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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즈 칼리파, '현대판 바벨탑'에 불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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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즈 칼리파, '현대판 바벨탑'에 불과한가?

[서정민의 '인샬라 중동'] 두바이를 위한 변명

마천루는 '하늘을(天) 만지는(摩) 집(樓)'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하늘을 긁는(skyscraper) 것(집)'이다. 그런데 이제 마천루의 개념을 훌쩍 뛰어넘은 빌딩이 문을 열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에 우뚝 선 부르즈 칼리파(칼리파의 탑)다.

미국 시카고의 시어즈 타워의 442m나 타이완 타이베이 금융센터의 508m가 감히 키 재기를 할 수 없는 828m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높은 건축물인 동시에 동원된 장비와 자재, 그리고 기술 및 공법 부문에서도 최고, 최대, 그리고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 현존하는 세계 최대, 최장, 최고 규모의 인공구조물 부르즈 칼리파 ⓒ로이터=뉴시스
"10년 후 2000m 건물도 가능"

최고 높이의 인공구조물(828m), 최고 높이 철근콘크리트구조(586m), 최다 층 보유 빌딩(162개 층), 최고속 더블데크(2층) 엘리베이터(분당 600m), 최고 높이 콘크리트 직접 압송(601.7m), 최장 길이 타워크레인 와이어(820m), 최장거리 가설 호이스트(415m), 최대 규모 커튼월(외장유리) 면적(축구 경기장 17개) 등의 기록을 만들어냈다. 또 '3일 1층 공법,' 'GPS를 이용한 건물 수직도 측량기법' 등의 최첨단 공법과 기술이 동원됐다.

그러나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부르즈 칼리파가 언제까지 최고층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확실한 것은 멀지 않은 미래라는 점이다.

초고층 설계 전문가인 조지 에스테피오는 "고층 구조물은 인간 역사의 일부로서 인간은 늘 높은 건물을 세우고 싶어 했다"고 강조한다. UAE에 위치한 샤르자 아메리칸대학의 피터 사바티노 건축디자인학과 교수는 "부르즈 칼리파는 초고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뿐이다"며 "자재와 디자인 설계의 발전으로 건물들은 지속적으로 높이와 규모를 추구할 것이다"고 말한다.

이들 전문가의 언급처럼 세계 건축시장은 이제 초고층으로 나아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런 초고층 빌딩의 발주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15년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이런 빌딩을 짓는 데 560조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100m 킹덤 타워 건설계획을 마련하고 설계사와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다. 부르즈 칼리파 설계를 담당했던 미국 업체 SOM은 이미 킹덤 타워 수주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2020년 경 2000m 초고층 건물 건설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과잉투자의 환영이 마천루를 만든다?

그런데 부르즈 칼리파 완공을 보는 우리 언론의 논조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대부분 신문은 '세계 최고층 빌딩은 경기침체기에 들어선다'며 부르즈 칼리파 개장과 두바이의 경제위기 혹은 두바이발 금융위기에 어느 정도 연관관계가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이런 기사들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신기록을 수립하는 마천루의 등장은 놀랄 정도로 경제침체의 지표가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기가 상당히 맞아 떨어진다. 높이 186m의 뉴욕시 싱어 빌딩은 1907년의 시장 공황 직후 탄생했다. 뉴욕시 맨해튼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1931년에 문을 열었다. 더불어 1972년과 1973년에 문을 연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1974년의 시카고 시어스 타워(현재는 윌리스 타워)도 모두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을 때 문을 열었다. 가장 최근의 예로 1998년에 문을 연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타워도 아시아 금융위기가 이 지역을 강타한 때였다.

주장의 논리는 이렇다. 주식시장이 최고의 강세를 보일 때면 늘 버블이 끼기 마련이고, 이런 가운데 '계속될' 경기호황을 꿈꾸며 거대한 빌딩들이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마천루들의 계획과 완공은 곧 거품이 꺼진 경기침체를 예고하는 셈이 된다. 정리하면 과잉투자와 허영심 혹은 환영이 마천루의 꿈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초고층 건물에 대한 이런 비판적인 시각은 나름 근거가 있다. 100층 이상의 빌딩을 지으려면 각종 첨단기술에 특수 자재가 사용돼 건축비가 2~3배 더 든다. 유지 관리비가 비싸다 보니 임대료도 높아 완공 후 몇 년간 텅 비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각국이 경쟁적으로 초고층 계획을 내놓은 것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초고층 빌딩은 무엇보다 한 도시나 국가의 표지물인 랜드마크가 된다. 그 건물의 상징성이 갖는 마케팅 효과도 충분히 크다.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지역에는 부대시설이 함께 들어선다.

