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이제 '포스트 김대중 시대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미처 내다보지 못한 '노무현 돌풍의 출현'으로 그간 '이회창 대세론'에 안주하다시피 했던 미국의 향후 대한정책 구상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며, 이로써 차기 정권에 대한 미국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보다 명확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 앞으로 전개될 것임을 뜻한다.
그 중심에는 자신이 원하는 세력의 옹립을 위한 대선 개입이라는, 현재의 한국정치 의식수준과 환경에서는 다소 무리한 정치공작 대신, 그에 비해 비용과 위험부담이 보다 적은 '노무현 길들이기 프로그램'이 기획, 추진될 것임이 예상되고 있다.
***포스트 김대중 시대의 불확실성 제거 노력**
지난 4월 4일 워싱턴의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행한 미 국무부 동아시아ㆍ태평양 담당 차관보 제임스 켈리의 한국 대선 관련 발언은, '노무현 돌풍의 장래'에 대한 미국의 관찰과 주의가 어떤 관심 아래 진행되고 있는지의 일단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민주주의의 예측 불가능한 발전궤도'라는 표현을 통해, 한국 대선의 결과에 따라 미국이 직면하게 될 지 모를 전혀 새로운 정치 시나리오에 대한 대비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그의 논지에는, 한반도 남쪽의 정세변화가 미국의 입장에 어떤 도전을 가해올 것인지에 대해 민감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부시정권의 긴장된 인식이 반영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 변화가 한반도 내부에 설치된 미국의 군사적 기반을 건드리지 말라는 메시지가 암시되어 있다.
외견상 문맥으로만 보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개혁의 열망을 향해 가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이를 전제로 대한정책의 골간을 차기 정권과의 긴밀한 협조아래 정리해나가겠다는 의지가 표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변화의 내면에 존재하는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이의 제기의 움직임, 그리고 그 결과에 따른 '한-미 관계의 재설정 가능성'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기본적으로 주한미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 경계선을 매우 분명하게 긋고 있다. 그는 북한이 한국과 미국에 중대한 위협이라고 전제하고, 지금까지 기정사실로 되어온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국의 차기정권이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평가하기를 요구하는 분위기를 그의 발언에 담은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제임스 켈리의 발언은 한국 내부의 정세변화가 최종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사안이 다름 아닌 미국 문제임을 새삼 일깨우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한국의 안보와 발전에 주한미군이 감당한 공헌'에 주목해야 함을 환기시키면서 향후의 한-미 관계의 기본은 여전히 이를 전제로 이루어져야 함을 확인해주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미국의 대한반도 군사전략의 근간에 대한 이의제기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한 셈인 그의 발언은 차기정권의 대미 노선에 대한 중대한 압박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도 미국 앞에 서면 작아지는가?**
노무현 진영으로서는 한국 정치/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미국의 이러한 메시지를 가볍게 여기고 외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길들이기 일차 작업의 신호가 올려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 진영의 대미 자주성의 정도가 어느 수준에 이를 것인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는 차원에서, '노무현도 미국 앞에 서면 작아지는가'의 질문의 대한 대답이 마련되어야 하는 대목이다.
그간 미국에 대한 반감과 자주의식이 적지 않게 고양되어온 상황에서, 노무현의 대미 자주성이 기대에 못 미치게 될 경우, 그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주도권을 민족적으로 장악해 가는 일에 중대한 결함을 가지게 된다. 미국 문제만 나오면 대체로 <패배주의적 발상>에 사로잡히고 있는 한국 정치권의 현실 속에서, 민족적 자존의 회복을 내세우다 미국이 때리면 도리어 대중의 지원을 받아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이것은 특히 대미 관계와 관련한 냉전세력의 공세에 다소 궁색하게 수세적 방어에 치우쳤던 그의 입장과 논리가 보다 진전된 지점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 노무현 역시 미국의 의사에 굴종적/굴욕적 처신을 하는 인물이 되고 말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도 내부의 냉전세력을 포함한 미국의 '노무현 길들이기 전략'에 대한 대응이 주도면밀하게 논의되고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을 내세운 발언을 함으로써 노무현은 주한미군 철수 논쟁의 창끝을 일단 피해가기는 했으나, 한반도 평화와 자주, 그리고 통일의 대계(大計)를 놓고 논의가 보다 정교해지게 될 경우, 여전히 이 입장을 일관해서 고수할 것인지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논의제기는 지금의 시점에서 다소 이른 감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과의 '종속적 동맹체제'가 민족문제 해결에 장애로 작용하는 상황이 연거푸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경험한 이상, 미국의 적대적 군사정책을 최일선에서 수행하는 기관의 존재를 그대로 두고 한반도의 전쟁상태를 완전하게 종식시키고 평화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안보에 대한 자신 나름의 새로운 구상도 없이 미국의 기존 패권전략을 '이의 없이' 수용하는 자세로서는 한반도 내부의 민족사적 전환기를 감당하는 중차대한 지도자의 지위를 유지하고 역량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주한미군 없는 한반도의 미래'를 장기적인 안목에서 설득력 있고, 계획성 있는 논리와 구상으로 정리해나가는 작업 없이는 노무현의 등장으로 기대해볼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한계는 너무도 분명해진다. 물론 이것은 노무현이 당장 정치적 불리함으로 작용할 주한미군 철수를 지금 주장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의 패권전략에 종속되지 않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전쟁 시스템을 평화체제로 교체해나가는 대국적 차원의 전략적 비전이 그에게 있는가의 문제가 시간이 지나면 필연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노무현 진영이 주한미군을 한반도 안보의 필수 불가결한 뇌관으로 이해하는 한, 냉전체제 극복의 민족전략은 미국의 패권전략에 부차적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고 한반도 남쪽이 미국의 군사기지로서의 위치를 가진 식민지적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막히고 만다. 이로써 미국의 '노무현 길들이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딜레마에 처한 미국의 세계전략**
