겨울철새도래지인 습지 ‘용목개와당’이 있고, 주변으로 탐조대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제주의 여느 오름과 마찬가지로 지미오름도 이름과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예로부터 ‘지미산(指尾山)’, ‘지미악(地尾岳)’ 또는 ‘지미망(指尾望)’, ‘지미봉(地尾烽)’이라 표기했습니다. 조선 초기에 오름 꼭대기에 봉수대를 설치하면서 ‘망’ 또는 ‘봉(烽)’자를 붙인 것인데요, 오름이 제주의 동쪽 끝부분에 있어서 ‘지미(地尾)’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속칭으론 ‘땅끝’이라고도 부릅니다. 예전 서쪽의 한경면 두모리를 섬의 머리 또는 제주목(濟州牧)의 머리라 하고 반대쪽 끝인 이 오름을 ‘땅끝’이라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면 해가 뜨는 이곳을 머리라고 했을 것 같은데, 중국을 염두에 둔 방향설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차장에서 곧장 시작되는 탐방로엔 침목과 폐타이어로 만든 매트가 깔려 있어서 길이 쾌적합니다. 길 주변으로 무덤이 자주 보이고, 억새와 동백나무도 나타나고요. 중간에 몇 개의 벤치도 있어서 쉬어가기 좋습니다.
아름다운 종달리 명품 지붕
오름 꼭대기엔 봉수대의 흔적이 비교적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북서로 왕가봉수, 남동으로 성산봉수와 교신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봉수대 터 위엔 현재 나무데크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고, 그 앞엔 산불감시초소가 옛 봉수대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초소 앞, 남쪽에도 전망데크가 있습니다. 한번은 한 커플이 전망대로 내려서는 계단에 앉아 주변 풍광과 하나가 된 듯 ‘멍 때리고’ 있었는데, 지미오름의 매력을 제대로 즐기는 듯 보였습니다.
지미봉 정상에 설 때마다 도무지 세상 것 같지 않게 펼쳐진 풍광에 마음이 베입니다. 동쪽으로 바다 건너 3킬로미터쯤 떨어진 소섬, 우도는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달려올 것 같고, 발아래 종달리부터 이생진 시인이 가슴으로 노래한 ‘그리운 바다 성산포’까지 오밀조밀 들어앉은 동네며 검붉고 푸른 밭에 하얀 모래톱 어우러진 해변의 조망은 지미봉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명풍광입니다. 특히 종달리의 알록달록한 지붕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지붕 늘어선 마을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이 모든 풍광을 감싼 싱싱한 제주바다는 흉내 낼 수 없는 감동입니다.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다랑쉬와 아끈다랑쉬, 높은오름, 돝오름, 둔지오름, 동검은이오름, 밧돌오름 등 수많은 오름이 보란 듯이 펼쳐져 있습니다. 때문에 참으로 기분 좋습니다. 그러다가 계단의 커플처럼 저도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멍 때리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어서요.
천년의 숲 비자림이 바다처럼 펼쳐지는 곳
-돝오름
오름의 모양이 돼지를 닮았다고 해서 돼지의 옛말인 ‘돝’을 붙여 ‘돝오름’이라 부릅니다. 한자로도 ‘돼지 저’를 써서 猪岳(저악)이라고 하고요. 멧돼지가 자주 출몰해서 붙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오름공화국 송당리에서도 변방에 위치한 오름으로, 유명한 비자림의 바로 뒷산입니다. 그래서 정상에서 조망하는 비자림 풍광이 압권인 곳입니다.
수십 년 전엔 이 오름도 풀밭오름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정상부를 빼면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아래쪽은 삼나무가 오름을 둘러싸고 있으며, 위쪽은 소나무가 주를 이룹니다. 오름 높이는 284m고, 정상의 분화구 깊이는 45m입니다. 그러나 화구 둘레가 1km로 꽤 넓은 편이어서 분화구는 생각보다 깊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지난해 여름에 찾았을 때 탐방로에 천연매트를 깔고 있었으니 길은 쾌적할 것입니다.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 가파른 화구벽만 남은 둔지봉이 외롭고, 동남쪽으론 가까운 다랑쉬오름부터 용눈이, 손지, 높은오름 등이 잘 보입니다.