부르즈 칼리파도 초고층 타워 주변에 호텔과 아파트가 어우러지는 도심을 만들어냈다.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도 크다. 100층 이상의 초고층 빌딩은 그 자체가 관광 상품이 되기 때문에 유동인구가 크게 늘어난다. 거대한 신흥 상권이 생기는 셈이다. 초고층 빌딩을 도시 속 건물도시로 표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불모지'가 선택할 수 있는 선진국의 길

하지만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 건설을 꼬집는 것은 지나치다. '빚내서 쌓은 현대판 바벨탑'이라며 무조건 비난하는 것도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필자는 두바이에 있어 이런 시도는 하나의 생존전략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자원도 풍부하지 않고, 기술 인력도 적고, 영토도 작고, 그리고 쓸모없는 모래사막만을 가진 두바이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 다른 선택이 없었다.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무함마드도 2009년 4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가장 좋은 공항, 가장 호화스런 호텔, 가장 큰 항구, 그리고 최대 규모 인공 섬 같은 것들이 아니다. 두바이 모델은 그 이상의 것이다.

두바이는 천연자원이 부족한, 그러나 종합적인 개발과 사회의 필요에 대해 분명한 비전을 가진 아랍의 도시다. 두바이는 창의력을 가지고 국가를 개조하고 동시에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와 독독특한 지리적 위치를 이용한 무역과 서비스의 전문성을 통해 성공해야 한다."

물론 두바이의 재정위기는 예견된 바가 없지 않다. 그러나 위기란 그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느냐다.

두바이가 다시 일어설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두바이가 얼마 전까지 이루어 놓은 천지개벽과 같은 발전과 이를 달성하기 위해 쏟아 부은 혼신의 열정과 노력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지금은 위기에 처해 있지만 불가능을 현실화시킨 두바이 정신은 아직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두바이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 부르즈 칼리파다.


"매일 일어나 부르즈 칼리파를 보는 대부분의 두바이 국민은 다시 창조적인 미래를 열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현지에서 만난 두바이의 한 시민은 이렇게 말했다.

▲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의 전망. 부르즈 칼리파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두바이의 풍경은, 이 곳이 불모의 사막이었음을 잊게 한다. ⓒ로이터=뉴시스

더불어 이 최고층 빌딩은 우리 기업이 달성한 '초고층 신화'다. 부르즈 칼리파의 완공으로 시공사 삼성물산은 '초고층=삼성건설'이라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향후 초고층 건설시장에서 톱클래스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섭씨 50도가 넘는 사막에서 5년 동안 땀에 젖어가며 일한 한국인들의 작품이 바로 부르즈 칼리파다. 800m 이상의 높이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밤잠을 설쳐가며 이루어낸 대역사다. 2006년 공사 현장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한국의 긍지와 자랑을 드높이는 우리 기업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우리의 땀으로 피운 사막의 꽃

그러나 자만해서는 안 된다. 부르즈 칼리파가 들어선 두바이가 재정위기에 빠지게 된 데에도 자만심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우리 건설업체는 시공에서의 1위 자리에 만족하지 말고, 설계와 설비장비 운용과 같은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에서도 최고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부르즈 칼리파 현장 방문 당시 딱 한 가지 사항을 지시했다고 한다. "기술을 배우고 축적하라." 최고가 되기 위해 더 첨단기술을 확실히 축적하라는 것이다.

2009년 말 UAE에서 원전을 수주해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축하한 적이 있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수주 액수였다. 무려 47조원이다. 플랜트는 물론 건축과 토목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기술 강국이 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09년 우리의 해외건설 수주총액은 493억 달러에 달했다. 이 중 60% 이상은 중동에서 따낸 것들이다. 이 모든 것이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 속에서도 견뎌온 한국인의 끈기와 사명감으로 가능했다. 한국인의 근면함에 외국 기술자들과 기능공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절대로 멈춰서는 안 된다.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다. 세계 다국적 기업들 간의 총성 없는 경제 전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일류 기업, 글로벌 마케팅, 일등 상품 등이 없으면 몰락할 수밖에 없는 무한경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기술 개발과 축적 그리고 국제화 및 현지화를 가속화해 무한경쟁 시대에 앞서 나가야 한다. 한국인의 도전정신과 창조정신으로 대한민국이 피운 사막의 꽃, 부르즈 칼리파의 최고층에서 더 멀리 내다보며 더 원대한 꿈을 펼쳐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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