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C.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의 미묘한 발언이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허바드 미국대사는 18일 오전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한국언론재단 초청강연에서 "미국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불안한 사람으로 보고 있는가"라는 패널리스트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현재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 가운데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 후보는 없다고 본다. 미국은 노무현 후보가 불안한 인물로 보여질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본다."
허바드 대사는 또 지난 4일 제임스 켈리 미국무부 동아태 담당차관보의 "올해 한국 대선에서 미국의 역할에 이의를 제기하고 한미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지도자가 등장할 수도 있다고 본다"한 발언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해명을 했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박정희 대통령이후 3김이 부상한 것처럼 DJ 이후에는 새로운 세력을 대표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언급한 게 아니겠는가?
켈리 차관보의 발언이 노후보를 지칭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대선은 전적으로 한국내 문제이다. 한국의 차기대통령이 남자가 되든 여자가 되든 새 대통령과 긴밀한 협조를 하겠다."
허바드 대사의 이같은 발언은 외형상 며칠 전 켈리 차관보의 발언이 국내에서 적잖은 파문을 불러일으킨 데 대한 해명으로 비친다. 켈리의 발언은 분명 내정간섭적 성격이 짙었기 때문이다.
이에 정가 일각에서는 허바드 대사의 이날 해명을 '노무현 후보의 실체 인정'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해석은 특히 여권 일각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허바드 대사의 이날 발언도 가만히 뜯어보면, 이 역시 미국정부의 묘한 압박성 뉴앙스가 담겨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보다 강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하버드 대사는 이날 '묘한 논법'을 전개했다.
우선 그는 "현재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 가운데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 후보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같은 전제 논리 하에서 "미국은 노무현 후보가 불안한 인물로 보여질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역으로 생각해 보면,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 후보는 안된다'는 의미로도 해석가능하다. 따라서 노무현 후보도 미국을 좋아해야 하며, 그럴 때에만 노후보를 불안한 인물로 보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의 메세지 전달로도 해석가능하다.
재미언론인 김민웅씨는 얼마 전 본지에 기고한 컬럼에서 "미국의 노무현 길들이기가 시작됐다"고 단언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이번 허바드 대사의 발언 역시 고도의 '노무현 길들이기'의 일환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과연 한국의 대선후보는 반드시 미국을 좋아해야 하는가.
만약 지금 국민적 저항에 직면한 미국의 F15 강매 압력 같은 부당한 요구에 대해 만약 한국의 대선후보가 한국민 편에 선다면, 미국은 이 후보를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 후보로 규정할 것인가.
허바드 대사의 이날 발언은 우리 정치권, 더 나아가 우리 국민들이 반대로 미국에게 물어야 할 중요한 화두를 던진 문제발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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