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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특집] 청주 만세운동은 3월7일 우시장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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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특집] 청주 만세운동은 3월7일 우시장서 시작

한봉수 의병장, 청주장날인 7일 만세운동 주도 이후 지역으로 확대

▲1919년 3월7일 한봉수 의병장이 충북 청주지역 최초로 만세운동을 벌인 곳으로 전해지는 남주동 소공원에 설치된 기념물 ⓒ프레시안(김종혁 기자)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기억과 기념식 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충북 청주지역 최초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7일 남주동 우시장에서 시작됐다는 기록이 정설화 되고 있다.

충북의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이끌고 있는 정지성 문화사랑모임 회장은 “청주지역에도 2일 독립선언서가 전달되고 7일 한봉수 의병장이 우시장에서 만세운동을 펼친 기록이 분명히 있다. 이들의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청주지역에는 손병희 선생 등 우암산 3·1공원에 동상이 모셔진 분들에 대해서만 집중 조명 됐었지만 그 분들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적인 대표성을 지닌 분들이다”며 “이제는 실제로 청주지역에서 펼쳐진 만세운동을 살펴보고 기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10년 전인 2009년부터 ‘3·1운동 100주년’을 준비해 온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활동가다.

그는 2009년 ‘3·1운동 90주년 시민행동’을 결성하고 청주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대한 자료와 기록을 모아 자칫 묻힐 뻔한 ‘청주만세운동’의 기억을 공론화 시켰다.

정 회장에 따르면 충북 청주에 3·1운동이 전파되기 시작한 날은 1919년 3월2일 천도교도인 안종익 선생이 청주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할 때부터다.

당시 일경의 기록에는 ‘안종익이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검거 당해 286부를 압수했다’고 돼 있다.

정 회장은 “당시 안종익 선생은 충청과 전라지역에 독립선언서 배포 임무를 띠고 있었으며 각 지역별로 1700부 정도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경에 압수당한 286부외에 1400여부는 교서리(현 수동성당 인근) 부근에 배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충북지역의 대표적인 의병장인 한봉수 선생이 1919년 3월7일 우시장(현 남주동)에서 독립선언서를 살포하고 장꾼들과 만세를 불렀다는 기록이 청주시지 319쪽과 한국독립운동사 56쪽에 명시돼 있다.

청주지역에서의 사실상 첫 만세운동이 벌어진 이날은 당시 장날이며 우시장에는 500~600명의 장꾼들이 운집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36세였던 한봉수 의병장은 그해 2월28일 고종황제 장례식 참석을 위해 서울에 오라갔다가 홍명희와 손병희 선생 등과 만나 3·1만세운동 계획을 듣고 고향인 충북에서의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한봉수 의병장은 3월7일 청주에서 만세운동을 벌인 후 4월1일과 2일 북일면 세교리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일경에 불잡혀 옥고를 치렀다.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56쪽에 기록된 한봉수 의병장의 청주만세운동 기록 ⓒ프레시안(김종혁 기자)

정 회장은 “2009년 이를 기념하기위해 남주동 소공원에 ‘청주 3·1만세운동의 자리’라는 표지석을 세웠다”며 “올해는 100주년을 맞아 이 공원의 명칭을 ‘청주만세공원’으로 명명하고 이곳에서 기념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후 청주만세공원에 기록물 건립도 계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청주 만세운동의 근원지로서의 정신을 계승하기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1919년 3월7일 청주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이후 충북 전 지역으로 확산됐다.

당시 3월9일에는 청주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계획하다가 사전에 발각돼 뜻을 이루지 못한 기록이, 3월11일에는 농고 학생 15명이 기숙사를 탈출하다가 붙잡혀 일경에 의해 재판에 넘겨진 기록도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의 ‘한국독립운동의역사’에 전해진다.

이어 3월22일에는 천도교도 민원식이 남주동 싸전(쌀가게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펼친 기록이 남아 있어 현재 남주동 일대가 당시 청주지역의 대표적인 장터 이었으며 2일과 7일이 오일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3월23일에는 조동식 등 1000여명이 강내면 태성리 은적산에서 만세운동과 함께 야간에 횃불만세운동(봉화시위)을 벌였다. 당시 봉수대가 있었던 은적산 봉화시위는 이후 전국적으로 번지 봉화시위의 효시가 된다.

이 후에도 그해 4월2일 현재 도청 뒤인 당산에서 봉화시위를 벌였다.

정 회장은 “만세운동 100년이 지났지만 증거와 기록은 미비하고 연구의지도 약한 게 현실이다”며 “올해 100주년에는 그동안의 모든 흔적을 집대성하는 해로 삼고 앞으로는 새로운 100년, 즉 미래로 가기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는 3월1일 청주만세공원에서 기념행사를 시작으로 이후 조형물 설치 작은 물론 충북지역 곳곳의 만세운동을 기록화로 남기는 작업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프랑스의 경우 시민혁명이후 거의 대부분의 마을에서 시민혁명에 참여한 무명용사를 기리기 위한 ‘무명용사비’를 건립해 놓았다. 우리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에 참여한 수없이 많은 이름 없는 민중을 위한 ‘무명독립지사비’ 건립 운동도 준비 중이다”고 밝혔다.

한편 청주를 기점으로 확산된 충북지역의 만세운동은 3월19일 홍명희 선생이 주도한 괴산만세운동에는 수천의 군중이 함께 했으며 신경구 등이 중심이 된 3월30일 미원만세운동은 규모와 사상자 발생 수에서 가장 격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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