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SKT(SK텔레콤)에게 KT(구 한국통신) 지분을 대량매각하라는 압박을 공개리에 가하기 시작했다. SKT가 지난주 KT 민영화 과정에 기습적으로 사들인 KT지분 11.34% 가운데 7% 이상을 되팔아 2대주주로 내려앉으라는 게 정부 주문의 요지다.
정부의 이같은 강경방침은 SKT의 기습적 지분매입을 '정권 말기 레임덕(권력누수)을 악용한 정책도전'으로 해석해 격노하고 있는 데다가, SKT가 KT의 최대주주가 되도록 방치할 경우 앞으로 두고두고 '독점특혜'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KT의 대규모 주식 스왑 제안, SKT는 일축**
24일 하루내내 정부·KT·삼성과 SKT는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먼저 포문을 연 쪽은 KT였다.
이상철 KT사장은 이날 낮 기자간담회에서 "SKT가 최근 KT 민영화 과정에서 확보한 KT지분(11.34%)과 KT가 보유하고 있는 SKT 지분(9.27%)을 서로 맞바꾸는 주식 맞교환(스왑)이 바람직하다" 며 SKT에 대해 주식스왑을 제안했다. 이 사장은 "SKT는 이번 KT 지분참여 목적으로 삼성 견제와 주식 물량부담 해소를 들었다"며 "결과적으로 삼성측 참여를 막았고 주식 물량부담도 KT와 주식 스왑을 하면 해소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SKT측 답변은 '노(NO)'였다.
이번에 KT 지분 인수작전을 총괄지휘한 것으로 알려지는 손길승 SK회장은 KT의 주식 스왑 제안을 일축하는 대신, SKT가 교환사채(EB)를 통해 취득한 KT지분 1.79%를 삼성 등에 팔겠다는 역제안을 내놓았다. 손 회장은 이날 오후 인터뷰에서 "삼성 등은 사업을 하나 더 하느냐 마느냐 하는 차원이지만 SK는 생존차원의 문제였다"며 KT 지분 인수의 불가피성을 재차 강조했다.
***삼성의 반발, "우리가 거지냐"**
이번에는 손 회장의 제안을 접한 삼성측이 발끈했다.
SKT의 기습적 대거매입 주문으로 KT주식을 한 주도 사들이지 못하게 된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1.79% 인수를 제안받은 적도, 사들일 마음도 없다"고 일축했다. '우리가 KT주식을 동냥받을 거지로 보이느냐'는 식의 반응이었다.
그는 "SK는 창업 이래 알짜 공기업들을 인수해 오늘날까지 덩치를 부풀려온 공기업 전문킬러 아니냐"며 "이번 KT인수도 오래 전부터 작전을 짜 자금을 모으고 반(反)삼성 여론을 조성하는 등 치밀하게 물밑작업을 해온 결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왜 시민단체 등이 삼성의 KT 지분매입은 문어발 확장이며 특혜라고 극렬 반대하면서, SKT의 KT지분 대량매입에 따른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통신산업 독점화에 대해선 한마디 말도 안하고 있느냐"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통부, "주식 안 팔면 정부정책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받아들이겠다"**
손길승 회장의 발언을 접한 정부측도 일제히 SKT 성토에 나섰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SKT의 KT 지분 취득에 대해 기업결합심사가 진행중"이라며 "만약 경쟁제한성이 분명할 경우 해당주식에 대해 공정거래법에 따라 처분명령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쟁제한성이 없어 처분명령이 내려지지 않을 경우라도 SKT가 KT지배를 통해 이동통신시장의 86%를 차지하는 등 통신시장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는 만큼 SKT의 독과점 행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감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다 단호하게 정부입장을 밝힌 이는 양승택 정보통신부 장관이었다.
양 장관은 이날 오후 APEC 정보통신장관회담 참석차 출국에 앞서 "이번 KT지분 매각은 성공적이었으나 SKT의 막판 돌출행위로 빛이 바랬다"며 "SKT가 KT주식을 처분하지 않으면 정부정책에 정면도전하겠다는 의사로 간주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 장관은 손길승 회장의 1.79% 지분 양도 제안에 대해서도 "1.79% 정도는 관심도 없다"며 "SKT는 2대주주로 내려갈 때까지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고 구체적 매각규모까지 요구했다.
양 장관의 이 말은 현재 KT의 2대주주인 템플턴투신운용의 지분이 4.4%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에 SKT가 매입한 KT지분 11.34% 가운데 7% 이상을 매각하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었다. 또한 이는 이상철 KT사장이 제의한 주식 스왑 방식을 SKT가 받아들이라는 정부측 지원사격이기도 했다.
이같은 십자포화에도 불구하고 SKT는 아직 버티기 전술을 구사중이다. 그러나 과연 정부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비록 정부가 보유하고 있던 KT지분을 모두 팔아 지분상으로는 더이상 KT와 무관하나, 정부 수중에는 아직도 통신요금 결정권을 비롯해 통신정책, 공정거래 등 수많은 정책적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KT의 민영화 고위관계자는 "SKT의 기습적 KT지분 대량매수는 삼성·LG·SKT 등으로 KT 대주주들을 황금분할함으로써 상호견제를 시키려 한 정부정책에 정면적으로 반기를 든 것에 다름 아니다"며 "아무리 지금이 정치적 레임덕이 심한 시기라 할지라도 SKT의 행위는 기업윤리 측면에서나, 정책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게 지금 정부와 KT의 지배적 분위기"라고 전했다.
요컨대 결국은 SKT가 주식 스왑이라는 KT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으리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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