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매출액이 무려 6조원을 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한국마사회가 마침내 도마위에 올랐다.
동아일보의 20일자 특종보도를 통해 김대중 정부 출범직후인 98년 여권 실세들이 마사회 장악을 위해 얼마나 치밀한 숙정작업을 벌였는가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DJ 측근세력들이 보인 행태도 개탄스럽기 짝이 없으나, 보다 큰 의문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이다.
정권교체에 따른 단순한 물갈이 작업이었나. 아니면 더 큰 노림수가 깔린 작업이었나.
왜 역대정권 위정자들은 집권후 예외없이 마사회에 자신의 핵심측근들을 배치시켜왔나.
마사회가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99년 정리해고는 '정치숙정'**
동아일보가 오영우 당시 마사회장 비서 김형아씨로부터 입수해 공개한 '구조조정관련 일정 등 보고'(98년 9월 작성)라는 제목의 문건을 보면, 정권교체후 마사회를 장악한 여권 실세들이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마사회 내에서 구여권 세력들을 숙정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한 밀실작업을 벌였는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 문건은 정리해고 대상 유형을 10가지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정치색'이 짙은 항목은 3가지이다.
첫 번째는 "지역 편가르기와 직원간 위화감 조성에 앞장 서고 아직도 반성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 자"이다.
두 번째는 "과거정권의 여러 단체로부터 추천받아 정치권 줄대기에만 급급한 자"이다.
세 번째는 "조직내 기밀을 외부기관에 누설하여 조직에 불이익을 초래한 자"이다.
이같은 기준에 따라 1백1명의 살생부가 만들어졌다.
1백1명 가운데에는 순수한 경영적 측면에서 무능력자 또는 비리연루자로 분류돼 정리대상자로 오른 이들도 적잖다.
그러나 그 못지 않게 정치적 잣대로 숙정대상에 오른 이들이 많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그런 몇몇 예를 들어보자.
김XX(마주): 변호사 호남출신으로 반김대중 이회창지지자
유XX(조교보): 철저한 반김대중, 편향주의자, 반개혁인물
지XX(조교사): 박XX추종자, 김대중대통령 비난, 반개혁인물
김XX(조교사): 김대중대통령을 비난, 주제넘는 과소비
강XX(총무과 수송부): 특정지역 탄압주도 인물, 반개혁성향
김XX(총무과 수송부): 전기득권층과 깊은 유착, 지역편향자
장XX(행정전산팀): 반개혁인물 이회창지지자
이XX(행정전산팀): 반개혁인물 이회창지지자
이XX(행정전산팀): 반개혁인물 이회창지지자
윤XX(제주보안계장): 지역편향자 특정지역인 탄압 주도
김XX(방송팀계장): 전기득세력 추종자, 위험한 인물
김XX(선릉지점장): 특정지역출신 인사차별주동자, 지역편향주의자
김XX(부평지점장): 특정지역출신 탄압주동자, 입사청탁비리
이들 이른바 반개혁인사들은 99년 1월 모두 정리해고됐다.
***DJ측근들로 마사회 수뇌부 장악**
이같은 정치적 잣대마저도 '개혁'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불가피한 작업이었다고 당사자들이 주장하면, 일단 그렇다고 인정하자.
그러면 과연 숙정후 마사회를 장악한 인물들이 개혁을 해왔는가가 중요하다.
유감스럽게도 그후 마사회가 보여준 모습은 개혁과 거리가 멀다.
DJ정부 출범직후인 98년 3월 마사회장을 맡아 문제의 구조조정을 단행한 인물은 오영우. 전북 군산출신인 그는 96년 10월 육군대장으로 예편한 뒤 97년 대선때 국민회의에 입당, 부총재를 맡았던 인물이다. 현재는 대통령 직속기구인 21세기 국정자문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오회장 취임 한달 뒤인 98년 4월 마사회 상임감사에 취임한 황용배는 충남 공주 출신이나, 김대통령과 같은 교회를 다닌 것을 인연으로 96년 아태재단 후원회 사무처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98년 5월 마사회 부회장에 임명된 이경배는 국민회의 중앙당후원회 사무총장 출신으로 92년 대선때 DJ비서실 차장을 거쳐 96년 15대총선때 국민회의 전국구후보로 출마했던 인물이다.
