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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은행이 가능하다"

<심훈 부산은행장 인터뷰> 또 한명의 '장사꾼' 탄생

일개 지역은행인 부산은행이 금융계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합병 등을 통해 덩치를 키운 은행들에 대해서만 주로 관심을 보여온 흐름과 상반되는,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왜 시장은 부산은행을 주목하는가**

부산은행의 현재 자산규모는 16조원대. 2백조원대 자산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은행 국민은행의 13분의 1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규모다. '규모의 경제'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부산은행의 미래는 대단치 않아 보인다. 부산은행보다 몇배나 덩치가 큰 시중은행들도 합병없이는 살아날 수 없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부산은행이 보여주는 위세는 결코 간단치 않다.

한화증권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올 하반기 은행주가중 가장 많이 오른 주식은 부산은행 주식이다. 하반기 들어 지난 5일까지만 21.1%나 올랐다. 뒤를 이은 조흥(10.1%), 하나(9.9%), 우리(7.9%)은행의 실적과 비교하면, 얼마나 부산은행이 약진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기업가치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잣대인 투명성 부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투자전문지 씽크머니가 최근 증권사 애널리스트 1백60명을 상대로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부산은행은 투명성 관련제도에서 국민은행, 포스코, 신한지주, 하나은행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특히 기업정보공개의 성실성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지난 6월에는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로부터 신용등급이 Ba3에서 Baa3로 무려 세 단계나 상향조정됐다. 단번에 투자부적격에서 투자적격으로 올라선 것이다. Baa3는 한미, 제일, 서울은행과 같은 등급이다.

금융시장에서 부산은행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증거들이다.

과연 그동안 거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부산은행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져온 것인가. 심훈 부산은행장(62)에게서 궁금증에 대한 답을 들어보았다.

***"취임해 보니 거의 쓰러져가고 있었다"**

심 행장은 지난 66년 입행 이래 한국은행에서만 34년간 외길을 걸어 부총재까지 지낸 정통 한은맨이다. 그가 부산은행장이 된 것은 지난 2000년 7월. 관행에 따르면 서울의 시중은행장이 돼야 했으나, 당시 금융계 분위기가 젊은 행장들을 선호하던 터라 자의반타의반으로 고향에 있는 부산은행을 책임맡게 됐다.

34년간 생활한 한은을 떠나 부산으로 내려와 보니, 은행 사정이 썩 좋지 않았다. 흑자를 내기는커녕 누적적자가 1천억원대에 이르고 있었다. 주가 수준도 형편없었다. 주당 가격이 고작 1천5백원대. 지방은행 가운데 경쟁사인 대구은행은 당시 주가가 부산은행보다 5백원 높은 2천원선이었다.

"취임해 보니 거의 쓰러져가고 있었다. 부실도 많고, 직원들 사기도 낮았다. 또한 예금부분보장제가 막 시행되던 때여서 지방은행에 대한 신뢰도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위기였고, 살아남기 위해선 대변혁이 필요했다.

우선 인사부터 손 댔다. 대다수 지방은행의 경우 99%의 임직원이 그 지역 출신이다. 부산은행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보니 학연, 지연이 횡행하면서 파벌이 난무하는 등 인사가 공평치 못한 데 따른 부작용이 심했다.

행장 취임후 학연이나 연공서열을 무시하고 실적 위주로 인사를 했다. 누구에게 신세진 일이 없으니 소신껏 밀어부칠 수 있었다. 종전에는 영업부장을 능력과 상관없이 고참이 맡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영업부장에 2급 직원을 임명했다. 인사를 공정하게 하니 비로소 은행내 잡음이 사라지며 직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비로소 소신에 따른 은행 진두지휘가 가능했다."

"아울러 실속없이 생색만 내고 있는 부산지역외 점포들도 과감히 없앴다. 서울지점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대구지점과 포항지점 등은 아예 없애버렸다. 모든 역량을 부산에 집중해 부산에서 승부를 걸기로 했다."

***또 한명의 '장사꾼'의 탄생**

조직을 정비한 심 행장이 주력한 것은 수익력을 높이기 위한 공격적 영업세일즈였다.

"지역은행의 약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큰 강점이기도 한 것이 은행의 인적, 물적 네트워크의 99%가 지역출신이라는 점이다. 이 점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행장 취임과 동시에 주소지를 아예 부산으로 옮기고 식구들도 부산으로 이사오게 했다.

취임후 가장 주력한 일중 하나가 부산시금고를 빼앗아 오는 일이었다. 부산시민들이 내는 지방세 등을 총괄하는 부산시금고는 60여년동안 상업은행, 지금의 우리은행이 맡아온 노른자위였다. 고교동문인 부산시장을 비롯해 학연 등의 관계에 있는 부산시 유력인사 및 시민단체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부산시금고를 부산은행이 맡아야 하는 당위성을 말하고 적극적 협조를 부탁, 마침내 지난해 부산시금고를 부산은행이 맡게 됐다."

