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이 나라의 출발점이라 밝히는 대사건의 100주년이니 떠들썩하게 기념할 만도 하다. 한데 기념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 더 있다. 2019년은 대한민국 역사상 규모와 영향이 가장 컸던 사회 개혁이 국회에서 법률로 처음 채택된 지 7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바로 농지개혁법이다. 1949년 4월 27일 제헌국회는 본회의를 통해 농지개혁법을 통과시켰다. 농사를 짓지 않는 자가 보유한 농지나 총면적이 3정보(9000평)가 넘는 농지를 국가가 유상 매수해 땅 없는 농민에게 유상 분배한다는 것이 이 법의 골자였다. 이로써 일제 강점기에 농민의 숙원이던, 아니 수천 년 동안 농민의 염원이었던 '경자유전(耕者有田)'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오게 됐다.
올해는 농지개혁법 통과 70주년
농지 개혁이 대한민국 역사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와 논의가 있다. 이들 연구는 하나같이 한국이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이유를 농지 개혁의 단행에서 찾는다. 대토지 소유를 해체하고 자작농을 육성한 덕분에 산업 자본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낡은 요소는 사라지고 새로운 경제 주역이 급성장했다. 지주 대신 자본가가 부상했고 자기 땅을 일구게 된 농가에서는 높은 교육 수준을 갖춘 미래의 노동자들이 배출됐다.
이게 산업화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 요인인지는 동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의 비교에서 드러난다. 동아시아에서 후발 산업화에 기적적으로 성공한 나라들(일본, 남한, 대만)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농지 개혁을 실시했다. 반면 최근까지도 토지 소유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동아시아 국가들만큼 산업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대지주 계급을 해체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운명은 이렇게 엇갈리고 말았다.
이토록 중요한 역사적 계기이지만, 농지개혁법의 탄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농지개혁법이 해체 대상으로 삼은 지주 계급은 당시 한국 사회의 주류 지배 집단이었다. 물론 농지 개혁이 실시되더라도 지주들이 지배 집단에서 탈락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주들은 농지에 대한 보상으로 정부가 발행하는 증권을 통해 산업 자본가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래 되고 익숙한 불로소득 확보 방식에서 벗어나 새 길을 찾기란 역시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지주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더구나 남한의 지주 계급에게는 그들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는 강력한 정당까지 있었다. 한국민주당이었다. 한국민주당은 미군정 시기에 과도입법의원에서 농지 개혁 관련 법안이 처음 논의될 때부터 개혁의 진전을 가로막으려고 갖은 수를 다 썼다. 일본인 지주들이 버리고 간 이른바 귀속농지에 한해 분배 방안을 논의하는데도 그랬다. 그러니 제헌국회에서 농지 전체의 개혁을 논의했을 때는 오죽했겠는가.
그 희생양이 된 것이 초대 농림부 장관 조봉암이었다. 현대사에 관심 있는 이들은 농지 개혁의 최대 공적자로 흔히 조봉암을 떠올린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 사회주의 노선에 따라 항일투쟁을 벌인 조봉암은 농림부 장관에 임명되자 농지개혁법안을 마련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이 점에서 그는 분명 중요한 공로자였다. 그러나 그는 농지 개혁을 직접 지휘하지는 못했다. 심지어는 농지개혁법안의 가결조차 그가 장관직을 사임한 뒤의 일이었다.
한국민주당과 그 후신 민주국민당의 정치 공작 때문이었다. 사사건건 농림부 장관의 발목을 잡던 한국민주당 세력은 1949년 1월 감찰위원회(지금의 감사원 격)의 농림부 장관 감사 결과(공금 유용 혐의 등)를 정치 쟁점으로 만들었다. 졸지에 조봉암은 비리 혐의자가 됐고, 국회 차원의 조사위원회까지 꾸려졌다. 결국 2월 22일에 조봉암은 취임 6개월만에 농림부 장관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사임 이유가 된 비리 혐의는 나중에 재판에서 무죄로 판결났다. 공작의 냄새가 짙은 한바탕 소동이었다.
