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3월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노동 개혁'을 전면에 내세웠다. 실업급여를 인상하는 대신 해고를 쉽게 하고, 3~5년간 대기업·공공부문 임금을 동결해 하청·비정규직 임금을 올리자고 민주당은 제안했다. 20대 국회 중점 추진 법안으로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 국가정보원법 등 권력기관 개혁 법안과 선거제도 개혁안을 꼽았다.
홍 원내대표는 1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사회의 '일자리 양극화'도 심각한 문제"라며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이 안 되면 2류 인생 취급을 받는다. 지난해 대기업 정규직 평균임금은 400만 원이었던 반면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151만 원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시장 양극화는 대통령과 정부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해법은 사회적 대타협뿐"이라고 강조했다.
홍 원내대표는 사회적 대타협의 사례로 광주형 일자리 합의와 택시-카풀 합의를 들며 "노동시장 양극화도 이같은 방식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노동계는 '해고는 살인'이라며 유연성 확대를 거부하고, 경제계는 안정성을 강화하면 기업에 부담이 된다고 반대했다"며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에서 상생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제안했다. "덴마크는 기업의 인력 구조조정을 쉽게 허용한다. 근속연수가 길다고 해서 고용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대신, 직장을 잃어도 종전 소득의 70%에 해당하는 실업급여를 최대 2년간 제공하고, 전직 훈련 등 안정적 구직활동을 지원해 준다"고 그는 부연 설명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같은 '덴마크 모델' 도입을 위한 과제로 크게 3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첫째로 "실업에 대비한 사회안전망 대폭 강화"를 주장하며 "현재 실업급여는 월 평균 152만 원씩, 4개월만 받을 수 있다. 우리도 덴마크 같은 선진국 수준으로 고용불안에 대비하려면, 현재 9조 원인 실업급여를 26조 원 정도로 확대해야 한다. 실효성 있는 사회안전망을 최소한 2030년까지 완성할 수 있도록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둘째, 그는 "이렇게 노동안정성을 강화하는 대신, 노동유연성도 높여야 한다. 업무량의 증감에 따라 탄력적으로 인력을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나아가 경기 변동이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인력 구조조정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필요에 따라 노동자를 '유연하게' 해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이렇게 됐을 때 노동자는 해고에 대한 걱정을 덜고, 기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탄력적으로 인력을 운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셋째, 그는 "임금체계도 개혁해야 한다"며 "먼저, 대기업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한다.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노조가 3년 내지 5년간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결단을 내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임금체계의 단순화도 필요하다"며 "국내 대다수 기업의 임금체계는 기형적이다. 기본급은 최소화하고 각종 성과급과 상여금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는 "호봉급 비중을 줄이고, 직무급과 직능급을 확대해야 한다. 경기나 실적 변동을 반영해 성과급을 지급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어 그는 "공공부문 임금공시제도를 도입하겠다"며 "이를 통해 직종별·직무별·직급별 수당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임금체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다만 현재도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탄력근로제 확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등 '노동정책 우경화'를 하고 있다며 사회적 대화에 불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규직 임금인상을 3~5년 동결하라든지, 기업 필요에 따라 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노동 유연화' 정책을 도입하겠다는 여당 원내대표의 연설 내용은 노동계의 추가 반발을 불러올 것이 명약관화하다.
민주 대표연설서 3년만에 "기본소득"…입법과제로 공수처법·국정원법·선거법 꼽아
홍 원내대표는 "많은 국민들은 '3만 달러 시대'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불평등과 양극화 때문"이라며 "물론 (이는) 우리만의 일이 아닌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밀레니얼 사회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18세부터 29세에 해당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51%가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한다. (…) 유럽에서도 몇 년 전부터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진보정당인 정의당 등을 제외하고,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기본소득'이 언급된 것은 거의 3년 만이다. 2016년 6월 27일 당시 김종인 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세계적으로 불평등 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연설한 바 있다.
단 홍 원내대표는 유럽 국가들의 현상적 상황으로 기본소득을 언급했을 뿐, 이를 한국 사회의 해법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홍 원내대표는 "포용국가를 통해 불평등,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포용국가는 혁신성장과 공정경제를 통해 완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포용적 성장은 결코 최저임금 인상이 전부가 아니다. 저소득층의 생활비 부담을 덜어주고,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하자는 것"이라며 "혁신성장은 '제조업 르네상스'와 벤처·혁신기업 육성을 통해 새로운 성장엔진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을 더 적극 추진해야" 하며 "광주형 일자리와 같은 지역상생형 일자리도 확산시켜야 한다"고 제안하는 한편 "정부·여당은 혁신성장의 속도를 높여 '제2의 벤처 붐'을 만들겠다. 2022년까지 벤처 지원을 위해 12조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벤처 투자에 대한 금융시스템도 손질하겠다"며 "국내 6개 유니콘 기업에 대한 투자액의 95%가 해외자본이라는 사실은, 우리 금융회사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라고 금융권을 비판했다.
20대 국회 입법 과제와 관련해서는 공수처법, 국정원법, 검경 수사권 조정과 함께 선거제도 개혁을 과제로 들었다. 그는 "선거제 개혁은 정치 불신을 해소할 개혁의 방아쇠가 될 것"이라며 "민주당은 지난 20년간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해 왔다. 지역주의를 해결하고,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그는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갈등 조정과 사회통합"이라며 "그러나 우리 정치는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국민 통합을 가로막고 있다. 헌법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야 할 국회의원들이 국회 안에서 대놓고 5.18 민주화 운동을 왜곡하고 날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태블릿PC가 조작되었다는 등의 가짜뉴스를 통해 1700만 국민이 이뤄낸 촛불혁명을 부정하고 있다. 또 촛불혁명을 통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를 '좌파독재'라고 부른다"며 "가짜뉴스로 진실을 왜곡하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정치냐"고 비판을 이어갔다.
한편 홍 원내대표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국제정세에 대해 "굳건한 한미동맹을 통해 협상의 성공을 이끌어 내는, 우리의 '촉진자'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하면서 "최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북한 동창리 동향은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잘못 진전되면 향후 협상에 큰 난관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 정권에 대해 "북한은 현명한 판단을 통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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