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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10원 전쟁' 배후는 '3세 경영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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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10원 전쟁' 배후는 '3세 경영 전쟁'?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가격파괴 주도…피해는 중소상인에게

새해 벽두부터 유통업계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마트가 시작한 '가격 파괴' 전략에 다른 유통업체가 맞대응하며 출혈 경쟁이 벌어졌다. 100그램에 700원도 하지 않는 삼겹살 상품이 등장하는 등 대형마트의 '박리다매'가 주목받으면서 동시에 비용 절감 압력이 납품업체에 전가될 거라는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대형마트의 할인 붐에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있다. 지난해 말 대표이사직에 오르며 '3세 경영' 대열에 선 정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기업형 슈퍼마켓(SSM) 사업을 선도적으로 확장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업계 1위 기업의 수장인 만큼 그의 말 한 마디에 유통업계는 요동쳤다.

정용진 신년사 이후 가격 전쟁 시작…공급 차질에 납품 거부도

▲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뉴시스
정 부회장은 새해 신년사에서 온라인 쇼핑몰 사업 강화·백화점 사업 확장과 함께 이마트의 가격 경쟁력 확보를 사업 계획의 핵심으로 꼽았다. 정 부회장의 '의지'는 지난 7일부터 이마트가 주요 생필품 12품목의 가격을 4~26% 인하하겠다고 밝히면서 구체화됐다. 2·3위 사업자인 홈플러스와 롯데마트가 곧바로 "10원이라도 더 할인된 가격을 제공하겠다"고 맞서면서 전쟁의 막이 올랐다.

할인 전쟁의 여파는 컸다. 매 시간 단위로 떨어지는 눈치보기 작전에 홈플러스가 가장 먼저 부담을 느끼고 지난 20일 가격을 정상화시켰다. 절반 가까이 가격이 내려간 일부 품목들은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공급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고객들의 불만이 쏟아지기도 했다. 삼겹살 등 일부 식품은 물량을 맞추느라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도 제기됐다.

납품업체 역시 불만인 건 마찬가지였다. 유통업체들이 자체 마진을 줄이고 가격 인하를 감행해 직접적인 납품단가 인하 압력은 없었지만 가격이 더 떨어지면 결국 공급 가격을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표적 할인 품목인 '햇반'을 공급하는 CJ제일제당 등 일부 납품업체들은 지난 21일 공급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신세계 측은 납품업체와의 오랜 협의를 거쳐 가격 할인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다른 유통업체와는 달리 장기간 할인이 가능하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마진 감소를 통한 가격 경쟁은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 연초부터 시작된 대형마트의 가격 할인 경쟁은 공급 차질과 남품 거부 등 부작용도 낳고 있다. ⓒ프레시안

"7만개 중 할인품목은 20여개, '미끼상품' 역할"

그럼에도 대형마트들이 '박리다매'에 나서는 이유는 유통산업의 경쟁이 극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가 19일 발표한 '연간 주요 유통업체 매출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백화점이 6.5% 증가한 반면 대형마트는 1.2% 감소했다. 전국에 400여 개가 넘는 매장이 들어서면서 경쟁사의 조그만 변화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박리다매'는 오히려 SSM 출점 문제와 맞닿아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5월 독일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전 국민에게 대기업 유통의 혜택을 주고 싶다"며 SSM 출점 확대 계획을 밝혔다. 대형마트 시장에서 활로를 찾는 것보다는 규제가 덜한 소규모 매장에서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이러한 대형마트의 움직임은 골목 상권 침해 논란으로 이어졌고 갈등은 지금까지 풀리지 않고 있다.

SSM 사업이 사업조정 신청으로 주춤하면서 새로 들고나온 전략이 '박리다매'다. 하지만 중소상인들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내세우는 가격 할인 효과가 허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중소상인들도 경쟁을 위해서는 생필품 가격을 대형마트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출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대형마트들의 가격 경쟁이 소비자들의 혜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그 실체는 불분명하다. 7만 개가 넘어가는 대형마트 품목 중 주요 할인 품목은 20여 개에 그쳐 사실상 소비자들을 유인하는 '미끼 품목'의 구실을 하고 있다. 실제로 '가격 전쟁' 기간 동안 대형마트들의 총매출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동구 SSM 저지 대책위원회의 이주연 위원장은 "대형 유통업체들은 한 납품업체에서 많게는 3종류씩 나오는 기획상품만을 모아도 수십 개의 할인 품목을 마련할 수 있지만 중소상인들은 불가능하다"며 "영업 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중소상인들에게 경쟁력을 갖추라는 요구는 무리"라고 말했다.

이번에 벌어진 '삼겹살 전쟁'은 한편으론 대형마트가 인근 상권에 미치는 영향이 슈퍼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축산 도매업에 종사하는 백재선 성북구 상가번영회장은 "이번 가격 인하 건으로 인근 정육점들도 슈퍼와 마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형마트와 SSM을 규제하자는 주장에는 정육업계도 동의하지만 영업을 그만둘 수가 없어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유통업, '3세 경영' 성과 보여주기 안성맞춤"

중소상인단체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황희석 변호사는 "재벌 기업의 '3세 경영'이 본격화되면서 이들이 경영성과를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인 시장이 유통업"이라며 "예를 들어 지난해 구LG계열 기업 간의 신사협정도 사실상 유명무실화 된 만큼 GS리테일 이외에도 유통 노하우가 남아있는 LG·LS 계열에서 제조업 파워를 앞세워 유통업에 진출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황 변호사는 "결국 대형마트의 경쟁은 중소상인의 골목 상권을 얼마나 빨리 장악하느냐의 다툼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면적 제한 등의 일부 규제로는 새로 생겨나는 '변종' 소매 매장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상인의 사업 영역에 선을 긋지 못하면 영세 자영업의 붕괴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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