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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의 '불면의 나날'

해외선 '도덕적 인권상' 수상, 국내에선 비리연루 의혹

미국을 방문 중인 대통령 영부인 이희호 여사가 연일 바쁘다.

이 여사는 8일 미국 내슈빌을 방문, 밴더빌트 대학에서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여권신장과 아동복지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이 대학이 수여하는 제1회 '도덕적 인권지도자상'을 수상했다.

또한 모교였던 스카릿 베넷센터(지난 56년 유학했던 스카릿 칼리지의 후신)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평화와 정의를 위한 탁월한 지도자상'을 받고 수상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 센터는 지난 56년부터 2년간 스카릿 칼리지에서 유학했던 이 여사의 방문을 기념해 이 상을 제정했다. 센터측은 특히 앞으로 상 이름을 아예 '평화와 정의를 위한 탁월한 지도력에 대한 이희호 여사상'을 바꿔 시상할 예정이라 한다. 대단한 배려다.

그러나 상을 받은 이희호 여사의 기분이 즐거웠겠는가는 의문이다. 요즘 국내에서 돌아가는 상황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절대로 국민들이 걱정 않도록 하겠다"**

지난 98년 9월 한국일보의 장명수 당시 주필이 언론사로는 최초로, 영부인이 된 이희호 여사를 단독 인터뷰했을 때 일이다. 이여사는 언론의 스팟라이트 받기를 피하는 스타일이어서, 인터뷰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모처럼 어려운 기회를 잡은 장 주필은"대통령의 아드님들이 어느 정도로 아버지에게 영향을 미치느냐는 것이 시중의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라고 물었다.

이여사는 이에 "과거에 나쁜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온 가족이 단단히 조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절대로 국민들이 걱정하시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세 아들중 두 아들은 국내에 있고, 막내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손자손녀가 모두 일곱명입니다. 대개 일요일에 만나고 있는데, 대통령이나 저나 아이들을 보는것이 가장 큰 기쁨이지요"라고 답했다.

또한 이여사는 99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퍼스트 레이디로 기억되길 바랍니까"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맘 편히 국정운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의 부인도 국익에 도움이 되고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을 때라도 " '이 말은 꼭 전해드려야겠다' 하는 얘기는 편지를 써 전해드리기도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희호 여사는 과연 권력암투의 한 축이었나?**

그러나 현재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아들들 문제로 대통령이 탈당까지 해야 했고, 결과적으로는 이여사는 자식 관리에 실패한 게 아니냐는 따가운 여론의 눈총을 받고 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이여사는 "대통령이 되고 나니 친인척 관리가 더 힘들어졌다"면서 "대통령께서 며칠 전 미국에서 잠시 들르러 온 막내 (홍걸씨)와 아침식사를 같이 하면서 '너 사람 만나는 거 조심하라' 고 당부하시더군요"라고 말했다. 나름대로 친인척 관리의 중요성을 알고 조심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여사는 아들들의 비리 의혹을 넘어서 급기야 한나라당으로부터 "검찰은 이희호 여사에 대해 엄정 조사하라"는 요구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특히 최근 막내 홍걸씨를 돕기 위해 포스코 유상부 회장과 홍걸씨의 만남을 이여사가 주선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더없이 곤혹스러운 상태다. 이상득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7일 당 특위회의에서 "청와대 안방 주인까지 아들비리에 연루되는 일이 발생했다"며 "포스코가 타이거풀스 주식을 매입한 것은 유 회장이 경영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로비수단"이라며 이희호 여사의 사과와 검찰수사를 요구했다.

김대중 정권의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는 최규선씨는 지난 7일 공개한 2차 테이프에서 "현정권 실세들의 권력갈등 구조는 최규선·권노갑·김홍걸·이희호 여사를 한 축으로 하고 반대편은 김홍일·김은성·정성홍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씨 주장의 사실여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2000년 7월말 김홍걸씨와 포스코 유상부 회장이 만날 때 이희호 여사가 자신의 글씨가 새겨진 도자기를 유회장에게 선물한 대목은 어떤 형태로든 이 여사가 자신의 유일한 친 혈육인 김홍걸씨의 사업을 돕기 위해 관여했다는 의혹을 낳기에 충분한 증거라 할 수 있다.

특히 김홍걸씨와 유회장의 회동 한달 전인 2000년 6월 청와대 가족회의에서 김대통령 장남 김홍일 의원이 김홍걸씨의 사업 추진에 대해 "대통령 아들이 무슨 사업이냐"며 강력 반대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최씨의 권력암투설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고 있다 하겠다.

***옷로비 사건, 친정식구들로 인해 구설수**

이여사는 이미 99년 5월 '옷로비 사건'연루설로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이희호 여사와 사돈지간인 이신범 한나라당 의원은 이 여사가 입고 있던 옷을 찍은 20장의 사진을 증거물로 제시하며 "한 벌에 2천만원이 넘는 고가옷을 입고 다니고 있다"고 옷로비 사건 연루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세간에서는 이를 외국의 '부티크 스캔들'에 비유하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기도 했다. "쿠데타가 일어나면 남편들은 정권을 접수하고 아내들은 고급 의상실을 접수한다"는 개도국형 '여인천하'를 빗대어 풍자한 말이었다.

