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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캐슬>, 학력자본의 위용을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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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캐슬>, 학력자본의 위용을 보여주다

[민미연 포럼] '빨리빨리' 자본주의가 낳은 교육 지옥

드라마 <스카이(SKY) 캐슬>이 종영되었다. 지난 1일 마지막 회는 23퍼센트라는 종편 역사상 유례없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드라마는 상류층의 사교육 전쟁을 둘러싼 갈등을 보여주었다. 드라마의 이야기, 배우의 연기력, 사교육 열풍 등 대중적 관심이 맞아떨어진 작품이었다. 몰입도가 굉장해서 보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드라마는 한국인에게 역병처럼 번져 있는 '성공 지상주의'와 '물신주의'를 잘 묘사했다. 그러나 마지막은 조금 아쉬웠다. 학생이 학교를 떠나고 부모가 사교육을 포기하는 간편한 방법으로 갈등이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사교육 전쟁은 개인적 선택의 문제였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이상을 말하지 못했다. 아마도 사교육을 바꾸기 위해서는 한국의 사회적 질서 전체와 갈등해야 한다는 무거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왜 그토록 물질적 성공에 매진할까? 행복하기 위해 물질적 풍요가 필요하고, 이것을 위해서는 사회에서의 성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공식에 대해서 자동으로 반응할 뿐 공식의 원래 목표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 공식의 처음은 '행복하기 위해서'로 시작한다. 하지만 어느덧 '행복'이라는 시작은 사라지고,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 성공만 남았다. 이런 과정은 어떻게 발생했을까? 마르크스는 책 <자본론>에서 노동의 산물인 상품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신비화되는 현상을 '물신화' '물신주의'라고 불렀다. 생활의 수단인 물건이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신비화되어 버린다. 폴리네시안들이 물건에 '하우'라는 주술적 힘이 있다고 믿었던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생활의 수단인 상품이, 교환가치의 척도인 화폐가 물신(物神)으로 등극한다. 수단이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행복을 위한 풍요, 풍요를 위한 성공이 변해서 물질적 성공만이 삶에서 추구해야 할 전부가 되어 버렸다. 이런 물신화는 자본주의 하에서 구조화된다.

▲ 종영된 드라마 <스카이(SKY) 캐슬>의 한 장면. ⓒJTBC

조선을 여행한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책에, 이구동성으로 조선인의 느릿느릿하고 게으른 천성을 적었다. 그러나 지금은 외국인이 가장 먼저 습득하는 단어가 '빨리빨리'이다. '느릿느릿'에서 '빨리'로 한국인의 심성이 변하는 과정에는 자본주의의 도입이 있었다. 속도와 완급, 복지를 절충해가면서 도입한 자본주의가 아니었다. 식민지였기에 자본주의는 더욱 야만적이었다. 해방 이후 본격화한 경제 발전은 공동체를 해체하는 자본주의적 확산을 의미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 발전 역시 공산주의에 대한 사전 예방적 의미의 작업이었다. 우리 내부의 행복 증진이 아니라, 체제 대결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경제 발전이었다. 6·70년대 질주하던 북한 경제를 따라잡기 위해 남한은 수출에 사활을 걸었다.

세계 경제에서 남한이 잘할 수 있는 것은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대량 양산 체제였다. 이 체제는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 내부의 국외자로 몰아갔다. 대량 양산 시스템은 노동자에 대한 혹독한 관리를 수반했다. 두발조차 감시 대상이었다. 그리고 조회시간에는 두들겨 맞았다. 이를 감수하는 사람에게는 그나마 체제의 잉여(剩餘)에 동참할 수 있었다. 이마저도 힘든 이들은 거리를 떠돌았다. 체제에 동원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기다린 것은 복지원이나 감호소였다. 교도소에서 징역형을 마친 수인들은 다시 감호소로 이송되었다. 죗값을 치른 사람들을 상대로 한 국가 범죄였다. 청송보호감호소 사람들 중 80퍼센트가 단순 절도범들이었다. 단순 절도로 곱징역을 살렸다. 왜? 이들의 죄질이 극악해서가 아니었다.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은 이렇게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공개 처형이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적응은 모두의 강박이 되었다.

