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FP는 군사력의 양과 질적 측면뿐만 아니라 자원, 재정, 지리, 산업 등 55개 요소로 해당 국가의 전쟁 수행능력을 평가해왔다. 하지만 핵무기 보유고는 중요한 요소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재래식 군사력을 동원한 전쟁 수행 능력을 주된 평가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공식 핵보유국들인 이스라엘, 파키스탄, 북한의 전쟁 수행능력은 각각 16, 17, 18위로 평가되었다.
일본을 앞선 핵심 사유는 '가용 병력'
GFP는 0.0000에 가까울수록 전쟁 능력이 우수한 것이라며, 한국은 0.2001로, 일본은 0.2107로 점수를 매겼다. 두 나라 앞에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프랑스, 영국 순으로 순위가 매겨졌다.
GFP가 한국을 일본보다 높은 순위에 올려놓은 핵심적인 이유는 정규군과 예비군을 합친 '가용 병력'의 차이에 있다. 일본은 약 31만 명인 반면에 한국은 17배에 달하는 약 580만 명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정규군 규모에 있어서도 일본은 약 24만 명인 반면에, 한국은 일본보다 2배가 훨씬 넘는 60만 명 정도이다.
한편 이 기관은 한국과 일본의 군용기 보유 수는 1560대와 1508대, 전차는 2654대와 679대, 함정은 166척과 131척이라고 밝혔다. 양적으로는 한국이 많지만 질적 측면에선 일본이 우수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한국이 일본을 앞섰다는 GFP의 평가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 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본을 추월했는지의 여부를 떠나 한국의 군사력이 대단히 강해졌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가령 1990년대 초반 일본 방위비의 3분의 1 수준이었던 한국의 국방비는 2019년에는 일본의 85% 수준까지 다다랐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2022년이나 2023년에는 한국의 군사비가 일본을 넘어설 가능성도 높다.
일본 추월, 기뻐할 일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이 과연 반길 만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일본의 경제력은 한국의 3배다. 이에 따라 한국의 군사비가 일본과 비슷해지면 우리 국민은 일본보다 3배 가량 군사비를 부담하게 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막대한 기회비용이다. 민생과 복지, 미세먼지 대책 등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 소모적인 군비경쟁으로 탕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기어코 한국의 군사비가 일본을 추월하는 날이 오면, 일본 내에서 '한국경계론'도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리고 GDP 대비 1% 이내에 묶여 있는 방위비를 대폭 증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한일간의 군비경쟁 격화이자 안보 딜레마의 심화이다.
최근 일본의 초계기 도발로 인해 한일 간의 군사 갈등이 높아지면서 '구한말'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이러한 화법은 과도한 피해 의식을 부채질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 오늘날의 세계는 제국주의 시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한국도 예전의 조선이 아니고 일본도 예전의 일제가 아니다.
일본 우익의 후안무치한 역사 인식과 적반하장 식의 태도는 분명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것이 곧 '일본의 재침략' 등을 운운할 정도의 피해망상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도한 피해망상은 우리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듭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는 중국 고사를 소개하고 싶다. 진시황은 진나라를 망하게 할 자는 '호'(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 변방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하지만 진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오랑캐가 아니라 그의 자식인 '호해'였다. 외부의 위협 대비에 치중한 나머지 내부의 모순을 방치한 결과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교훈을 주는 고사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는 국방비와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절망 속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길은 없다.
향후 한국 국방비는 GDP 대비 2.0% 수준으로 맞춰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이렇게 해도 경제력을 감안하면 일본보다 2배 정도 많이 쓰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 수 있는 평화배당금은 엄청나다. 예상되는 국방비 증액과 비교할 때 10년 동안 약 200조 원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 이후에도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평화배당금이면 여전히 꿈같은 이야기로 간주되는 '기본 소득' 논의를 활성활 할 수 있는 소중한 종자돈이 될 수 있다. 성역에 갇힌 국방비를 공론화의 장에 불러내야 할 까닭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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