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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회계조작 부실은폐로 위기 직면

F15K 구매나 안정적 부품조달에 차질 가능성

미국 보잉사가 18일 당초 낙찰가보다 2억달러를 깎은 가격으로 F15K를 한국에 팔기로 국방부와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조건으로는 손해가 나는 만큼 절대로 가격을 낮출 수 없다고 항변하던 보잉사의 돌연한 태도변화다.

보잉사의 태도변화는 국내의 거센 반대여론 때문에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최종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 없다고 한 국방부의 버티기 전술도 한 요인으로 작용한듯 싶다. 만약 시간을 계속 끌 경우 레임덕(권력누수) 심화로 김대중대통령의 최종 재가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보잉사가 느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잉사는 자신들의 주장대로 손실을 감수하면서 울며겨자먹기로 도장을 찍은 것인가. 과연 이것이 사실이라면 보잉은 '손해보는 장사'를 어떻게 보잉 주주들에게 설명할 것인가.

이와 관련, 미국 보잉사의 회계 투명성에 중대한 의문이 있다는 의혹이 미국언론에 의해 제기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보잉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위태로운 기업이라는 게 미국언론의 지적이다.

***비즈니스위크, "보잉사는 믿을 수 없는 기업"**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5월20일자)는 '보잉사의 비밀'이라는 커버스토리에서 "보잉사는 현재 감사가 불가능한 회계방식을 택하고 있어 투자자들에게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기업임을 드러냈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보잉사는 이미 97년에 '전설적인 은폐범죄'를 저질렀으며 이같은 상황은 지금도 '현재형'으로 변함없다.

96년 12월11일 보잉사의 필립 콘딧 회장은 32년간 보잉에서 일하면서 회심의 역작을 매듭지었다. 합병 시도에 대해 처음에 미온적이었던 또다른 거대항공사 맥도널 더글러스 경영진을 3년간 설득한 끝에 합병합의문에 서명하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보잉은 세계최대 항공사가 될 수 있었다. 헬리콥터에서부터 전투기는 물론, 우주정거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행물체를 제작하는 최초의 제작사가 된 것이다.

***생산시스템 붕괴 손실 26억달러, 1년간 숨겨**

그러나 합병선언이 나온 당시는 제작시스템의 노후화로 생산성 악화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던 시점이었다. 97년 5월 작성된 내부의 특별보고서는 "우리 보잉사의 생산시스템이 붕괴된 상태에 이르렀다"라고 결론짓고 있었다.

만일 투자가들이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합병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97년 8월1일 합병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주주들은 전혀 사태를 알지 못했다.

10월8일 맥도널 더글러스의 CEO에서 보잉 사장 겸 최고운영자(COO)로 자리를 옮긴 해리 스톤사이퍼는 콘딧 회장에게 "우리는 지금 엄청난 사태에 직면해 있다"며 "솔직하게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같은 압력에 굴복해 결국 10월22일 콘딧 회장은 이 사실을 밝혀야 했다. 보잉사의 생산시스템 문제로 26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이 초래된 사실을 발표한 것이다. 보잉사상 최대 비용손실이었다.

하룻밤새 시가총액이 43억달러나 떨어졌다. 투자자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면서 이 회사가 지난 수십년간 쌓아온 신뢰가 무너지고 주가는 첫날 8%에 이어 다음날 또다시 12% 하락했다. 98년까지 보잉 주가는 바닥세를 면치 못했다.

97년 보잉사의 생산시스템 사태가 1년 가까이나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미스테리다. 다만 이 사건은 경영진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투자가들을 기만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숫자조작의 주범은 프로그램 회계**

보잉사가 투자자들을 속일 수 있는 비밀은 이른바 '프로그램 회계'다. 기업분석가들은 이 방식이 투명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음에도 보잉사는 이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보잉은 현재 미국에서 실사하기 가장 어려운 기업이라는 악명을 얻고 있다. 보잉사가 이 방식을 고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90년대초 세계경제가 불황기에서 벗어나면서 항공제작사들은 밀려드는 주문에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93년 전세계적으로 15대에 불과하던 항공기 제작주문이 96년에는 8백98대로 폭증했다.

그러나 보잉사의 부품추적 장치 노후화로 주문물량을 소화하기에 턱없이 모자랐다. 게다가 좌석, 전자기어 등 부품 공급도 차질을 빚었다.
반면 보잉사의 최대 경쟁사인 유럽의 에어버스사는 낮은 생산비용과 정부보조금 등에 힘입어 생산단가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 결과 94년말 에어버스는 전세계 제트비행기 시장의 30%를 장악했다.

대책에 나선 보잉사는 1995년 9천5백명을 조기퇴직시키고 숙련기술자들을 대량해고하면서 생산비용을 낮추려 애썼다. 그러면서도 생산스피드는 2배로 늘리겠다고 했다. 애당초 실현불가능한 목표였다. 당시 현장간부들은 보잉의 생산시스템으로는 초기예상비용보다 10억 달러가 더 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더 큰 문제는 항공제작사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지키려는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는 사태에 직면했다는 점이었다.

7월27일 2분기 마감 사흘 전 보잉사의 상용기 담당 중역들은 최소한 15개 비행기가 인도 약정일을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항공우주산업특별 회계규정에 따르면, 항공사들은 납기지체보상에 대한 준비금을 마련하고 이를 분기결산에 반영하는 한편, 비정상적인 비용도 발생분기에 회계처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보잉은 이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97년 7월21일 보잉사는 2분기 수익을 3억3천4백만 달러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생산비용, 소송비용 등 2억9천2백만 달러를 빼놓은 것이다. 게다가 투자자들은 당시 보잉사가 1분기에 2억5천3백만달러에 달하는 예상외비용이나, 납기지체보상금으로 2억달러 이상을 물게 생겼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 모든 사기가 프로그램 회계로 인해 가능했던 것이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 수석회계분석가였던 린 터너는 "항공사들은 자체 기준의 회계방식을 쓰고 있어 사실상 감사가 불가능하다"면서 "항공제작사가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비행기를 생산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주식회사 미국'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이 과정에 드러난 보잉의 비리는 미국기업들 대부분이 생각보다 심각한 숫자 조작 범죄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미국 보잉사의 F15K를 사기로 '억지 계약'을 맺고도, 신뢰상실에 따른 보잉의 붕괴로 F15K의 정상적 구입이나 안정적 부품조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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