이밖에 전남 함평 출신으로 98년 4월 사업이사에 임명된 김태규는 87년 평민당 시절부터 당직을 맡아온 당료출신인 등 마사회 핵심요직은 빠짐없이 DJ측근세력들이 장악했다.
***DJ처조카가 대표인 한미문화재단에 집중지원**
이들은 그후 99년 1월 정리해고를 시작으로 마사회내 이른바 '반개혁세력'들을 몰아내고 조직을 틀어쥐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사회의 풍성한 자금을 바탕으로 DJ세력들에 대한 대대적 지원을 펼쳤다.
그런 대표적 예가 이른바 '기부금 지원'이다.
현행 관련규정은 마사회가 여당 출신 의원이나 위원장이 대표로 있는 단체에 1년에 한곳, 1회에 한해 기부금을 지원토록 하고 있다.
역대 정권이 마사회를 정치성 활동자금의 공급통로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대표적 독소조항이다.
지난해 9월13일 국정감사때 마사회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이같은 규정에 따라 99년이래 마사회는 해마다 평균 1백억원씩을 기부금으로 사용했는데 이들 기부금의 상당부분이 여권인사들의 대표로 있는 단체로 흘러들어갔다.
99년의 경우 민화협(한광옥)에 5천만원을 비롯해 대한어린이운동발상기념탑 건립위(김상현) 2천만원, 한국고인돌선돌협회(유인학) 2천2백만원, 서대문형무소 민족문화예술(김상현) 2천만원, 남북 농업발전협력민간연대(이재정) 2천만원,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협의회(서영훈) 1천만원, 장문원(이철용) 1천만원, 한민족아리랑협회(한완상) 1천만원 등이다.
2000년의 경우 한미문화재단(이영작) 1억원, 대한산악연맹(김상현) 5천만원, 민화협(한광옥) 3천만원, 해외한민족연구소(손세일) 2천만원, 통일맞이(이재정) 2천만원 등이다.(2천만원 미만은 생략)
2001년에는 7월말까지 남북농업발전협력민간연대(이재정) 4천만원, 입법정책연구회(조홍규) 4천만원, 부산아태장애인경기대회(유재건) 2천만원, 한미문화재단(이영작) 1천만원, 민화협(한완상) 1천만원 등이다.
이들 기부금 내역을 보면 역대정권과 달리 남북협력사업에 많은 지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남북협력이 DJ정부의 주요 국정목표중 하나였으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몇몇 대목은 그렇지 않다.
그런 대표적 예가 이영작 한양대 석좌교수가 대표로 있는 한미문화재단에 대한 지원이다.
마사회는 2000년과 2001년 두해 동안에 한미문화재단에 1억1천만원의 기부금을 냈다. 지원한 단체들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다.
한미문화재단은 어떤 곳인가.
한미문화재단의 이사장은 김대통령의 처조카인 이영작 한양대 석좌교수다. 이교수는 이희호 여사의 두번째 오라버니인 이경호씨의 장남으로, 지난 83년 김대통령이 미국에 건너가 워싱턴에 인권문제연구소를 설립할 때 이사로 참여한 이래 지난 20년간 김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다. 이교수는 지난 99년 2월 한양대 석좌교수 자격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뒤 20년만에 영구귀국했다. 귀국후 그가 설립한 단체가 다름아닌 한미문화재단인 것이다.
서울시청앞 P호텔에 위치한 한미문화재단은 지난해말 박지원 현 청와대 정책특보가 잠시 야인생활을 할 때 박특보에게 개인사무실을 제공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곳이다.
