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이탈리아전때 일이다. 1대0으로 뒤지고 있던 후반 막판, 거스 히딩크 감독은 3번째 교체선수로 홍명보 선수를 빼고 차두리 선수를 투입했다.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차두리는 히딩크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1백86cm의 거구에서 야생마같은 에너지를 뿜어내며 이탈리아 수비진을 교란시켰다. 한국팀의 집요한 압박에 지쳐있던 이탈리아팀은 돌진하는 차두리를 막느라 크게 당황했다. 이같은 수비진의 당황 속에 마침내 설기현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다. 그리고 후반 종료직전 차두리의 기가 막힌 오버헤드킥이 터졌다. 골이 이탈리아 골키퍼 정면으로 갔기에 망정이지, 옆으로 10cm만 비껴갔어도 통렬한 결승골이 될 뻔한 순간이었다.
이 장면을 본 축구팬들은 "브라질의 히바우두 못지 않은 멋진 백만불짜리 오버헤드킥"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차두리가 더이상 언제나 낄낄거리며 잘 웃는 대표팀의 막내 마스코트가 아닌, 팀의 '마지막 비밀병기'임을 드러내 보인 순간이었다.
***스페인전의 '마지막 비밀병기' 차두리**
22일 스페인과의 8강전을 앞두고 지금 외국언론들이 차두리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차두리가 스페인전의 '비밀병기'로 등장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근거는 간단하다. 지금 한국팀은 18일 이탈리아와의 피 말리는 연장전 때문에 체력을 소진한 상태다. 연장전은 흔히 일반경기 두 게임을 연속으로 치른 것에 비유될 정도로 체력소모가 극심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스페인팀보다 이틀을 덜 쉬고 출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팀은 체력과 스피드로 스페인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뤄야 한다. 개인기는 객관적으로 스페인쪽이 높기 때문이다.
이럴 때 팀의 활력을 끌어내기 위해선 겁없이 적진을 돌파할 한마리 '야생마'가 필요하다. 이 야생마가 다름아닌 차두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외국언론들의 지배적 관측이다.
영국의 로이터 통신은 20일(현지시간) "차두리 선수는 21살의 한국 대학생으로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비밀병기로 등장할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차두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로이터 통신은 "차두리는 최고의 선수로 성장할 완벽한 혈통을 가졌다"면서 "차두리의 아버지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전에 출전했으며 독일 프로팀 선수로 1980년대 두 번이나 유럽선수권대회(UEFA) 우승컵을 안았다"고 소개했다.
다른 외국언론들도 차두리의 출장 가능성에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아버지 차범근씨에 이어 아들 차두리도 세계축구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차범근의 아들 차두리'냐 '차두리의 아버지 차범근'이냐**
한국축구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고 있는 차범근씨는 축구선수 생활을 그만둔 지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독일 등 유럽에서는 '차붐' '갈색폭격기'로 불리며 늘 관심의 대상이다.
그의 아들 차두리가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것을 계기로 지난 1월 스페인 최대 스포츠지인 <마르카>가 마침 미국에서 열린 북중미 골드컵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에 와있던 차범근 차두리 부자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위치한 팜 리조트 호텔에서 인터뷰를 한 것도 '차붐'의 인기가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한 증거다.
당시 마르카지는 대를 이어 부자가 국가대표에 발탁된 것에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이들 부자는 각각 월드컵 대회에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하는 드문 기록을 갖게 되었다. 한국축구 사상 부자 대표는 김찬기(60년대 초반)-김석원(80년대 초반) 부자에 이어 차범근-차두리 부자가 두번째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월드컵 무대를 밟는 것은 한국축구사상 처음이다. 외국에도 부자 월드컵 출전 케이스는 그리 많지 않다. 98 프랑스월드컵 때는 이탈리아의 말디니 부자가 감독과 수비수로 나란히 출전했고, 폴란드대표팀의 스몰라렉(21)의 경우 차범근-차두리와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86멕시코월드컵에 뛰었고 아들이 이번 2002 한·일월드컵에 출전했다.
***차범근, "아들 팬레터는 하루 1만통, 나는 겨우 1백통"**
그러나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점이 한때 차두리에게는 도리어 마이너스 요소가 되기도 했다.