그런데 현재 미국은 세계전략상의 딜레마에 처해 있다. 이것은 미국의 '노무현 길들이기'가 과거의 한국 정치에 대한 영향력과는 다른, 적지 않은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바로 이 한계로 생기고 있는 틈새가 노무현 진영의 대미 자주성을 보다 강력하게 기르고 다양하게 발휘할 수 있는 여지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즉, 우리 민족의 주체적인 역량 아래 변화를 도모하는 한반도의 상황에 미국이 도리어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어 가는 '미국 길들이기'가 김대중 이후의 시대를 위해 요구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임동원 특사 파견 이후 온기가 흐르고 있는 남북관계의 진전과, 이에 근거한 북한과 미국간의 관계 정상화의 과정이 이루어져 나가게 되면, 주한미군의 지위와 주둔 연장의 문제는 결국 제기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 오게 될 것은 누구의 눈에도 틀림없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영향권 행사의 범위가 우리의 결정에 달려 있도록 하는 <냉전역학의 역전>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노무현 진영의 대미 자주성이 이러한 각도에서 자신 있게 추구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보다 힘있게 전개될 수 있다면, 냉전시대의 주종관계를 극복하는 '한-미 관계의 재설정'은 가능해질 수 있다.
현재,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력 공세를 저지시키지 못하고 있는 미국은, 자신의 대 테러 전쟁의 논리가 보편화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미국 부시 정권은 테러에 대한 대응은 오로지 무기한의 군사행동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이를 실천에 옮겨오면서,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외교적 접근의 여지를 스스로 소멸시키고 말아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기로 치닫고 있는 중동 문제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중재역할의 가능성과 폭, 그리고 논리적 근거는 매우 취약해지고 있다. 이스라엘 샤론 총리가 미국의 철군 요구를 강경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도, 그 자신 역시 대 테러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부시 정권과 다를 바 없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스라엘의 샤론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반 아라파트의 제거가 평화의 시작이라고 인식하는 한편, 미국의 부시는 아라파트를 대화의 상대로 삼는 것이 평화적 해결의 전제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양자간의 대치는 간단치 않다. 이는 다시 말해, 상호 체제의 존중과 적대정책의 철회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부시의 기존 전쟁정책이 갖는 본질적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93년 오슬로 회의의 기본합의는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와 팔레스타인 국가성립 인정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주목하면, 중동사태의 위기는 미국 부시정권에게 향후 세계전략상의 기조를 지금처럼 유지해나가는 것의 모순을 일깨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즉, 최악의 적대적 상황에서도 대화 상대를 궁지에 몰면 도리어 그렇게 상대를 몰아댄 측이 세계여론의 비판의 표적이 되고 지도력에 손상을 입게 된다는 사실이다. 카터 정권 하에서의 안보 보좌관을 지낸 국제정치학자이자 강경파 전략가인 브레즈진스키마저 부시정권의 정책이 미국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비판할 정도로 미국 내 지배 엘리트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는 것은 그러한 현실을 보여주는 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상 군사주의 노선의 강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제약되지 않을 수 없고, 이를 직시하면서 대미정책상 우리의 행동반경을 넓혀나가는 지략이 요구되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주의 정책, 세계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어**
아무튼, 사태가 이렇게 되면서 부시정권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지원해왔다는 것으로, 중동지역의 거센 반발과 적대감에 직면해 있고, 이락에 대한 확전 시도는 더욱 어려운 환경에 몰리고 있다. 이것은 중동지역의 패권유지에 중대한 도전이 생긴 것을 의미하며, 그와 함께 앞서 언급했듯이 한반도의 정세를 군사주의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에 적지 않은 제동이 걸린 것을 말해 준다. 즉, 세계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무력도발을 위주로 한 행동방식을 미국 자신도 문제삼고 있는 마당에, 한반도 문제의 군사주의적 접근은 자가당착이 되고 마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미국의 대한반도 군사정책이 과거의 관성을 가지고 한반도에서 아무런 역사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수정 없이 그대로 관철되는 방식을 재검토해야 하는, 또는 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게 된다. 이 점을 주목할 때, 기존의 한-미 관계에 대한 이의 제기 내지는 새로운 방식의 관계 재정립이 요구됨을 미국에게 강력하게 설득하고 이것을 전환기에 처한 한국 사회의 중대한 주장의 하나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미국이 그 나마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면, 변화하고 있는 한반도 내부의 분위기에 미국 자신이 적응해오도록 압박을 가하는 작업이 된다고 하겠다. 즉, 아무리 초강대국이라고 하지만 오늘의 세계 현실을 염두에 두면, 미국 앞에서 패배주의적 위축감을 느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중동지역의 전황자체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마당에, 한반도에서조차 미국에 대한 적대적 상황이 조성되는 것은 실로 악몽이 된다.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가인 사우디와 이집트마저 반기를 들고 있는 조건은 미국에게 한반도의 군사적 근거지 유지가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 다가오게 되어 있다. 이것은 한국 내에 반미 감정이 일어나는 사태를 극력 회피하는 노력을 강화시키는 조건이자, 우리의 대미 협상력이 높아질 수 있는 전제가 되는 것이다. 이를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한, 미국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민족적으로 굴종의 한계에 갇히고 만다.