이교수는 한미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호남,충청,강원이 손을 잡는 '영남포위론'을 주장하며 이인제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같은 상당히 정치성이 짙은 한미문화재단의 주요 돈줄중 하나가 마사회였던 것이다.
***진승현게이트, 이용호게이트에도 깊게 연루**
마사회는 진승현게이트, 이용호게이트 등 정경유착 스캔들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진승현게이트를 수사하던 검찰은 지난해 12월13일 문제의 황용배 전 마사회 상임감사를 뇌물수수혐의로 구속했다. 주가조작으로 구속위기에 몰린 진승현 G&G 회장의 구명운동을 해주는 대가로 2억5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황용배는 이에 앞서 99년 12월 옷로비 의혹사건을 수사중이던 최병모 특별검사팀으로부터 소환조사를 받기도 했던 인물이다.
당시 그는 교회 관계자들로부터 신동아그룹 전회장 부인 이형자씨의 부탁을 듣고 이희호여사를 만나 "최회장은 교계에서 큰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 그런 분이 외화도피를 하지 않았을 테니 선처해달라"고 말했다고 진술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황씨는 이처럼 청와대 안방을 들락거릴 수 있을 정도로, 김대통령 가족과 대단히 친분이 두터운 인물로 유명하다. 교회장로인 그는 대통령 가족과 서울 모교회를 같이 다닌 인연으로 70년대부터 집사처럼 김대통령 가족을 도왔으며, 96년에는 아태재단 후원회 사무처장을 맡아 김대통령의 당선에 적잖은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사회는 이용호게이트를 수사중인 차정일 특검의 주요 수사대상이기도 하다.
그런 대표적 예가 이용호가 대주주인 리빙 TV에게 한푼도 받지 않고 지난해 1월 넘긴 경마중계권 의혹이다.
이용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경마중계권을 따냄으로써 단번에 70억원대의 리빙 TV 주가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
문제는 이용호가 경마중계권을 무상으로 따냈으며, 그후에도 중계권료조차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의혹은 국회 문화관광위가 열릴 때마다 야당의원들이 제기하는 핵심 의혹이었다.
지난해 9월27일 문화관광위의 방송위원회 국정감사때 신영균 한나라당 의원은 "마사회가 중게권료를 무상으로 준 것부터가 납득이 안간다"며 "더구나 경마처럼 사행성을 조장하는 방송은 방송법규에 위반되는 데도 방송위가 묵인 것은 압력과 청탁을 받은 게 아니냐"고 따졌다.
심규철 한나라당 의원도 "사행성 조장 우려가 있는 사업에 대해선 지상파의 경우 전광판 광고도 불허하면서 리빙TV에 경마중계를 허용한 경위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같은 비판에 대한 방송위의 답변은 "시세차익, 중계권료 문제는 방송위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경마방송도 꾸준한 지도로 사행적 내용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진실이 아니다. 리빙TV의 경마방송이후 경마장이 아닌 사설장소에서 조직폭력배들이 개입한 수백억원대 경마도박 사건이 잇따라 적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주로 활동을 끝내고 검사로 수사자료를 이송할 예정인 차정일 특검은 리빙TV와 마사회의 부패 커넥션을 검찰이 핵심적으로 파헤쳐야할 의혹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마사회와의 커넥션을 깰 수 있는 정권이 출범할 것인가**
마사회는 지난해 총 6조6백85억원의 매출과 3천8백43억원의 세전 수익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매출액을 보면 무려 전년대비 29.6%의 급신장이다. 여기다가 현재 부산에 건설중인 경마장이 2004년 완공되면 매출규모는 몇년내로 1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말 그대로의 황금거위이다.
그런만큼 앞으로도 마사회를 둘러싼 정치권의 개입은 계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마사회 비리 가운데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리라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 관측이다.
마사회와의 비리 커넥션을 과연 단절할 수 있는 집권세력이 나타날 것인지. 향후 정권의 도덕성을 잴 수 있는 바로미터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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