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건강한 식사'(healthy eating)를 하는 것이 좋다. '건강한 식사'란, 패스트푸드나 탄산음료 같은 몸에 해로운 음식을 삼가고 대신에 과일과 채소, 유기농 식품 등을 위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청소년 시기의 건강은 남은 생애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 시기에 건강한 식습관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학교와 보건소에서 학생들의 식사 행태 개선을 위한 영양교육과 여러 지원 사업을 벌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 '청소년 건강행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에 비해 패스트푸드 섭취는 늘어나고 과일 섭취는 줄어드는 등 청소년들의 식습관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관련 기사 : 주 3회 이상 패스트푸드 먹는 청소년 21.4%…과일섭취 ↓) 아마도 학생들이 잠깐 편의점에 들려 즉석식품 등으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현상을 청소년 집단 전체의 공통된 문제로 여기는 것은 곤란하다. 가정의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건강한 식사에 대한 접근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소득이 낮으면 신선한 제철 과일과 채소를 비롯하여 다양한 식품을 풍족하게 구비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밖에 없다. 실제로 한 국내 조사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이 주관적으로 인지하는 경제 수준이 높을수록 몸에 좋은 음식을 섭취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논문 바로 가기 : 청소년의 인구·사회적 요인이 식사 및 식품섭취빈도에 미치는 영향).
건강하지 못한 식생활은 아무래도 사회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경제적 제약이 따르는 경우, 청소년들에게 건강한 식생활에 대해 열심히 교육해도 기대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보건 교육이 단지 효과가 없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식사에 대한 일종의 도덕적 잣대를 내면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건강한 식습관은 올바름과 자제력을, 불건강한 식습관은 게으름과 무책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다. 이는 결국 경제적 제약 때문에 건강한 식생활을 실천하기 어려운 청소년들을 도덕적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이들의 사회적 정체성과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심층적 분석이 보여주었듯, 음식은 서로 다른 사회계급을 구별짓는 문화적 수단이기도 하다. '건강한 식사' 역시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표식이 될 수 있다. 보건영양학적 지식은 도덕적 정당성의 판단기준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즉 상위 계층은 더욱 철저한 건강 식사를 통해 하위 계층과의 문화적 차이를 확연히 드러냄과 동시에 도덕적 우월감까지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식생활을 둘러싼 계급 구별 짓기와 도덕적 의미 부여가 작동할까? 이와 관련하여 최근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Social Science & Medicine)>에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이 실렸다.(☞논문 바로 가기 :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의 가치를 결정한다 : 건강식사, 도덕 및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한 청소년들의 믿음)
연구진은 미국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라 청소년들이 자신의 가족과 친구의 식사행태를 어떻게 주관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북부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12~19세 청소년 74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 조사를 실시했다. 청소년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부모의 학력과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상·중·하 세 범주로 분류했다. 인터뷰에서는 친구의 식습관이 어떠한지, 친구의 가족과 자기 가족의 식사행태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어떻게 식사를 할 것인지 등을 질문하였다. 이렇게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질적 내용분석을 수행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
먼저 대다수 청소년은 주류 건강 식사 담론에 동의하고 있었다. 즉, 자신의 실제 식습관과 상관없이 건강 식사를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청소년 대다수는 부유함과 건강 식사와의 상관성에 대해서 잘 인식하고 있었다. 즉 건강식품을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이 식습관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고 믿고 있었다. 실제로 자기 가족이 건강한 식사를 하고 있다고 답변한 비율은 상위계층 91%(21/23명), 중위계층 70%(16/23명), 하위계층 32%(7/22명) 순으로 나타났다. 중상위계층 청소년들은 자기 가족이 덜 부유한 가족보다 더 건강한 식사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하위계층 청소년들은 자기 가족의 식사행태가 상위 계층에 비해 덜 건강하고 더 나아가 열등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한편 상위계층 청소년의 대부분은 '건강한 식사'가 윤리적이라는 데 동의했다. 이들은 불건강한 음식의 부도덕성을 언급하면서 자기 가족 식사행태의 도덕적 우위를 강조했다. 또 가난한 이들에게는 건강식품을 소비할 여력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식사행태가 지식과 자제력 부족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었다. 즉 하위계층 또래들의 불건강한 식사를 인격적 결함과 연결하면서, 그들을 게으르고 부주의한 존재로 규정하며 자신들과 구별 짓고 있었다.
반면에 많은 하위계층 청소년들은 자기 가족의 식사행태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면서 부유한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의 감정을 표현했다. 이들 역시 스스로 자기 가족의 식습관에 도덕적 결함이 있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일부 하위계층 청소년들(7/22명)은 이러한 기존 담론에 저항하며 새로운 대안적 이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들은 건강 식사를 사치스럽고 엘리트주의적이며 속물적인 것으로 재프레이밍하면서 건강 식사를 하는 친구들을 '괴짜'로 묘사했다. 그러면서 자기 가족의 음식 선택이 더 실용적이라고 주장했다. 즉 건강식사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함과 동시에 자기 가족 식습관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주류 건강 식사 담론을 전복하고 자신의 가치와 품위를 되찾고자 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건강한 식사'가 청소년들에게 단지 영양학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도덕적 측면에서 하나의 중요한 '실천'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즉 건강 식사에 대한 청소년들의 신념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이면서 도덕적 가치판단의 규범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건강한 식사'에 대한 도덕적 요구가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열등감과 초라함, 수치심을 안겨준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 사회와 미국 사회 사이에는 커다란 사회경제적,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웰빙 열풍 속에서 '건강한 식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고 청소년기 식습관 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두 나라가 다르지 않다. 향후 우리 사회에서도 건강정책의 기획이나 캠페인, 보건교육 과정에서 바람직한 건강행동에 지나친 도덕적 가치부여를 함으로써 이미 선택의 기회가 제한된 청소년들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와 섬세함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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