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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동북아시아의 베트남'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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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동북아시아의 베트남'이 될 수 있을까?

[인터뷰] 박태균 서울대학교 교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2차 정상회담이 27일 오후 베트남 하노이에서 시작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베트남 현지에 도착해서 "북한이 비핵화하면 베트남처럼 매우 빠르게 번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1964년 8월 통킹 만 사건 직후 베트민(월맹)이 통치하는 북베트남을 폭격했다. 이로써 미국은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베트남 전쟁)에 본격 개입했다. 하지만 1973년 1월 파리 평화협정을 계기로 미국은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그리고 베트남은 1975년 4월 북베트남 주도로 통일됐다. 지금의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탄생했다.

20년 가까이 총을 맞댔던 미국과 베트남은 1990년대 들어 화해했다. 1989년 시작된 해빙 흐름은 1994년 경제 제재 해제, 그리고 1995년 국교 정상화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베트남 경제도 고도성장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6~7%대 성장률을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27일 발언은, 북한이 비핵화 이후 베트남 모델을 따라 성장할 수 있다는 암시로 풀이된다.

과연 북한은 '동북아시아의 베트남'이 될 수 있을까? <베트남 전쟁 -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 저자인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는 한국 현대사 전문가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 등을 널리 알렸었다. 또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 냉전 체제와 그 종식 방안에 대해서도 오래 연구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대학교에서 만난 박 교수는 북한과 베트남의 닮은 점과 다른 점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다. 둘 다 미국과 피 흘리며 싸웠고, 굴복하지 않았다. 오랜 경제 제재를 견뎠고, 결국 미국과 화해했거나 화해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제2의 베트남'이 되리라는 기대 역시 섣부르다. 지정학적인, 역사적인 맥락이 다르다. 박 교수는 북한 비핵화 이후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비동맹 중립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주변 열강의 보장 속에서 영세중립국으로 지내는 스위스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다.


▲박태균 서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베트남과 한반도의 차이, 중국과의 갈등 수준


프레시안 : 북미 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다. 회담 장소가 지닌 상징성이 크다. 한국과 미국은 베트남에서 베트민(북베트남 및 현 베트남사회주의 공화국 집권 세력인 베트남공산당의 전신) 세력과 싸웠다. 미국이 해외에서 벌인 전쟁 가운데 첫 번째 패배 사례였다. 이후 경제 제재가 이어졌지만, 베트남은 개혁개방을 내부적으로 준비했고, 1995년에 미국과 수교했다. 북한이 이런 길을 따라가리라는 기대감이 있다.

박태균 :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는 닮은 점이 많다. 그건 숙명이다. 미국 옆에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의 숙명과도 닮았다. 강대국과 맞닿아 있는 나라들이 지닌 공통점이 있다. 다만, 동아시아가 지닌 특수성도 함께 봐야 한다. 예컨대 유럽에선 강대국에 맞닿아 있는 나라들이 '힘의 균형'을 도모할 수 있었다. 강대국이 여러 개니까,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선 오랫동안 강대국이 중국뿐이었다. 따라서 '힘의 균형'보다는 '밴드 왜건 효과'가 더 크게 작용했다. 강대국 주변 국가는 '강대국을 등에 업고 주변에 위상을 과시하는 효과'를 얻으려 했다. 중국의 동북쪽에 있는 한반도, 동남쪽에 있는 베트남이 모두 그랬다. 둘 다 중국에 조공하는 나라였다.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그걸 등에 업으려 했다.

그러나 차이도 크다. 한국은 주변에 다른 강대국인 일본이 있었다. 따라서 한쪽에 의지해서 한쪽을 견제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베트남 주변에는 그보다 약한 라오스와 캄보디아가 있었다. 따라서 베트남은 중국에게 굽힐 수만은 없었다. 중국에게 너무 고개를 숙이면, 주변의 약한 나라들이 만만하게 본다. 그러니까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베트남이 패권을 누리려면, 때로는 중국과 부딪혀야 했다.

게다가 베트남은 물자가 아주 풍부하다. 자연 조건이 좋다. 이는 중국 입장에서 전쟁을 해서라도 차지하고 싶은 땅이라는 뜻이다. 베트남과 중국 사이엔 이렇게 해서 생겨난 오랜 역사적 긴장이 있다.

