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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우익 갈등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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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일 우익 갈등의 '정치경제학'

"미국은 전쟁, 일본은 건설 필요", 북-일 수교시 일본 1천3백억달러 투자계획

일본의 기습적 북-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일본 사이에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도 양국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우익세력 간의 분열 양상이다. 왜 이런 일이 목격되는가?

오랜 세월 영국이 미국의 '유럽 중대'였다면, 일본은 미국의 '아시아 중대'였다.

특히 지난해초 취임한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과 지난해 4월 취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는 그동안 형제이상의 우의를 자랑했었다. 한 예로 미국의 새 정부 출범후 미국을 찾은 김대중 대통령을 차갑게 홀대했던 부시 대통령은 비슷한 시기에 방미한 고이즈미 총리와는 골프까지 함께 치며 친분을 과시했었다. 9.11테러후 아프가니스탄전에서도 일본은 즉각 자위대를 파견하는 등 미.일 양국은 더없이 긴밀한 협조체제를 과시했었다.

***왜 미국과 일본의 우익은 분열대립하나**

그러나 북-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일 양국간에 심상치 않은 난기류가 흐르고 있다. 분열의 발단은 일본측이 제공했다.

일본은 북-일 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대내외에 공표하기에 앞서 불과 사흘 전에 미국에 통고했다. 일 외무성으로부터 이 소식을 통고받은 하워드 베이커 주일미대사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일본과 북한이 1년전부터 물밑대화를 하고 있다는 첩보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이 미국과 일말의 사전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북-일 정상회담까지 개최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시기'였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 외교총력전을 펴고 있던 때였다. 가뜩이나 세계여론이 이라크 공격에 대해 부정적이던 시점에, 부시대통령이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 국가로 규정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것은 일본의 심각한 배신행위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은 분노했고, 이 분노를 숨기지 않고 외신들에게 흘렸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 등 서방언론들은 일본의 배신행위를 전하며 북-일 정상회담의 실패를 단언했다. 그러나 9.17 북-일 정상회담은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대성공으로 끝났다. 지난 1년간의 물밑협상에서 대다수의 구체적 현안들을 해결한듯한 북-일 양국은 연내수교를 목표로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을 보다보면, 누구나 느끼는 의문이 그렇게 사이좋던 미국과 일본의 보수우익이 왜 분열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는가이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미국과 일본 우익의 물적 토대가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 우익과 일본 우익은 물적토대가 다르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부시대통령은 미국의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석유자본과 군수산업의 대통령에 가깝다"고 정의내리고 있다. 부시 정권 출범후 펼쳐진 냉전회귀적 외교정책, 반환경 정책, 석유자원 쟁탈전 등 일련의 정책들을 볼 때 크루그먼 교수의 정의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요컨대 현재 미국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정치권력의 물적 토대는 군수산업 및 석유자본인 것이다.

반면에 일본 보수우익의 경우는 물적 토대가 다르다. 일본은 여야를 떠나 전통적으로 정치권의 가장 큰 '돈줄'은 건설업체를 비롯한 제조업 기업들이다. 일본정가의 최대 실세가 건설업체들을 맡고 있는 '건설족(族)'일 정도로 건설업체 등과 정치권의 유착관계는 대단히 뿌리깊다.

문제는 부시정권 출범후 미국의 석유자본과 군수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는 반면, 일본은 고이즈미 정권이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건설업체 등 지지세력이 몰락의 늪에 깊게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이즈미는 출범직후 한때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과감한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기치로 내세웠었다. 하지만 곧 기득권층의 대대적 저항에 직면했다.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선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금융계, 업계, 대장성, 정치권 모두가 결사반대했다.

금융계와 업계는 IMF사태후 한국의 경우에서 보았듯,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이 들어보면 부실책임자들의 대대적 물갈이와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두려워했다. 이들과 유착이 심한 대장성도 선진국 최고수준의 재정적자를 명분으로 공적자금 투입에 저항했다. 이들의 자금을 받아쓰고 있는 정치권도 공적자금 투입에 반대했다. 기득권층의 이같은 전면적 저항에 직면한 고이즈미는 결국 굴복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날 상황이 아니었다. 일본경제 위기는 나날이 심각해졌고, 업계를 비롯한 일본 기득권층은 동반몰락 위기에 처했다. '구조조정'이 아닌 방식의 새로운 '경제해법'이 필요했다.

이같은 보수우익의 오랜 숙의끝에 나온 해법이 다름아닌 북-일 수교를 계기로 한 '동아시아 뉴딜 플랜'이라는 대규모 신규투자 창출이었다.

***일본, 북-일 수교되면 최소한 1천3백억달러대 투자 계획**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경의선 개통'에 합의했을 때 일이다.

일본은 이를 쌍수 들어 환영하며 기다렸다는듯 즉각 한-일 해저터널 공사계획을 발표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출발해 대마도와 거제도를 거쳐 부산에 도달하는 해저터널을 건설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공사에는 향후 10년간 최고 1천2백억달러의 거금이 투자될 것으로 일본은 내다봤다.

