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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외국계 컴플렉스'가 대형부실 초래

4대 구조조정기금 부정ㆍ편법 대출 극심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아래 외국계에게 맡긴 2조원규모의 기업구조조정기금에 큰 구멍이 뚫린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부의 '외국계 컴플렉스'와 외국계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다시금 비판의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문제는 이와 유사한 사태가 이번에 처음 발생한 것이 아니었으나, 뿌리깊은 외국계 컴플렉스로 인해 금융감독당국이 사건 재발을 예방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금융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제부처 일각에 존재하는 사대주의적 노예의식을 뿌리뽑는 동시에, 차제에 각종 신용보증기금등 정부관할 투자기금에 대한 조사도 병행해야 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구조조정기금 유용은 우발적 사건이 아닌 '구조문제'**

검찰은 17일 한강구조조정기금(이하 한강기금)으로부터 3백억원을 지원받게 해 준 대가로 7억8천만원을 제공받은 국가정보원 전 사무관 김모씨와 70억원을 지원받게 해 준 대가로 1억4천만원을 받은 한강구조조정기금의 투자자문회사 이모씨를 구속 및 수배조치했다. 출자금의 평균 2% 정도를 리베이트(수수료)로 챙긴 셈이다.

검찰은 한강기금외의 3개 구조조정기금에 대해서도 투자금 유용의혹에 대한 수사를 확대키로 했다.

검찰이 이렇게 수사에 나서자, 이들 기금의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은 18일 뒤늦게 한강구조조정기금 등 4대 구조조정기금에 대한 운영실태를 일제점검하겠다고 나섰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겠다는 식이다.

엣말에 "열 포졸이 한 도둑 못잡는다"는 말이 있다. 내부에서 도적질을 하겠다고 작심하면 아무리 감독을 철저히 해도 구멍이 뚫리기 마련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번 한강기금 유용사태는 지난 98년 4대 구조조정기금 설립 당시부터 예견된 '구조문제'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외국계가 최고"라는 정부의 뿌리깊은 사대주의**

정부는 98년 10월1일 산업은행등 25개 국내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1조6천억원을 출자토록 해, 이른바 4대 구조조정기금을 조성했다. 당시 기금의 설립목적은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견ㆍ중소기업의 부채상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4대 기금은 1개의 부채조정기금과 3개의 투자기금으로 나뉘어 조성됐다. '서울부채조정기금'이라 명명된 자본금 6천억원의 부채조정기금은 영국계 금융그룹인 로스차일드가 운용을 맡았다. 이 기금은 잔존만기 1년 미만의 금융기관 부채를 갖고 있는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를 사들여 단기부채를 장기부채로 전환해주는 역할을 했다.

'아리랑기금' '무궁화기금' '한강기금'이라 이름붙여진 3대 투자기금은 각각 미국의 SSGA, 템플턴, 스커더에게 운용을 맡겼다. 이들 기금은 회사채 인수뿐 아니라, 출자를 통해 기업의 구조조정을 돕기로 했다.

정부는 이들 4대 기금의 운용을 외국계에게 맡겼는데, 이유인즉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한마디로 말해 국내 운용주체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정부방침에 대해 당시 국내 금융계는 내놓고 말하지는 못했으나 불만이 컸다.

당시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IMF사태후 아무리 국내금융계의 신인도가 땅에 떨어졌다고는 하나 외국계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지나친 사대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외국계들은 국내 기업실정을 거의 모르는 만큼 구체적 투자업무는 결국 국내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럴 바에야 굳이 거액의 수수료를 주면서 외국계에게 맡길 게 뭐냐"고 반문했다.

그의 우려대로 그후 이들 기금 운용을 맡은 외국계는 국내투자자문사에게 용역을 주었고, 그 결과 한강기금과 같은 유용사태가 발생하기에 이른 것이다.

