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 대신에 CEO 대통령이 되겠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비롯한 여야의 대권주자들이 빼놓지 않고 하는 공약이다.
너도나도 'CEO'가 되겠다고 하니, 세간에 "도그(dog)나 카우(cow)나, CEO 운운한다"는 냉소적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다.
***입으로만 CEO, 하는 행태는 진시황**
문제는 과연 이들 대권주자가 CEO가 과연 뭔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이다.
이들은 말한다.
"제왕처럼 군림하지 않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 다수 의견을 존중하며 통치하는 게 CEO대통령이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CEO로 국내외에서 높게 평가받는 한 CEO는 정반대로 말한다.
"경영은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다. 다수가 반대하더라도 결단을 내릴 때 내리고, 그 대신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는 것이 CEO이다."
이른바 'CEO대통령' 지망생들의 CEO관(觀)이 얼마나 일천한 수준인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층 심각한 문제는 입으로는 CEO를 외치면서, 실제로 하는 행위는 진시황을 뺨치는 제왕들이 적잖다는 데 있다. 요컨대 '제왕적 위장(僞裝) CEO'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이런 시비에 정통으로 걸려들었다.
***'昌빌라 게이트'와 이총재 측근들의 당황**
이총재의 가회동 빌라가 정치쟁점이 되고 있다.
서울 가회동에 1백5층평 초대형 고급빌라 3개를 얻어 사용하고 있다는 대목이 문제가 된 것이다.
1개 빌라의 월세가 8백만원, 연간으로 따지면 집주인에게 내야하는 돈만 9천6백만원에 달하는 빌라를 세 개씩이나 사용하고 있으니, '소박한 대통령'을 원하는 국민정서상 반감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 과정에 정작 심각하게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총재가 빌라 3개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총재 측근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7일 이총재가 2개 빌라를 사용하고 있다고 폭로하며, 재산신고 누락 및 증여세 포탈 의혹을 제기했다. 한나라당은 2개 빌라 사용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이같은 주장을 '중상모략'이라고 되받아쳤다.
정작 문제는 다음에 벌어졌다.
한나라당이 2개 빌라에 대한 해명을 하자, 민주당은 지난 2월 이총재 딸 부부가 4층에 또하나의 빌라를 얻어 들어왔다고 추가 폭로를 했다.
한나라당은 당혹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총재 측근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대응은 이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선거를 돕기 위해 사위가족이 가까이 온 것이다."
"분양 평수는 1백5평이나 실제 가용평수는 76평이다."
궁색한 변명이었다.
한나라당은 이어 7일 오전 총재 특보단 회의에서 논란 끝에 김대중대통령 일가 재산문제를 일단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누구 눈에도 '당황'이자 '갈팡질팡'으로 비쳤다.
***가족 얘기 꺼내기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민심이 어떤지는, 다름 아닌 조선일보가 8일 만평에서 이번 사건을 '昌빌라 게이트'로 명명하는가 하면 사설을 통해 '이총재의 소명'을 촉구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중앙일보도 8일 사설에서 '야당총재의 호화판 가족 타운'을 비판하며 이총재의 솔직한 해명을 요구했다.
'주류 여론집단'마저 이번 사태를 보는 시각이 대단히 차가움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법률 전문가인 이총재가 인정할지는 미지수이나, 헌법위에 엄연히 존재하는 게 '국민정서법'이다. 이총재는 이번에 국민정서법에 정통으로 저촉된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국민정서 운운하기에 앞서,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은 이총재 측근들마저 이총재 가족상황을 제대로 체크하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이총재 가족 얘기를 꺼내기란 우리도 쉽지 않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총재 사위가족이 이총재 거처의 윗층으로 이사온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정도이니, 충분히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요컨대 이총재에게 '가족 얘기'를 꺼내기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라는 식의 해명이다.
이는 이총재가 CEO라기보다는 제왕에 가까움을 보여주는 증언이다.
***가족을 선거운동에 동원하는 행위부터 차단해야**
이번 빌라파동 과정에 나온 한나라당의 해명 가운데 또하나 간과해서는 안되는 대목이 "사위가족이 선거를 돕기 위해 가까이 왔다"는 항목이다.
우리나라 정치현실에서 일가 친척들이 선거를 돕는 것은 당연한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CEO 대통령'이 되려면 이런 관행부터 깨야 한다.
역대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친인척의 권력 농단'이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대통령 모두가 임기말에 친인척의 권력 농단으로 심각한 레임덕(권력누수)을 경험해야 했다.
이같은 친인척의 권력 농단은 이들이 선거운동 또는 권력창출 과정에 '개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친인척의 권력 농단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선 선거운동에 이들을 동원하는 행위부터 차단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선거를 돕기 위해 사위가족을 가까이에 불러들였다"는 한나라당의 해명은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이없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민간의 CEO들은 결코 가족을 경영에 개입시키지 않는다. 가족을 경영에 개입시켰다가는 '쪽박'을 차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재계의 오랜 경험 때문이다.
진정으로 CEO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우선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한다.
경영이 무엇인지부터 배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가족부터 정치에서 멀리 있게 하고, 측근들이 '가족 얘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언로를 터줘야 한다.
측근들의 입에 자물쇠를 채운다면 설령 집권을 하더라도 임기말에 친인척 비리로 인해 또한차례 '비극적 대통령'이 돼야 하는 게 만고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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