해저터널 계획은 일본의 오랜 숙원사업중 하나였다. 일본은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면서도 '섬나라'라는 지정학적 한계에 갇혀 있다는 것을 최대약점으로 여겨왔다. 따라서 남북한이 화해해 끊긴 철도를 잇는다면 차제에 일본도 한-일간에 해저터널을 뚫음으로써 섬나라에서 대륙의 일부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일본의 오랜 구상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2000년 하반기에 해저터널 프로젝트를 들고 나온 더 큰 이유는 건설업체등 일본 재계가 직면한 심각한 디플레이션 위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지난 1990년이래 10여년간 불황타개를 위해 우리돈으로 1천2백조원대의 천문학적 거금을 오사카 국제공항 건설 등 국내 인프라에 쏟아부었다. 일본정계의 최대돈줄인 건설업계를 먹여살리는 동시에, 건설경기 부양을 통한 고용 및 내수 창출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같은 사업은 철저한 실패로 끝났다. 수익성을 무시한 정략적 인프라 투자는 공사후 천문학적 적자발생으로 나타났다.

인프라 투자를 하더라도 수익성을 고려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러나 일본내에는 더이상 수익성을 맞출 수 있는 인프라 투자처가 없었다. 이에 일본이 눈을 돌린 곳이 다름아닌 1천2백억달러대 공사비가 소요될 한-일 해저터널이고, 1백억달러대 배상금을 내야할 북한과의 수교를 통한 대북 인프라 투자였다.

이같은 초대형 신규 투자처만 나타나면 현재 연쇄도산 위기에 몰린 일본 건설업체에게 가뭄끝 단비가 아닐 수 없고, 건설업체 등 일본기업의 부실화로 동반몰락 위기에 몰린 일본 금융기관에게도 더없이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일본 보수우익이 미국과의 갈등을 감수하면서까지 지난 1년여간의 비밀협상을 통해 9.17 북-일정상회담이라는 극적 돌파구를 만든 데 이어 연내수교를 서두르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일본 우익과 미국 우익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 및 물적토대가 정면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과연 미국 반대 돌파가능할까**

미.일 우익 충돌의 결과는 어떻게 결론 맺을 것인가. 현시점에선 누구도 자신있는 답을 내놓기 힘든 상황이다.
일본에게는 이미 한 차례 좌절한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1990년 9월의 일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가네마루 신(金丸信) 자민당 부총재가 다나베 마코토 사회당 위원장과 함께 평양을 방문,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갖고 북일수교 협상을 조속히 진행한다는 요지의 북한의 노동당·일본의 자민당·사회당 3당 공동 합의문을 발표했다. 가네마루는 당시 일본 자민당을 막후에서 쥐락펴락하던 이른바 '암장군(暗將軍)'이었다.

당시 일본언론들은 북한과 일본 사이에 수교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으며, 이 과정에 북한측이 제시한 배상금 요구액이 1백억달러에 달한다며 양국 수교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일본언론들은 그 근거를 일본 재계와 정치권의 '이해일치'에서 찾았다.

가네마루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동행한 이들은 미쓰이, 니시마트, 시미즈, 미에다 같은 일본 대기업의 중역 간부들이었다. 이들은 짧게는 북일 수교협상시 북한이 받게 될 거액의 경제협력금을 노리고 있었고, 길게는 한반도 및 만주와 시베리아, 연해주를 잇는 거대한 동북아 경제권을 선점하겠다는 속셈을 갖고 있었다. 더욱 당시 일본은 부동산 거품의 극성기로,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은 마땅한 대출처를 찾지 못해 부심하고 있던 처지였다. 이런 마당에 1백억달러의 경제협력 프로젝트는 여간 탐나는 신사업 영역이 아닐 수 없었다.

정치권의 이해관계도 일치했다. 금권정치가 지배하는 일본 정치권의 주된 수입원중 하나가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정부개발원조(ODA)자금 및 전후배상금을 일본 대기업들에게 분배하는 과정에 얻는 리베이트였다. 요컨대 개도국 지원이나 배상금 형태의 경제협력 과정에 일본 대기업들에게 건설 프로젝트 등을 분배하는 대신 정치자금을 얻어쓰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당시 일본 언론들은 가네마루가 대북 진출을 노리고 있는 일본 대기업들과 손을 잡고 정치자금을 뒷거래하고 있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북일 수교협상은 동북아지역에서의 유일패권이 위협받을 것을 우려한 미국이 지난 93년 이른바 '북핵 위기설'을 제기하면서 전면중단됐다.

***10년전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북일 수교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외적 상황은 당시와 대단히 흡사하다. 미국은 9.17 북-일 정상회담이 열리던 날,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입을 빌어 또다시 "북한에 핵무기가 있다"는 이른바 '북핵 위기설'을 제기했다. 미국의 노골적 딴지걸기다.

하지만 10년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지금 일본 보수우익의 물적토대는 붕괴 직전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중앙은행은 18일 일본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들을 사들이겠다는 발표를 했을 정도다. 이는 사실상 일본 은행들이 파산위기에 몰린 데 따른 최후의 비상조치적 성격이 강하다. 일본에게는 더이상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일본 보수우익은 지금 생존 차원에서 북-일수교협상에 임하고 있다. 이번 수교협상의 성사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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