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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국 경제대통령' 원자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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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국 경제대통령' 원자바오

5월 방한 예정, 재계 대책마련 분주

'21세기 주식회사 중국' 을 이끌어나갈 중국의 원자바오(60. 溫家寶) 부총리가 오는 5월 한국을 방문한다.
국내 재계에서는 벌써부터 원자바오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그야말로 향후 10~20년간 중국을 이끌 경제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과연 원자바오는 어떤 인물인가.
홍콩의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FEER) 최신호(3.14)가 다룬 원자바오의 전모를 소개한다.

*** 주총리의 전투적 카리스마와는 매우 다른 부드러움 **

2003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5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주룽지(朱鎔基) 현 총리의 후임자는 오는 11월 제16기 전국대표대회(중국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확정된다. 주총리의 후임자가 다름아닌 원자바오인 것이다.

중국 관측통들은 차기 권력구도에서 장쩌민 주석의 뒤를 이어 당 총서기가 될 것이 확실한 후진타오(胡錦濤) 부주석과 쩡칭훙(曾慶紅) 당 조직부장이 정치.외교를 책임맡고, 경제는 원자바오와 다이샹룽(戴相龍) 현 인민은행장이 분담해 맡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주룽지(朱鎔基)총리는 평소 "경제를 믿고 맡길 사람은 원(溫)과 다이(戴)밖에 없다"고 공공연히 말할 만큼 원 부총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주총리는 차기 총리 자리를 둘러싸고 한때 원자바오와 우방궈(61.吳邦國) 부총리간에 치열한 경합이 붙자 "98년 이후 국영기업 체제개편을 잘못한 우방궈 부총리가 총리후계자가 된다면 내 방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위협할 정도로 원자바오 부총리를 강력하게 밀었다.

그러나 FEER에 따르면, "원자바오는 주룽지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지만 주총리와는 매우 다른 스타일의 리더십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FEER지는 "원 부총리는 농업, 빈곤퇴치, 금융, 환경 등 당의 현안과 관련해 남다른 능력을 발휘해 왔다"고 말한다.
한 서방 외교관은 "원 부총리는 사람들을 협박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으며 법치를 외치면서 독재자처럼 행동하는 모순이 중국사회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고 주총리와 원자바오를 비교했다.
"원자바오가 총리가 된다면 뻑하면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광경을 보기 힘들 것이며 보다 합의에 근거한 리더십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이 외교관은 덧붙였다.

주총리에 대해 존경을 표하는 중국의 한 금융담당 기자도 "주총리의 카리스마 때문에 정책의 많은 문제점들이 거론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비판은 주총리에게 흔한 것이다.

반면 원자바오는 조용한 중재자로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명수이고,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좋아하며 하급자들이 보는 앞에서 상급자를 질책하지 않는 성품으로 알려졌다. 이는 차기주석으로 내정된 후진타오과 비슷한 면모이다.

반면 주룽지 총리는 매우 전투적인 스타일이다. 지난 4년간 중국경제를 이끌었던 주총리의 리더십에 대해 관료사회와 경제계에서는 대체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다른 평가도 존재한다.

***원자바오는 천안문사태때 온건파 노선 지지**

FEER은 "새로운 총리에게는 해외투자가들의 신뢰를 이끌어내어 해외직접투자 최대선호국으로 중국을 지켜내는 과업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면서 "중국의 엘리트들도 보다 부드러운 스타일의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원자바오는 예정에 없던 장소에서 일정에 없는 사람들과 만나는 등 보다 현장에 가깝게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가 현안을 직접 다루지 않고 관료들이 통계수치로 가득찬 보고서를 큰소리로 읽어대는 기존의 형식을 부드럽게 바꾼 것은 유명한 일화다.
지난해 11월 상시성 시장단 모임에서 "시장이라면 자기 관할 현황에 대해 즉석에서 20분 정도 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면서 회의를 시작하는 바람에 첫번째 보고를 하게 된 시장은 바들바들 떨면서 진땀을 뺐다고 한다.

원 부총리는 해박한 경제 지식과 정연한 논리, 말솜씨가 돋보이는 전형적인 테크노크라트 출신이다.
'21세기초 중국의 청사진'이라는 '국민경제 및 사회발전 제10차 5개년 계획' 의 초안 작업을 만드느라 하루 14시간씩 일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에 중국인들의 기대는 자못 크다.

그러나 FEER지는 천안문 사태와 관련해 원자바오에게 한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고 보도했다.
"자오쯔양(趙紫陽)의 온건노선을 따른 원자바오가 이때 입은 정치적 타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89년 5월19일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학생을 만나는 자오쯔양 총서기 옆에 원자바오가 서있는 사진 한 장은 그의 정치적 성향을 언급할 때 받드시 거론된다. 천안문 사태에 대해 온건노선을 주장했던 자오쯔양은 며칠 뒤 숙청되었다.

***원자바오의 별명은 '3대 비서'**

42년 톈진(天津) 출신인 원자바오는 65년 베이징 지질학원 광산과를 졸업한 뒤 간쑤(甘肅)성 오지에서 지질전문가로 일하다가 82년 국무원 지질광산부 부부장으로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

44세에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의 비서실장 격인 중앙판공실 주임으로 발탁된 이래 자오쯔양(趙紫陽), 장쩌민(江澤民) 등 3인의 총서기를 모셨기 때문에 '3대(代)비서'란 별명이 붙었다.

원자바오는 비효율, 탈세, 통계조작 등 주 총리를 괴롭혔던 고질적 폐해에 대해 외롭게 투쟁하지도 않았다. 홍수조절용 댐에서 백화점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건설사업에 주총리처럼 앞장서지도 않았다.

그러나 원자바오는 당 최고지도부의 일원으로 17년간 일했으며, 금융과 농업 정책을 사실상 진두지휘해 왔다.
재미난 것은 원자바오라는 이름 중 바오(寶)는 '배부르다'는 뜻의 중국어 바오(飽)와 발음이 같아 '배불리 먹고 살라'는 부모의 염원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농업정책 전문가가 강력한 총리 후보라는 것은 농촌경제침체가 중국의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제와 관련한 주요결정과 전체적인 방향설정을 공산당이 주도하고 총리는 이를 집행할 뿐이라는 점에서 누가 차기 총리가 되건 중국의 경제를 이끄는 데에 총리의 한계가 있다.

다만 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멤버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있다. 리펑 전총리는 7인으로 구성된 상무위원회의 2인자다. 주룽지가 총리가 되었을 때 그는 서열 3위였다.
FEER지는 "주총리 후계자도 서열 3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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