개인의 강박증은 인지치료 등의 방법으로 치료될 수 있다. 그런데 개인들의 강박이 특정 개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동시대 대다수가 가진 인격적 특성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대다수가 공유한 신경증은 이미 개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징후이기 때문이다. 고도성장이 종료된 1990년대 이후 미국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향정신성 의약품 즉 정신과 약을 먹는 장면이 곧잘 등장한다. 왜 그럴까?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개인의 경쟁을 강요한다. 개인들은 생존 경쟁에 내몰린다. 모두가 스펙 쌓기에 몰두하지만, 어차피 스펙은 소수의 차지다. 성장이 지속될 때 개인은 아무리 어려워도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면서 견딘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미래가 오기 전에 고도성장은 멈춘다. 개인들을 경쟁으로 몰아넣는 시스템은 그대로이지만, 인내하게끔 만들어준 환상은 사라진다. 경쟁 문화로 인해 인간으로부터 충족감을 느끼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경제 성장을 위해 도입된 경쟁시스템이지만, 성장이 지나가도 시스템은 남아서 사람들을 괴롭힌다. 결국 사람들은 고립된 채 공허함을 경험한다. 공허를 버티기 위한 방법으로 육체적 탐닉에 빠진다. 환상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먹는 문화에 대한 관심과 성적 폭주다. 서구가 갔던 과정을 우리도 그대로 가고 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장을 높이는 방법으로? 고도 산업선진국에서 높은 성장이 지속될 수만 있다면, 나름의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가능하다 해도 성장은 경쟁적 환경을 더욱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마련이어서 한계가 있다. 정신적 혁명을 통해서? 한국에서 종교는 차고 넘친다.

남은 유일한 방법은 승자가 대부분을 가져가는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뿐이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피케티가 주도하는 '세계불평등 데이터베이스(WID.world)'에 따르면, 2016년 현재 한국의 소득 상위 10퍼센트 계층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3.3퍼센트로 선진국 중에서는 미국 다음으로 소득불평등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32.6퍼센트, 2014년) 등 유럽 국가가 30퍼센트대 초중반에 머무는 것과 대조적이다. 자산의 경우 불평등도가 더 심해 한국 자산 하위 50퍼센트 계층이 소유하는 자산 비중은 1퍼센트대에 불과했다. 이는 프랑스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각종 데이터를 살펴봐도 한국의 소득불평등·자산불평등은 매우 심각한 편이다. 다만 가구별 불평등도에서 완화되지만, 이것은 가난한 가계의 경우 모든 가족 구성원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뛰어들어서다.

가난한 가정은 왜 가난할까? 피케티의 한국 파트너였던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 원인에 대해서 "한국의 소득 상위 10%의 소득집중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임금노동자 간 양극화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소득격차는 시장에서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로부터 기인한다. 그런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많은 경우 학력자본에서 나온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학력자본은 개인 간 능력 격차가 아닌, 가구의 소득 격차와 연동된다. 입시 진학에서 학생들이 의존하는 것은 공교육이 아니라 사교육이다. 결국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투자해 자신의 신분을 교육을 통해 물려주는 것이 현실이다. <스카이(SKY) 캐슬>은 이를 보여줬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경쟁을 강요하고 승자와 패자를 낳는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부의 불평등이 모두가 용인하는 수준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아니, 불평등이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더라도 해소될 가능성이라도 있어야만 사람들은 견뎌낸다. 오늘 가난하더라도 나의 자식은 가난하지 않을 희망이 있어야 사람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수천 년 전 이스라엘은 50년마다 희년(禧年)을 가졌다. 부채가 탕감되었고 노예는 풀려났다.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희망이 있는가? 드라마 <스카이(SKY) 캐슬>이 보여준 암담한 현실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법과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대부분 'SKY 캐슬'에 살기 때문이다. 교육이 신분 세습의 도구로 작동하는 현재의 모습으로는 한국 자본주의의 건강성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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