일반 대출세일즈에도 적극 나섰다.

"지금 은행들은 마땅히 돈 꿔줄 데를 찾지 못해 난리다. 부산지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각 은행들이 치열한 대출세일즈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럴 때 자그마한 지방은행이 대출세일즈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은행장이 직접 영업 일선에 나서는 길밖에 없다. 하루에도 여러 지점장들이 SOS를 보내온다. '모 우량기업에 대출을 해줘야 하는데, 경쟁은행들의 경우 지역본부장이 직접 나섰으니 우리 은행은 행장이 직접 나서 그 기업 대표를 만나봐달라'는 식이다. 이런 SOS를 받으면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대표를 만나 영업세일즈를 한다. 행장이 직접 세일즈에 나서면 상대방 태도도 달라져, 대출조건만 비슷하면 대부분 거래가 성사된다.

거의 하루하루를 이런 식으로 대출세일즈하면서 보내고 있다. 서울에도 일부러 거의 안 올라가고 있다. 지방은행장이 자주 서울에 올라가면, 직원들 사이에 '시중은행장이 되기 위한 로비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겨 일사불란한 조직운영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한은 부총재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변신이다. 또 한명의 '장사꾼'의 탄생이다.

***부실여신만 6천억원 회수**

장사꾼은 고객의 필요를 맞춰줄 수 있어야 한다.

"지난달말 중국 최대상업은행인 중국공상은행장과 만나 지방은행으로서는 최초로 포괄적 업무제휴 조인식을 가졌다. 이유는 한가지, 거래기업들의 편의 때문이었다.

부산지역의 경우 신발업체들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생산기지를 청도와 상해 등 중국 현지로 옮겨갔다. 이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중국으로 돈을 보내거나 중국에서 돈을 보내올 때 3~4일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공상은행과의 업무 제휴를 통해 24시간에 돈을 찾을 수 있게 됐다."

리스크(위험) 관리도 빼놓을 수 없는 장사꾼의 의무이다. 돈을 버는 것 못지않게 고객이 맡긴 돈을 까먹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욕을 먹으면서 지난 2년여동안 회수한 부실여신만 6천억원에 달한다. 아울러 하이닉스 신규여신도 과감히 중단했다. 하이닉스의 독자 생존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이닉스 기존 대출을 부실로 처리하고 신규여신을 중단하는 과정에 정부로부터 약간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으나 소신으로 밀어부쳤다. 그래도 한은 부총재 출신이라 예우를 해줘서 그런지, 정부에서도 크게 뭐라 하진 않았다."

***'작지만 큰 은행'으로의 재탄생**

취임 당시 대구은행보다 낮았던 부산은행 주가를 지난해 역전시켰다. 부산은행이 지방은행 가운데 가장 우량은행임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창립 이후 최대규모인 5백2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데 이어, 올해는 상반기에만 9백83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연말께는 1천6백50억원 정도 순이익을 낼 수 있을 전망이다. 올해는 지난 몇년간 꿈도 꾸지 못했던 배당도 할 생각이다."

심 행장은 지방은행도 '지역밀착 경영'만 확실시하면 대형시중은행 이상의 실적을 올리며 독자생존이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지난 6월초 일본의 지방은행인 시즈오카 은행과 야마구치 은행을 방문해 벤치마킹을 했다. 이들 지방은행은 일본의 대형 시중은행들보다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는 은행들이었다. 내달에는 미국의 우량 지방은행인 와코비아 은행을 방문해 지역밀착 경영전략과 지역사회 공헌활동 등을 배우고 올 계획이다. 모두가 지역밀착 경영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현재 부산은행은 부신지역에만 1백80여개 점포와 1천2백여대의 자동화기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부산지역의 대형시중은행 두곳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숫자다.

이같은 토대에 기초해 부산은행의 지역내 시장점유율은 98년 27%에서 지난해 29.4%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30%를 상회하기에 이르렀다. 지역에 철저히 밀착해 원리원칙에 입각한 경영을 한다면 지방은행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심 행장은 경남은행이 우리금융지주회사에 정식편입되면 사업영역을 마산, 창원, 울산 등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라 밝혔다. 부산, 경남 일대에 국민, 우리 등 거대 시중은행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독자적 아성을 쌓겠다는 생각이다.

'전체 자산규모로는 작지만, 지역내에서는 거대한 토착금융기관'을 지향하는 부산은행의 도전이 시장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뒤늦었다는 감이 들 정도다. 부산지역에서 또하나의 큰 장사꾼이 태어났음을 보여주는 반가운 증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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