옷로비 사건은 가뜩이나 서먹하던 김대통령과 언론의 사이를 결정적으로 멀어지게 만든 사건이기도 했다.
옷로비 사건 발발 당시 러시아 방문중이던 김대통령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언론의 옷로비 의혹 보도를 악의적 보도로 규정하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 적잖은 물의를 빚었다.

이여사는 이밖에 조카인 이형택 예금보험공사 전무가 보물선 비리에 연루돼 구속된 것을 비롯해 조카 이영작교수가 경기은행 퇴출과 관련한 수뢰 혐의로 한 때 해외도피를 했는가 하면, 조카사위가 강원랜드 서울지사장을 맡고 있는 등 자신의 친정식구들과 관련한 크고작은 비리 의혹으로 세간의 구설수에 끊임없이 올라왔다.

***'사랑의 친구들' 90억원 후원금 모금**

평생을 여성과 소외계층의 권익을 위해 일해온 여성.사회운동가였던 이여사가 퍼스트 레이디가 된 후 가장 먼저 가진 직책은 결식아동을 돕기 위해 설립한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의 명예회장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아태재단처럼 '사랑의 친구들'의 후원금 성격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이희호 여사는 98년 '사랑의 친구들'이라는 사단법인을 만든 이래 2001년까지 90억원을 후원금으로 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대통령은 퇴임 후 아태재단으로 돌아가 재단을 직접 운영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으며 이희호 여사도 김대통령의 퇴임 이후 자신이 설립한 '사랑의 친구들'을 계속 운영하겠다며 애착을 보인다고 한다.

전임 퍼스트 레이디들도 거의 예외없이 청와대 재임시 공익성 재단을 만들어 사회봉사 활동을 해왔다. 고 육영수 여사의 육영재단 등이 대표적 예다. 퍼스트 레이디의 이같은 재단 설립에 대해선 긍정적 시각도 많다. 힘있는 자리에 있는 퍼스트 레이디가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나서줘야, 사회봉사에 인색한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 안방마님들도 그나마 사회봉사에 동참하는 계기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안방정치'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그런 대표적 예로 꼽히는 것이 이순자 여사의 경우다.

이순자 여사 역시 전두환 전대통령 재임중 '새 세대 심장재단'과 '새 세대 육영회'를 만들어 운영해 왔다. 각각 심장병 어린이지원, 유아교육 지원을 명분으로 하고 있었다. 88년 11월 열린 국회 5공화국 비리조사특별위원회의 청문회와 96년 전씨 수뢰 및 부정축재에 관한 검찰의 수사결과, 이순자씨는 81년 설립한 새 세대 육영회로 2백23억원, 새 세대 심장재단은 1백99억원을 찬조금 형식으로 모은 것으로 드러나 비판의 도마위에 올랐다.

***씁쓸한 뒤안길**

이 여사는 1922년 서울의 유복한 가정에서 의사의 딸로 태어나 41년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42년 이화여전에 들어갔으나 일제치하에서 학교운영이 중단되자 46년 서울대 사범대학에 다시 입학해 50년 졸업했다. 이여사는 54년 미국으로 건너가 58년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스카릿 대학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유학에서 돌아와 YWCA연합회 총무로 재직중이던 당시 김대통령은 부인과 사별한 후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야심찬 젊은 정치인'이었다. 이 때문에 이여사 주변에서 둘의 결혼에 대해 반대가 심했다. 청첩장도 돌리지 않고 이여사는 외삼촌집 뜰에서 친지와 지인들만으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이 네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16년간의 연금. 망명생활. 투옥 등을 겪을 때 항상 곁에 있었다.
두 사람은 62년 5월 결혼했으나 신혼 9일째부터 이 부부의 파란만장만 결혼생활이 전개되었다. 남편이 민주당 반혁명사건에 연루, 투옥된 것이다. 61년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대통령은 이여사와 재혼한 이후 3선 의원으로 71년 신민당 대선후보로 선출돼 거물정치인의 반열에 올라섰으나 박정희 전대통령의 정적이 되면서 납치-망명-투옥-연금으로 이어지는 고난의 길을 걷게된다.

김대통령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받고 있다는 전언을 접하고, 이여사는 몸서리치는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이여사는 유신의 어두운 장막이 드리워진 72년부터 김대통령이 신군부에 의해 사형언도를 받은 뒤 미국 망명길에 오르던 82년까지의 기간을 '외롭고도 잊혀진 곳에 있었던 세월'로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고난을 함께 겪은 부부 이야기는 가슴뭉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후 이 부부의 삶은 바라는대로 되지 않은 것같다. 반독재 민주투쟁의 영웅으로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대통령과 여성과 아동을 위한 사회운동가로 명성 높은 이희호여사의 씁쓸한 뒤안길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그저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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