***대미 협상력 높아지고 있는 세계현실**
얼마 전 대한반도 정책의 과정에서, 전쟁정책을 한참 고조시켰다가 일단 전술적으로 후퇴한 부시정권은 물론 기본적으로 자신의 전쟁정책에 적극 협력할 세력의 등장을 바라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감지한다면 최소한 자신의 군사적 근거지 확보에 타격을 주지 않는 세력의 형성이 요구되는 입장이다. 이것은 결국, 미국의 입지가 생각보다 유리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만일 미국이 또다시 한반도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고 압박해 들어올 경우, 미국은 상당한 반발과 저항을 예상해야 하며 이로써 기존의 입지조차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도록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노무현 길들이기'가 아니라, '미국 길들이기'의 가닥이 잡힐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실로 미국은 현재 자신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여전히 강공의 반동적 폭력을 일방적으로 휘두를 태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한 나라'이며, 특히 부시정권의 경우 전쟁의지를 어떻게든 관철시키려는 제국주의적 패권국가의 면모가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현재 미국이 놓여 있는 세계전략상의 틈새를 치밀하게 파고들어 우리의 입지를 최대한 확보해나가는 일이 우리민족의 생존에 중차대한 과제임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근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선 것처럼 보이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언제 어떤 식으로 다시 공세적 기세를 드러내게 될 것인지는 사뭇 경계되는 바이다. 따라서 이러한 미국의 폭력적 군사주의에 우리가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하는 견고한 준비와 대응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지적했듯이 미국이 처하고 있는 '역설', 다시 말해서 패권주의를 밀고 나가면 나갈수록 도리어 미국의 고립이 자초되는 상황을 주시하고 이를 활용하는데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 정치의 요동치는 변화 속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바의 하나는, 외세의 지배장치 역시 하나씩 해체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해체의 공간에 민족자존을 지켜내고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확립하는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 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땅의 평화와 자주, 그리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면서 민족 번영과 동북아시아의 활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내는 저력이 될 수 있다.
이제 노무현의 승리가 거의 굳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선 이후 그의 방미가 만일 계획된다면 그 과정이 이때까지의 한국 정치지도자들이 예외 없이 보였던 저자세를 취하면서 '미국의 마음에 들기 식'이 아니라, 미국인들 자신이 그런 상대를 만나면 결코 가볍게 보지 않은, '우호적이나 결코 만만치 않은(friendly but tough)' 상대임을 인식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은 자신이 길들이고 있는 식민지형 정치인들을 '우리가 키운 애들(our boys)'이라면서 속으로 경멸하는 반면, 미국의 입김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터프'한 상대를 보다 진지하고 신중하게 대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미국에 함부로 머리를 조아릴 일이 아니다.
미국의 '노무현 길들이기'에 대한 대응은 그런 의미에서 대미 외교의 새로운 스타일과 자세를 창출하는 매우 중요한 갈림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세계정세 변화는 대응하기에 따라, 대미 관계에 있어서 우리에게 나름대로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음을 여유를 가지고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이를 뒷받침할 만큼 우리 사회 내부에 대미 자주성의 역량 또한 상당히 자랐음을 확신할 일이다. 물론 너무 낙관한 일은 아니나 이러한 노력이, 지난 시기 동안 우리의 정치를 지배해왔던 패배주의적이고 종속적인 대미관계의 대세적 틀을 깨고 민족의 활로를 파격적으로 뚫어내는 의미 있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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