반면 한국은 중국과의 갈등이 덜했다. 중국 입장에선 한반도의 북방 일대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무리해서 빼앗기보다, 복속시키는 정도면 충분했다.

베트남과 중국의 오랜 갈등, 베트남 사람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 등을 미국이 전에는 잘 몰랐었다. 알았더라면,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했을까. 의심스럽다.

북한-미국 갈등이 미국-베트남 갈등보다 오래 이어진 까닭

기본적으로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 (남베트남이 망한) 1975년을 전후해서 방식이 달라졌을 따름이다. 1975년 이전, 즉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했을 당시엔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아서 중국을 견제하려 했다. 반면 그 뒤엔 미국이 베트남과 가까워지는 방식으로 중국을 견제한다.

베트남이 중국과 오랫동안 갈등했으므로, 미국은 베트남과 가까워질 동기가 있었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경제적 동기는 크지 않다. 베트남은 1986년부터 도이머이(개혁 개방) 정책을 추진했다. 그렇게 시장을 열었는데, 전체 해외 투자액 가운데 미국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적다. 베트남과 미국이 가까워진 건, 중국 봉쇄라는 정치 및 안보 논리로 설명하는 게 자연스럽다.

이렇게 보면, 북한은 베트남에 비해 미국 입장에서 굳이 친해져야 할 동기가 약한 나라였다. 북한과 중국은 크게 갈등하지 않았으니까. 북한과 베트남, 모두 미국과 전쟁 했던 나라였지만, 북한과 미국의 갈등이 더 오래 지속된 건 그래서였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이 가까워지기엔, 어떤 한계도 있으리라고 본다. 미국이 반미 국가였던 북한과 화해하기 위해 역시 한때 서로 싸웠던 베트남에서 만났다. 그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반미 국가였던 이란과 화해하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때 미국과 이란의 정상회담이 북한의 평양에서 이뤄질 수 있을까. 이건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북한이 '제2의 베트남'?쉽지 않을 듯


프레시안 : 베트남이 미국과 수교한 뒤 이룬 경제가 고도성장했던 걸 보고, 많은 이들이 북미 회담 이후에 대해서도 비슷한 기대를 한다. 북한이 베트남 식 개혁, 개방 모델을 따르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 박태균 서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박태균 : 중국이 개방 노선을 택한 게 1978년이다. 베트남은 고작 8년 늦었다. 1986년에 도이머이 정책을 시작했다. 대신, 개방 폭은 중국보다 훨씬 넓었다. 중국은 여전히 국영기업에 대한 공산당의 지배가 견고하다. 베트남은 그렇지 않다. 훨씬 개방된 경제다. 그런데 경제력 수준은 중국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당연히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 경제 실태를 둘러보고, 참고할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 모델을 그대로 따를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중국이 개방 초기에 썼던 '점-선-면' 정책이 북한에는 더 효과적이라고 보지 않을까. 먼저 특정 지역을 점으로 찍어서 해외 자본에 개방하고, 그걸 다시 선과 면으로 확대하는 정책이다. 베트남 식 개방 모델은 북한 입장에서 큰 부담일 될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충격인데, 효과도 불투명하다.

과거 북한의 사례 역시 이를 뒷받침 한다. 나진선봉 지대의 개방은 일본 자본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신의주와 금강산은 각각 중국과 한국 자본을 겨냥했다. 특정 자본을 겨냥해서 부분적으로 문을 열었던 과거 방식이 그대로 쓰이리라고 본다. 다만 규모와 속도에서 변화가 있을 뿐. 그러니까 당분간은 '점'을 여는 수준일 듯 싶다.

북한과 미국의 입장 차이도 있다. 북한의 발표를 보면, 북한은 미국 기업이 들어오길 바라는 듯하다. 안보 측면에선 당연하다. 수교하고 대사를 교환한 나라끼리도 전쟁 한다. 대사 소환하고 전쟁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돈이 걸려 있으면 전쟁하기 어렵다. 미국 자본이 북한에 들어가면, 확실히 안전해진다.

반면, 미국은 북한 시장에 큰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경제보다는 정치 및 안보 차원에서 관심이 있다. 이런 간극이 있다. 북한의 기대와 달리, 북한 투자는 한국, 일본 등에게 상대적으로 더 매력적이다. 예컨대 한국은 북한과 서로 말이 통하니까.

