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의 흥망' 등의 저서로 유명한 예일대의 폴 케네디 교수가 3일 영국의 주간 옵서버지에 기고한 '미국은 길을 잃었나?'는 칼럼이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한국등 과거 미국의 우방이었던 지역에서까지 급증하는 '반미감정'의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 부시정부에게 '권력의 오만함'에서 벗어나라는 충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케네디교수의 지적은 아직 미국내에 양심적 시민의식이 현존하며, 그 결과 부시정부의 전횡이 계속되기란 힘들 것이라는 가능성을 읽게 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읽어봄직한 글이다.
이 글의 전문을 소개한다. 편집자
***신이 선물한 지구를 미국인들이 염치없이 낭비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미국을 증오하는가. 초강대국 미국이 비전을 잃은 리더십에 대해 전세계가 우려하는 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내가 얼마전에 참석했던 한 심포지엄에서는 한 환경운동가가 "미국인들은 신이 선물한 지구를 염치없이 낭비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거친 표현이기는 하나 대체로 사실이다. 미국인은 전세계 인구의 5%에도 못미친다. 그러나 연간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석유 27%를 소비하고, 세계총생산의 거의 30%를 생산하고 소비한다.
게다가 전세계 국방비 지출 중 40%가 미국 국방비다.
내 계산으로는 펜타곤의 예산은 현재 국방비 순위에서 미국 다음가는 국가들 9~10개 국가의 국방비를 모두 합친 것과 비슷하다. 역사상 이런 경우는 없었다. 정말 미국은 지구에 너무 큰 빚을 지고 있다.
이런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니 우리 자신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등을 가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왜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가 하면 최근에 겪은 경험 때문이다.
최근 아라비아만, 유럽, 한국, 멕시코 등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또 전세계에서 수많은 편지와 이메일을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접한 사람들이 모두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있지 않다는 데서 충격을 받았다.
9.11 테러 사태에 대해 다른 나라 사람들도 진심으로 애도하지만 그것은 무고한 희생자들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에게 대한 것이었다.
시드니, 오슬로, 뉴 델리 등지에서는 9.11테러 같은 것이 또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것이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이나 지지를 뜻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귀가 열린 이라면 미국의 정책에 대해 국제적인 비판과 조롱, 환경파괴범으로써의 미국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케임브리지에서 살고 있는 내 제자는 자신은 영국을 좋아하는데 반미감정이 확산되고 있는 영국의 현실에 대해 곤혹스럽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토니 블레어의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그러나 내 제자는 자기가 공부하고 있는 곳이 아테네나 베이루트, 또는 캘커타가 아니라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다**
이 칼럼을 읽는 미국인 독자들 중에는 미국을 성토하는 바깥세상의 목소리에 대해 그리 개의치 않는 이들도 많을 지 모른다. 그들에게 미국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유일 초강대국이며 유럽, 러시아, 중국, 아랍 등의 나머지 나라들은 그저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뿐이라는 식의 입장이다.
그러나 내가 귀를 기울이는 다른 미국인들 즉 평화봉사단원이었던 이들,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그들도 유학 경험이 있다), 해외접촉이 많은 사업가들, 신앙인, 환경운동가 등의 말을 들어보면 바깥 세계에서 나오는 반응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지구촌이 겪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으며, 대외정책은 점점 단순해져 탈리반 같은 파괴분자를 처단하는 데 막대한 군사력을 과시하고는 자신이 기지로 되돌아오는 식이란 걱정이다.
그들은 미국이 그 어느때보다 통합된 세계를 건설한 주역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세계통합에 사용된 미국의 수단으로는 해외투자, 합병, 정보통신 혁명, MTV,CNN을 통해 전파되는 미국식 문화, 여행과 학생교환, 무역 자본유입, 지적재산권, 환경과 노동법 등에 관해 미국식 기준 강요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제는 세계와 너무나 밀접하게 얽혀있는 미국이 너무나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친미, 반미, 용미**
최근에 여행을 해보고 나니 이러한 견해에 대해 더욱더 피부로 공감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바깥세계의 의견을 세가지로 분류해보자.