법안 입안자만 고통 받은 게 아니었다. 법안 자체도 운명이 기구했다. 농지개혁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1949년 4월이었지만, 농지 개혁은 곧바로 시행되지 못했다. 국회 심의가 충실히 이뤄지지 못해 농지개혁법에 부족하거나 모순된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이를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고, 국회는 농지개혁법 개정안 심의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국민당 의원들은 지주에게 해당 농지의 연간 평균 작물 생산량의 150%를 지가로 보상한다는 규정을 200% 이상으로 개정하려 했다. 지주 계급의 마지막 난동이었다. 반면에 전 농림부 장관 조봉암을 비롯한 제헌국회 내 개혁파 의원들의 입장은 150% 보상도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꿋꿋이 막아낸 덕분에 난동은 이내 진압됐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농지개혁법 개정안이 1950년 2월 2일에 통과됐다. 농지 개혁 작업이 실제 시작된 것은 한국전쟁 4개월 전인 이때부터였다.
누가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만한 한 편의 드라마다.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당대 사회 구조의 핵심을 건드리는 높은 수준의 개혁도 결코 실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만큼 기득권 세력의 엄청난 반발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런 장애물을 돌파하며 사회 개혁을 성사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개혁을 바라는 다수 대중의 열망이 있고 이를 온전히 받아 안는 정치 세력이나 흐름이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바로 이 점을 입증하며 첫 걸음을 뗀 나라다. 결코 쉽지 않은 토지 개혁을 성사시키며 기틀을 다진 나라이고, 이와 함께 산업화와 민주주의의 성공 가능성을 스스로 연 나라다. 농지개혁법 통과 70주년에 우리는 이 사실을 새삼 확인해야 한다.
보유세 강화를 통한 세수 증가분을 공공주택 확대에 쓰자
그로부터 70년이 지났다. 지금 대한민국은 마치 정부 수립 직후처럼 토지 소유 모순으로 신음하고 있다. 70년 전에는 대지주의 농지 독점이 문제였다면, 현재는 택지와 주택, 건물이 소수의 손아귀에 몰려 있는 게 문제다. 부동산을 독차지하며 투기를 일삼는 소수 기득권층이 다수 서민에게서 불로소득을 갈취하며 주거권을 침해한다.
다들 이게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병폐라고 지적하지만,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 아파트 값 상승이 주춤하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상황이 나아지는 중이라 하기 힘들다. 워낙에 소득에 비해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오히려 '부동산 불패 신화'의 변주인 '부동산 백약 무효론'에 빠져드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달리 할 때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자마자 토지 개혁을 성공시켰고 그 덕에 여기까지 왔다. 이 나라가 지금 이렇게 존재하는 사실 자체가 '부동산 백약 무효론'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증 사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다만 제2의 토지 개혁, 즉 주거권 보장을 위한 대개혁이다. 첫 번째 토지 개혁이었던 농지 개혁을 성공시킨 전례가 이미 있다면, 민주주의의 저력이 훨씬 더 강해진 이 시대에 두 번째 토지 개혁으로서 주택 소유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허황된 약속도 아니다.
구체적인 방안은 이미 거의 다 나와 있다. 아마도 가장 근본적인 방안은 다주택 소유를 제한하는 정책일 것이다. 농지 개혁의 기본 원칙을 주택 소유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실거주용 외에 집을 여럿 소유한 이들에게 주택을 처분할 기간을 주고 그 기간 이후에는 높은 부담금을 물릴 수 있다. 나는 1년 전에 이 지면을 통해 이런 자산 재분배 방안을 소개한 바 있다("한국 부동산 시장은 정말 '자유 시장'인가?", <프레시안> 2018년 3월 6일).
그러나 다른 방안도 고민할 수 있다. 소유를 제한하지는 않더라도(혹은 소유 제한 정책과 병행하여) 지금보다 더 강력한 부동산 보유세를 통해 '제2의 토지 개혁'의 효과를 낼 수도 있다. 토지+자유연구소가 주창하는 국토보유세 안이 그런 방안이 될 수 있다.
토지+자유연구소는 오래 전부터 현행 종합부동산세를 국토보유세라는 새로운 부동산 보유세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합부동산세와는 달리, 건물을 제외한 모든 토지에 보유세를 부과하자는 것이다. 토지+자유연구소의 안에 따르면, 국토보유세는 모든 토지 소유자에게 부과된다. 전국의 모든 토지를 용도 구별 없이 인별 합산해 과세하며, 과세 표준은 공시지가다. 다만 지방세인 현행 재산세는 그대로 유지하며, 재산세 납부액 중 토지분은 환급한다.