***로스차일드의 악성 모럴 해저드**

문제는 이와 유사한 사태가 기금 운용 초기부터 사건화됐음에도 불구하고 감독당국이 재발 방지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데 있다.

그런 대표적 사건이 로스차일드의 서울기금 유용사태였다. 서울기금 출자자인 산업은행등 국내 22개 금융기관은 99년 5월8일 서울기금 운용사인 로스차일드에 대해 자산운용 계약을 해지한다고 공식통고했다.

이유인즉 로스차일드가 서울기금에서 2천억원 가까운 돈을 빼내, 로스차일드가 별도로 구조조정 업무를 맡은 한라그룹에 편중지원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조사 결과 로스차일드는 한라시멘트 명의로 1천1백86억원, 한라건설 명의로 8백억원 등 도합 1천9백86억원을 한강기금에서 빼내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자본금 6천억원 가운데 3분의 1을 빼내 자사가 별도로 구조조정 업무를 맡고 있던 한라그룹에 전용한 것이다. 악성 모럴 해저드였다.

로스차일드의 윌버 로스 회장은 그러나 이같은 결정에 대해 법정소송을 불사하겠다는 등 거세게 항의했다. 당시 윌버 로스는 김대중대통령 등 정부고위층과의 두터운 친분을 이유로 무소불위의 권력인양 행세하고 다녔었다.
채권단은 이같은 윌버 로스의 기세에 눌린 탓인지, 명백한 탈법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넉달 뒤인 그해 8월31일에 이르러서야 서울기금의 운용주체를 로스차일드에서 슈로더로 간신히 바꿀 수 있었다.

***2조원 기금 가운데 1조원 부실화**

로스차일드의 모럴 해저드 사태가 발생하자, 당시 국회와 시민단체에서는 외국계의 자산운용에 대한 감시감독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일각에서는 운용주체를 국내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지적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이들 외국계가 운용한 투자기금의 수익률이 대단히 높았기 때문이다. 기금운용 1년만에 아리랑기금의 경우 1백10%의 높은 수익률을 올렸고, 한강기금과 무궁화기금도 각각 34%와 25%대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이같은 수익률은 당시 벤처붐으로 거의 모든 국내 펀드들도 거둔 실적으로, 이들이 특별히 외국계여서 거둔 실적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후 벤처거품이 꺼지자 이들 기금의 투자실적도 급락했다. 이들이 당시 투자에 주력한 것은 당초 설립목적인 중견.중소기업보다는 벤처기업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주가가 급락하면서 막대한 투자손실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한 예로 현재 4대 기금중 유일하게 증시에 상장돼 있는 한강기금의 주가는 액면가 5천원보다 한창 아래인 3천5백선에 그치고 있다. 주가만 갖고 말한다면 최소한 투자액의 3분의 1을 날린 셈이다.
금융계에서는 이들 4대 기금의 투자액 2조원 가운데 1조원 가까이가 부실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책당국의 외국계 컴플렉스 청산 시급**

벤처투자 손실은 이들 외국계 펀드가 아닌 국내계 펀드에서도 목격되는 현상인만큼 이를 갖고 특별히 외국계만 비판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대목은 외국계 역시 국내계와 다를 바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투자실적은 말할 것도 없고 이번 한강기금 사태에서 볼 수 있듯 모럴 문제에서도 외국계는 결코 '월등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주식자본주의의 본토인 미국 월가에서조차 엔론사태를 계기로 투자기관, 신용평가기관, 회계감사기관의 모럴 해저드가 심각한 경제 위기요인으로 제기되고 있다.

한강기금 사태와 엔론사태가 주는 교훈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정책당국자들 뇌리에 알게모르게 각인돼 있는 '외국계 컴플렉스'를 과감히 털어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국세청이 건당 수십억원을 받고도 소득신고를 명확히 하지 않은 혐의를 받아온 외국계 컨설팅기관 및 회계법인에 대한 탈세 여부를 조사하기로 한 대목은 금감원 등 다른 경제부처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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