친미, 반미, 용미로 나눈다면 친미그룹은 쉽게 구분된다. 마가렛 대처 여사와 미하일 고르바초프 등 정치적 인물들을 비롯해, 미국식 자유주의 경제를 신봉하는 사업가들, 할리우드 스타와 팝음악, 청바지에 열광하는 외국 10대들, 미국의 도움으로 폭압적 정권에서 벗어난 사회 등이 친미로 분류될 수 있다.
반미그룹도 식별하기 쉽다. 반미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부분의 비민주정권, 남미의 과격파들, 일본군국주의자와 전세계의 자본주의 비판자들을 들 수 있다. 유럽, 특히 미국 문화를 저속하고 단순하며 천박한 것으로 여기는 프랑스의 지식인들, 그리고 남부러울 것 없이 성공한 사람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진영에 속하는 사람들의 신념을 바꿀 방법은 별로 없다.
때문에 우리는 기본적으로 미국에 우호적이며 민주자유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미국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현재 미국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들의 비판은 우리 자신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이 항상 강조했던 이념들 즉 민주주의, 공정성, 개방성, 인권존중, 루즈벨트가 말한 '4대 자유' 추구 등에 미국이 실패하고 있다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 다행스럽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세계가 인간의 고유가치를 옹호한 미국의 지도자에게 희망과 열렬한 지지를 보낸 시기가 세번 있었다. 우드로 윌슨,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케네디 등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미국 우선'의 좁은 시야를 거부하고 인류의 소망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관대하고 결단력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미국에 대해 걱정하고 실망하고 있는 외국 친구들이 원하는 것이다. 국제지뢰문제, 국제전범재판소, 교토의정서 등에 대해 일방주의적인 미국의 정책은 이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UN(국제연합) 운영비 제공을 미루고 있는 것도 현명해 보이지 않으며 미국이 약속했던 사명을 저버리는 처사다. 국방비를 4백80억 달러나 증액하겠다면서 개발지원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것은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미국의 정책 중에 변명할 만한 것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미국의 정책은 다른 나라들의 생각은 안중에 없다는 인상을 준다. 테러리스트 소탕, 자산동결, 미군을 위한 기지확보 등 미국이 필요할 때는 협조적이지만 마음에 안들다는 이유로 국제적인 문제에서 발을 뺀다.
내가 보기에 해외에 나가있는 미국대사 등 모든 외교사절들은 미국의 적이 아닌 바로 우리의 친구들이 털어놓는 걱정들을 처리하느라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제사회가 원하는 것은 '권력의 오만'이 아닌 리더십**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게 있다. 개별적인 정책 변화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달라는 해외로부터의 깊은 갈망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이 일전에 지적한 '권력의 오만함'이 아닌 루스벨트에 의해 가장 잘 구현된 것으로 생각되는 '진정한 리더십'을 원한다.
유럽연합의 대외관계집행위원인 크리스 패튼이 미국을 향해 '지나친 일방주의'를 경고하면서 원했던 것도 바로 이런 리더십일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리더십은 다음과 같은 것이리라. 폭넓은 비전, 보편적인 인류애, 우리가 준 것만큼 우리도 남들에게 배울게 많다는 지혜가 깃들어 있는 리더십. 음지에 있는 모든 이들에 다가서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부강한 다른 나라들과 함께 공동의 노력을 펼치는 길로 미국을 이끄는 리더십.
무엇보다 미국 국민들 앞에 당당하게 나서서 진정한 미국의 국익이 왜 우리 지구의 운명을 미국이 끌어안고 지구의 미래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데 있는지 끊임없이 설득하는 리더십이다.
이런 리더십이 펼쳐진다면 우리는 미국이 한 약속들을 지키게 될 것이며 우리가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놀랄 순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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