차두리는 지난해 9월 히딩크호에 승선한 뒤 최종엔트리에 발탁된 케이스. 그러자 일각에서는 '아버지의 후광 덕에 발탁된 게 아니냐'는 시샘어린 말들이 떠돌았었다. 특히 차두리가 골을 넣지 못하자 이런 얘기는 더욱 힘을 얻어갔다. 그러나 차두리는 지난 4월 코스타리카전에서 A매치(국가대표팀간 경기) 데뷔골을 터뜨리며 이같은 시샘을 잠재웠다.
사실 이번에 차두리네 가족은 이번 대회에 모두 나서는 진기록을 갖고 있다. 차두리는 선수로 뛰고, 차범근씨는 방송해설위원으로, 누나 하나(24)씨는 외국 방송사의 통역업무를 보고 있으며, 동생 세찌(16)씨는 볼 스태프로 선정된 것이다.
14일 포르투갈전에 볼 스태프로 세찌가 나선 날에는 관중석에서 차두리를 지켜본 어머니 오은미씨(48)까지 5명의 가족 모두가 한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차범근씨는 "요즘 아들 녀석의 인기가 너무 높아 이제는 '차범근의 아들 차두리'가 아니라 '차두리의 아버지 차범근'이라고 해야 맞게 되었다"면서 "아들은 팬레터를 하루에 1만여통이 넘게 받고 있는데 나는 1백통도 안된다는 현실에 솔직히 섭섭한 감도 있다"면서 흐뭇해 했다.
***차두리 스카웃 제의 받고 "분데스리가 진출, 꿈이었다"며 OK**
차두리는 이미 외국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해외축구 전문사이트 데일리사커닷컴(www.dailysoccer.com)는 21일(이하 한국시간) "분데스리가 명문클럽 바이엘 레버쿠젠이 차두리를 영입할 의사를 밝혔다"며 레버쿠젠의 팀 공식 웹사이트(www.bundeliga.de) 기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라이너 칼문트 레버쿠젠 단장은 "우리가 차두리에게 한 가지 계약조건을 제시하고 만일 그가 동의한다면 우리는 그를 분데스리가에 데려와 필수적으로 필요한 플레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칼문트 단장은 "차두리를 분데스리가에 속한 다른 강팀에 일시적인 임대 형식으로 내주고 경험을 축적하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칼문트 단장의 발언은 '미완의 대기'로 평가되는 차두리가 레버쿠젠에서 당장 주전으로 뛸 수 없을 경우 일단 리그에서 실전 경험을 충분히 쌓도록 한 뒤 레버쿠젠에서 공격수로 중용할 수 있다는 계획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나는 월드컵에서 골을 넣을 것"**
이에 대해 차두리는 "평소 아버지가 뛰었던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하는 것이 꿈이었다"며 "레버쿠젠이 공식 제의를 해온다면 무조건 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레버쿠젠은 차범근씨가 장기간 선수생활을 했던 구단이고,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차두리도 어릴 적 레버쿠젠 유소년 팀에서 축구지도를 받은 바 있어 여러 모로 인연이 깊다.
레버쿠젠은 올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진출, 스페인 최고명문 레알 마드리드와 우승을 다퉜던 강팀으로 현 독일 대표팀의 주축 미드필더인 미하엘 발라크와 파라과이전 결승골의 주인공 올리버 노이빌레 등 유명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차범근씨는 지난 78년 다름슈타트에 입단하면서 분데스리가에 발을 들여놓은 뒤 79년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83년 레버쿠젠으로 이적, 88∼89시즌까지 총 11시즌을 활약했다. 모두 3백8경기에 출전해 98골을 터뜨리며 분데스리가 용병 최다골을 기록했고, 소속팀을 2번이나 UEFA컵 정상으로 이끄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반면 차두리는 태극마크를 단 후 A매치 13경기 출전, 1골(20일 현재)을 기록 중인 '새내기'다.
그러나 차두리는 "나는 월드컵에서 골을 넣을 것이다. 그건 아버지도 못한 일"이라면서 '제2의 차붐'이 되겠다는 포부를 당차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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