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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군말없이 '계좌추적'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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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군말없이 '계좌추적' 나서라"

<데스크 칼럼> 더이상 거부하면 한나라당 주장의 진실성 자인

현대상선 4억달러 대북송금설의 진위를 둘러싼 '진실게임'이 이제 막바지 국면에 접어든 느낌이다.

엄낙용 전 산업은행총재는 4일 국감장에서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이 현대상선에의 4천억원 대출을 '이근영 금융 감독위원장(당시 산은 총재)'에게 지시했다는 말을 이 위원장으로부터 들었다는 증언을 했다. 한 전 실장이나 이 위원장 등 당사자들은 이 사실을 극구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증인이 '고유명사'를 말한다는 것은 웬만큼 확신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엄 전총재는 또 4천억원의 용도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다면서도, 대출 회수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에 국정원 제3차장을 만났던 사실을 드러내고 지난해 6월 서해교전 소식을 접하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함으로써 이 돈이 대북송금에 사용된 것 같다는 강한 심증을 드러냈다.

엄 전 총재 증언과는 별도로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대북송금설을 뒷받침한다는 증거들을 잇따라 공개하고 있다. 심지어 국정원 출신의 정형근 의원은 4일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과 대북 에이전트인 요시다 다케시 신일본산업 사장 사이에 있었던 지난해 8월의 세 차례 국제전화에 대한 국정원의 도청 내역까지 공개했다. 중추권력기관내 레임덕(권력누수)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증거들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시기상조다. 그러나 개중에는 그동안 정부나 현대상선 등의 해명을 뒤엎는 증거들도 상당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4천억원 대출시점이었다. 현대상선은 4천억원의 당좌대월중 1천억원만 2000년 6월에 찾아쓰고, 나머지 3천억원은 7~8월에 찾아썼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실 확인결과 한나라당 주장대로 6월7일 하루에 산은 본점과 두 지점에서 일괄인출된 사실이 밝혀졌다. 현대상선의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한나라당 폭로내용 중에는 도리어 대북송금설을 희석시키는 내용들도 상당수 목격된다. 그런 대표적 예가 현대상선이 2000년 6월7일 산은에서 찾은 돈 가운데 1천억원을 교보증권에 맡겼고 교보증권이 이 돈으로 현대건설 기업어음(CP)을 사들였다는 4일 폭로다.

'대북송금설'의 관점에서 보면, 현대상선이 CP매입 형식을 빌어 현대건설에 돈을 보냈고 현대건설이 이 돈을 북송했다는 논법이 성립된다.

그러나 정반대 해석도 가능하다. 4천억 용도를 둘러싼 또하나의 관점인 '부실계열사 지원설' 측면에서 보면, 현대상선이 당시 자금난이 심각하던 현대건설을 지원했음을 입증해주는 명백한 증거로 해석가능하다. 교보증권의 존재는 부당내부거래를 은폐하기 위한 도구였다는 식의 해석이다.

같은 맥락에서 2000년 6월 당시 정몽헌 회장 산하 계열사 가운데 유일한 돈줄이었던 현대상선이 정몽구-정몽헌 형제간의 경영권 쟁탈전 와중에 현대계열사 지분확보 및 지원에 4천억원대를 사용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을 정몽헌 현대상선 이사회 회장은 4일 이와 관련, "4천억원은 북한쪽으로 건너가지 않았다. 자금사정이 나빠 자구계획으로 썼다. 10일께 귀국해 증인이 필요하다면 (출두)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회장이 귀국해 같은 주장을 편다 할지라도 그의 말만 믿고 상황이 종료될 분위기는 결코 아니다. 현대측 주장의 진실성은 이미 큰 상처를 입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수단은 단하나뿐이다. 현대상선은 4천억 사용내역을 공개하고 정부는 계좌추적을 통해 진상을 밝히는 것이다.

금감위 등 정부는 그동안 "일반기업에 대한 계좌추적은 금융실명법상 불공정거래 조사목적 하에서만 가능하다"며 계좌추적을 거부해왔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공세가 계속되자 정부 관계자들조차 "아마도 현대계열사들 지원에 사용한 게 아니겠느냐"는 식의 해명을 하고 있다. 정부가 그동안 계좌추적 불가 이유로 내세웠던 불공정거래 혐의를 정부 스스로가 인정하는 모양새다.

사정이 이렇게 된 만큼 정부가 더이상 계좌추적을 못하겠다고 버틸 근거나 명분은 사라졌다. 만약 정부가 계속 계좌추적을 거부하면, 국민은 한나라당 주장을 100%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뭔가 구린 데가 있으니, 진실을 은폐하려는 게 아니냐'는 당연한 의혹에서다.

현대상선은 절대로 먼저 장부를 열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갖고서도 최소한 현대상선이 분식회계 등을 통해 산은 지원금을 용도외로 사용했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계좌추적 결과 대북송금설이 사실이라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아니고 계열사 지원을 위한 분식회계였다면 현대와 거짓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식으로 정부와 현대가 은폐를 거듭하려 한다면, 그 결과는 엄청날 것이다. '신뢰의 상실'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거짓말 정권' '거짓말 기업'이라는 역사적 오명을 쓰지 않으려면 이제 정부는 더이상 구차한 변명없이 즉각 계좌추적에 나서야 하고, 현대상선은 장부를 열어야 한다는 게 국민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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