길은 분화구 능선을 따라 이어집니다. 능선의 대부분은 소나무가 무성해 조망이 막히지만 서쪽과 안부를 이룬 북동쪽에서는 조망이 트이며 주변의 멋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분화구 능선의 가장 낮은 곳에 이른 후 다시 정상으로 올라설 수도 있고, 능선 사면을 따라 출발지로 내려설 수도 있습니다. 내려서다가 보는 비자림이 장관입니다. 돝오름은 비자림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입니다. 이 때문에 돝오름을 ‘비자오름’이라고도 부릅니다. 여기서 보면 비자림은 제주의 숲이 펼친 바다 같습니다. 빈틈없이 뒤덮인 초록의 땅, 저 숲엔 500~800년쯤의 수령을 자랑하는 비자나무 2800그루가 온갖 희귀한 난초와 함께 건강한 숲을 이루며 삽니다.
여기서 잠깐 비자나무에 대해 살펴볼까요? 비자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 중 아마도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암수 다른 나무로, 4월에 꽃이 피고 열매는 이듬해 가을에 익으며, 그 모양이 아몬드 같습니다. 맛은 처음엔 떫으며 씹을수록 고소합니다. 약간의 독성이 있어서 많이 먹으면 애를 먹기도 합니다.
옛날엔 비자나무의 열매를 구충제로 사용했습니다. 목재는 향이 좋고 탄력이 뛰어나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특히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은 돌을 놓는 감촉이나 음향이 좋아서 ‘억’소리 날 만큼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합니다. 바둑돌을 놓으면 그 충격으로 나무 표면이 살짝 들어가는데, 잠시 후엔 원래대로 돌아온다고 하네요. 조선시대엔 조정에 바치는 품목이었으며, 그 수량이 많아 제주민들이 애를 먹었다는 기록도 전합니다.
제주 비자림은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데, 옛날에도 귀한 진상품이어서 비자림엔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 지역에서 한 수종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숲을 ‘순림(純林)’이라고 부르며, 귀한 대접을 합니다. 이곳 비자림이 대표적인 순림인 셈이죠. 육지에서는 전라도 내장산과 백양산 일대에 작은 숲이 조성되어 있을 뿐,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귀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비자림을 품은 평대리는 이곳 돝오름에서 동북쪽의 바다 세화해변까지 이어지는데, 그 사이에 숲이라곤 비자림뿐입니다. 제주가 겪은 그 모진 세월을 겪으면서도 어찌 살아남았을까 생각하니 더 귀하게 다가오는 숲입니다.
오름학교 제10강은 2019년 5월 24(금)~25(토)일, 1박2일로 제주도에서 열립니다. 상세한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5월 24일(금)>
08:50 제주공항 1층 3번 게이트 오른쪽(공항 내부임)에서 집합합니다, 참가자는 각자 항공편, 배편을 이용해 제주공항에 도착합니다. 정시에 출발하니 집합시각 엄수 바랍니다. 교통편 예약은 빠를수록 혜택이 많다고 하니 참고하시고, 참가신청 전에 교통편을 반드시 체크해주세요^^ 제10강 여는 모임. 참가지 확인과 인사 나누기
09:00 버스 탑승, 공항 출발
-개오름 도착, 탐방
-개오름 탐방 마치고 식당으로 이동
-점심식사
-비치미오름과 돌리미오름 탐방
-비치미‧돌리미오름 탐방 마치고 성불오름으로 이동
-성불오름 탐방
-성불오름 탐방 마치고 식당으로 이동
-저녁식사
-숙소로 이동 후 휴식, 취침(밧돌게스트하우스 등, 다인실)
<5월 25일(토)>
-아침식사 후 출발
-지미봉 탐방
-지미봉 탐방 마치고 하도리 산책 후 식당 이동
-점심식사
-돝오름 탐방
-돝오름 탐방 마치고 공항으로 출발
-제주공항 도착. 제10강 마무리모임. 해산
※당일 현지 상황에 따라 코스나 대상지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분증(항공탑승용. 반드시 지참하세요!)