2018년에 실시한 추계에 따르면, 국토보유세 신설에 따른 세수 순증분은 개인 소유 토지에서 16조3383억 원, 법인 소유 토지에서 3조3136억 원, 총 19조6520억 원이다. 여기에 종합부동산세 폐지에 따른 세수 감소 등을 적용하면, 세수 순증분은 약 15.5조 원으로 추산된다. 토지+자유연구소는 이 세수 증가분을 모든 국민에게 1/n씩 토지배당(=기본소득)으로 지급하자고 한다. 토지배당 추정액은 1인당 연간 약 30만 원이다(남기업 ‧ 전강수 ‧ 강남훈 ‧ 이진수, "부동산과 불평등 그리고 국토보유세", <사회경제평론> 54호, 2017).
나는 이 제안에서 한 부분만 수정하고 싶다. 국토보유세 도입에 따른 세수 증가분을 토지배당으로 지급하자는 내용이 그것이다. 토지배당 제안에는 나름대로 정당성이 있다. 하지만 1인당 연간 지급액이 30만 원 수준이라 과연 얼마나 정책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간다.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주택자들의 주거 불안 해소가 참으로 시급한 과제라는 점이며, 이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토지배당이 좀 태평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보유세 강화를 통한 세수 증가분을 일단 주거 불안을 줄이는 데 활용하는 쪽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가령 주거권 보장을 위한 대규모 공공 사업의 재원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를 '제2의 토지 개혁 기금'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주거권 신장에는 흔히 두 가지 처방이 있다. 하나는 무주택자가 실거주 주택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공임대주택을 늘려 무주택자가 굳이 주택을 매입하지 않아도 주거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두 방안 모두 추진해야 하지만, 저축이 적은 저소득층이나 젊은 세대에게 상대적으로 더 시급하거나 유리한 방안은 후자다. 바로 이러한 공공주택 확대에 '제2의 토지 개혁 기금'을 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껏 한국 사회에서 공공주택을 늘리는 주된 방식은 공공임대용 공동주택 단지를 신축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건설 부지가 부족해(특히 수도권) 공공주택 물량을 확대하기 쉽지 않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면, 기존 주택 매입을 통한 공공주택 확대 방식을 보다 활성화해야 한다.
특히 대표적인 서민 주거 형태인 다가구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뒤에 임대하는 형태의 공공주택이 늘어나야 한다. 이는 대안적인 주거 환경 정비 방식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사회적 주택 흐름과 결합할 수도 있다(주거협동조합에 대한 토지 임대, 공공-거주자 공동지분제 등등).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공공주택을 늘리는 데 '제2의 토지 개혁 기금'을 투입한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주택 문제가 특히 심각한 지역에서 주거 취약층의 주거권이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신장될 것이다. 또한 매년 15조 원이 넘는 공적 자금이 공공주택 확대에 투입됨으로써 부동산 소유 및 거래 구조 전반이 크게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부동산 관련 구조가 주거권 보장에 유리하게 바뀌고 난 뒤에는 국토보유세 세수의 용처를 국토보유세 원안 제안자들의 구상처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토지배당으로 전 국민에게 지급할 수도 있고, 임대주택(공공이든 민간이든) 세입자에게 주거수당으로 지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제2의 토지 개혁에 나서야 할 때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정책 제안이 아니다. 다만, 정치적 의지다. 이 점에서 70년 전 제헌국회의 개혁파 의원들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그들은 변변한 정당조차 없는 무소속 국회의원들이었다. 마음으로는 여운형이나 김규식, 김구의 노선을 따랐지만, 원내에 버티고 있는 정당다운 정당이라고는 지주들의 당, 한국민주당-민주국민당뿐이었다. 국회가 열리는 중에도 나라의 다른 한 쪽에서는 무장 충돌과 학살이 벌어졌다. 그러다 결국은 개혁파 국회의원들조차 상당수가 이른바 '프락치' 혐의로 감옥에 갇혀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를 피하지 않았다. 민중의 염원에 자신의 운명을 걸 줄 알았다. 그래서 그 험난한 시절에 토지 개혁이 단행될 수 있었다.
그럼 지금은 어떠한가? 제2의 토지 개혁을 바라는 대중의 열망이 그때만 못한가? 아니면 민주주의 훈련을 70년이나 더 거치고 난 작금의 한국 정치가 그때보다 오히려 자질이 떨어지는가? 두 물음의 답이 모두 '아니요'라면,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2019년 우리에게는 '제2의 토지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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