'한반도 중립화', 미국에게도 이롭다

프레시안 : 북한이 '제2의 베트남'이 되기 어렵다면, 남과 북은 어떤 길을 가야 할까.

박태균 : '한반도 중립화'가 대안이라고 본다. 이는 '통일'과는 별개다. 분단 체제를 유지하는 한에서 남과 북이 주변 국가의 동의를 얻어 비동맹 중립 외교를 하는 것이다. 그에 앞서 남과 북이 평화협정과 불가침 조약을 맺어야 한다.

이는 낯선 주장이 아니다. 미국의 이해관계에도 맞고, 실제로 미국이 진지하게 검토했던 길이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을 앞두고서도, 미국 정부 안에서 한국의 중립화 논의가 있었다. 당시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한국의 중립화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일종의 스웨덴 모델이었다. 스웨덴은 1차, 2차 세계대전 당시도 중립노선을 유지했었다. 중립국이지만, 미국과 가깝다. 하지만 이후 냉전이 격화되면서, 한국 중립화 논의는 가라앉았다.

그러나 비슷한 흐름은 계속 있었다. 닉슨 행정부는 주한미군을 감축하면서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 측 수석대표를 미군에서 한국군 장성으로 교체하려 했다. 당시 한국의 반발로 무산됐지만, 1992년에 결국 한국군으로 교체됐다. 아버지 부시(조지 H.W. 부시) 행정부 시절이다. 아들 부시(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한국의 노무현 정부 시절에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했다. 당시 전시작전권 환수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이는 국내 정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는, 미국이 정할 일이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주한미군과 한미 군사 동맹에 관한 결정은 미국이 주도한다.

최근 주한미군사령관이 미국 의회에서 남북 평화협정 이후엔 주한미군이 주둔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었다. 그 뒤, 곧 말을 뒤집었다. 미국 정부 역시 향후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입장이 모호하다는 뜻이다. 미국의 재정 적자를 생각하면, 주한미군은 확실히 큰 부담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는 건 이런 맥락이다.

이런 점까지 고려하면, '한반도 중립화'는 미국에게도 좋은 방향이다. 또 19세기 이래 한반도 지식인들이 고민했던 방향과도 일치한다. 19세기 말에는 중국이 약해지고, 일본이 강해졌다. 그래서 비동맹 중립 외교를 하기가 어려웠다. 반면 지금은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 사이에서 힘의 균형이 이뤄져 있다. 아울러 한국의 경제력과 북한의 군사력은 쉽게 무시하기 힘든 수준이 됐다. 비동맹 중립 외교를 하기 좋은 조건이다.

▲ 박태균 서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영세중립국 스위스처럼

2차 북미회담이 잘 풀리고,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지며, 이후 남과 북이 평화협정을 맺는다고 하자. 그러면 북한은 비핵화 하는데, 한국은 미국 핵우산 아래 있게 된다. 균형이 맞지 않는다. 주한미군은 언제든 나갈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분단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렇다. 이는 미국의 사정에 따라 정해질 일이다.

그걸 현실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해서, 한반도가 중립화하는 길이다. 이는 한국이 미국과 멀어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처럼 한국이 미국, 일본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되, 군사적으로는 비동맹 중립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그렇다.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지만, 사실상 중립국이다.

분단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한반도 중립화가 가능하고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쌓여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다른 길은 없다고 본다. 예컨대 통일과 한반도 중립화를 함께 추구한다? 그건 반대한다. 통일은 별개 문제다. 결코 급한 과제가 아니다.

영세중립국 스위스를 떠올려 보자.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도시인, 취리히와 제네바는 완전히 다른 사회다. 취리히는 독일어를 쓰고, 제네바는 프랑스어를 쓴다. 그런데도 평화롭게 공존한다. 비동맹 중립 외교를 하면서도 번영을 누린다. 아울러 경제 및 문화적으론 개방된 사회다.

한반도 역시 이런 길을 갈 수 있다. 주변 국가의 보장을 얻고, 남과 북이 평화협정 및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면 가능하다. 아울러 남한의 경제력과 북한의 군사력은 중립 노선을 뒷받침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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