*걷기 편한 등산복·등산화·배낭(제주의 특별한 바람에 대비해주세요^^), 스틱(건강을 위해 쌍으로 준비), 무릎보호대, 방수방풍의, 버프(얼굴가리개), 모자, 선글라스, 장갑, 수통, 우의(+접이식 우산), 따뜻한 여벌옷(여벌양말),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또는 손전등), 세면도구, 세수수건, 개인용 겁,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참가신청 안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해 홈페이지로 들어오세요. 유사 '인문학습원'들이 있으니 검색에 착오없으시기 바라며 꼭 인문학습원(huschool)을 확인하세요(기사에 전화번호, 웹주소, 참가비, 링크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이리 하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홈페이지에서 '학교소개'로 들어와 '오름학교‘의 5월 기사를 찾으시면 뒷부분에 상세한 참가신청 안내가 되어 있습니다^^
★인문학습원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참가하실 수 있는 여러 학교들에 관한 정보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회원 가입하시고 메일 주소 남기시면 각 학교 개강과 해외캠프 프로그램 정보를 바로바로 배달해드립니다^^
★오름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이승태 교장선생님은 캠핑과 등산, 트레킹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작가입니다. 한국여행작가협회 정회원으로, 그동안 산악전문지 <사람과산> 기자를 거쳐 편집장을 지냈고, 그 시절 우리나라 산줄기 답사를 위한 등산지도 가이드북인 <1대간9정맥 종주지도집>과 <한국100명산 등산지도집>, 국립공원 탐방안내서인 <북한산국립공원>, <지리산>, <설악산>을 제작했습니다. 2012년에는 일본 큐슈 지역의 대표적인 산 열다섯 곳을 소개한 산행보고 프로그램인 <마운틴TV>의 ‘큐슈의 산(9부작)’에 출연했으며, 일본 큐슈올레 전 구간을 취재했습니다. 현재 <한국관광공사> ‘이 달의 걷기길’ 선정위원이자 취재작가, 한국여행작가협회 부회장으로 협회에서 진행하는 ‘여행작가학교’ 강사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동아일보> <화광신문>을 비롯한 여러 매체와 사보에 여행기사를 기고 중입니다.
2013년부터 제주 오름에 빠져 툭하면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으며, 그동안 여러 매체에 오름에 관한 기사를 기고했습니다. 2018년에 오름 트레킹 안내서인 <제주 오름>(가칭)을 출간할 계획입니다. 지은 책으로는 <북한산 둘레길 걷기여행> <캠핑 주말여행 코스북>(공저), <걸어유 충남도보여행>(공저)이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오름학교>를 여는 취지를 들어봅니다.
올라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세상
화산섬 제주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오름이 모여 있습니다. 그 수가 자그마치 368개라고 하니 매일 하나씩 올라도 한 해가 모자랄 정도죠. 제주 섬 어느 곳을 가도 오름이 있고, 그 오름에 기대어 마을이 있습니다. 그 오름으로 억새를 베러 다니고, 거기서 고사리를 꺾으며 제주인들은 살아왔습니다. 오죽했으면 제주 사람들이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을까요! 오름은 제주의 마을과 마을을 형성하는 모태가 되었습니다. 각 오름에는 제주 사람들이 떠받들던 신들이 자리 잡고 있고, 오름과 그 주변으로 넓게 펼쳐진 거친 황무지인 ‘뱅듸(버덩)’는 예부터 말과 소를 키우는 터전이었습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 80퍼센트쯤은 오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제주 오름은 ‘육지’의 숱한 산들과 달리 오르기가 편하고, 어지간한 오름을 둘러보는데 한두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또 험한 곳이 거의 없으니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그리 부담이 없죠. 무엇보다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오름 자체가 그렇고, 오름 능선에 올라 조망하는 사방의 풍광은 숨을 멎게 할 정도입니다. 소와 말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오름 능선에 아무렇게나 앉아 제주의 바람을 느끼는 행복을 무엇에 비할까요! 기생화산인 오름은 대부분 분화구를 가졌고, 그 형태 또한 제각각입니다. 그 독특한 지형을 살피는 것 또한 흥미진진한 즐거움입니다.
다시 ‘오름나그네’가 되어
368개의 오름은 한라산 백록담 바로 아래의 방애오름, 윗세오름을 시작으로 바닷가에 솟은 성산일출봉과 송악산, 비양도와 사라봉에 이르기까지 사방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제주 동쪽 송당리 일대엔 가장 많은 오름이 분포해 오름들이 겹치며 산너울처럼 펼쳐지는 신비로운 풍광을 보여줍니다. 그에 비해 서쪽의 오름들은 하나씩 뚝뚝 떨어져 있죠. 그러나 저마다 빼어나 찾는 걸음이 즐겁습니다.
1927년 제주에서 태어나 1995년, 일찍 생을 마감하기까지 제주의 산악인이자 언론인으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고(故) 김종철 선생은 제주의 모든 오름을 답사한 기록을 <오름나그네>라는 세 권의 책으로 남겼습니다. 지금까지도 오름의 바이블로 통하는 귀한 책입니다. <오름나그네>의 책장을 넘기다가 오름을 향한 그의 열정과 사랑, 감동과 호흡이 전해져 가슴 뜨거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오를 수 있는 모든 오름을 올라보는 게 목표입니다. 모두 함께 ‘오름나그네’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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