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공공인프라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조기 착공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이후, 정부는 오는 29일 예타 면제 대상 사업을 선정·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자유한국당은 '총선용'이라며 경계심을 표하고 있지만,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 등 다른 야당은 선거 영향력을 논하기에 앞서 문재인 정부 국정철학과 부합하는 방향이냐는 점을 강하게 지적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상돈 의원은 28일 평화방송(CP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번처럼 문재인 정권에 대해 실망한 경우가 없다"며 "원칙이 중요하다. 이것 안 하면 별안간 대한민국이 망하느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의원은 보수 성향 정치학자 출신이지만, 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등 환경·개발 문제에 대해서는 꾸준히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 의원은 "이렇게 성급하고 조속한 대형 토목개발 정책은 정부 수립 이후에 없는 일"이라면서 특히 "문재인 정권이 어떤 배경으로 탄생했느냐. 과거 이른바 보수정권의 오만과 독선, 권력 남용, 토목 행정을 안 하겠다고 약속하고 등장한 정권 아니냐"며 "이건 완전히 자기 정체성을 뒤집어 엎은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의원은 "그러고서 어떻게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 문제처럼 문재인 정부가 잘못하는 게 없다"며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에도 배반되고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역 균형발전론이나 경제위기론 등 토목사업의 필요성을 긍정하는 논리가 있는 데 대해 이 의원은 조목조목 반박을 폈다. 그는 "경제 나쁘다고 불필요한 토목공사 해서 나라를 20년 잃어버린 경우가 일본이다. 우리도 20년 잃어버린다"고 경고하며 "아무래도 총선을 겨냥한 사업 아닌가 싶은데, 뒤늦게 토건사업을 해서 경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은 굉장히 헛된 일자리이고 헛된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균형발전론에 대해서도 "전부 헛된 얘기"라며 "지역균형발전이 모든 걸 정당화하는 마법의 요술상자인가? 지역 균형발전을 시킨다고 과거에 했던 게 다 어떻게 됐느냐? 전라남도 발전시킨다는 F1 경기장, 텅 비어가지고 고추 말린다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이 의원은 예타 면제의 절차적 문제에 대해 "4대강 사업은 그 문제 가지고 소송까지 갔고, 부산지역 고등법원에서는 '예타 안 한 것이 불법'이라는 판결도 나온 적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주택 건설이 거의 한계에 오지 않았느냐. 토건업자들 일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이런 것 하는 게 아니냐 하는 의심이 든다"고 의혹을 제기하며 "그러면 이 정부의 정체성이 뭐냐. 이명박 정권을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고 비판을 이어갔다.
이 의원의 격분은 바른미래당·평화당 내의 대체적 기류와 일치한다. 이날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권은희 최고위원은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이들(정부·여당)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4대강 사업이 예타를 면제하고 이뤄졌다는 점을 줄기차게 비판하던 사람들인데 이제는 그보다 더 큰 판을 벌이려고 한다"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비난하던 토건국가로 회귀하려고 하는지 국민들은 의아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평화당은 정동영 대표가 직접 나서서 "MB 정부의 4대강 사업을 그렇게 비판했던 이 정부가 MB 정부 뺨치는 일을 하고 있다"며 "MB 정부 5년 동안 예타 면제가 60조인데, 문재인 정부는 이미 29조 규모의 예타 면제를 시행한 바 있고 내일 발표를 하면 MB 정부 5년 규모를 뛰어넘는 'SOC 몰빵' 경쟁을 하게 된다. 결국 '경기 부양 SOC는 안 하겠다'는 공약을 정면으로 깨뜨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원외 진보정당인 녹색당도 지난 10일 문 대통령 신년회견 직후 "예타 면제 언급은 토건 열풍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며 "과거 예타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대표적 사례가 4대강 사업이다. 4대강 사업이 낳은 예산 낭비와 환경 파괴를 벌써 잊었는가?"라고 우려를 표하고 재검토를 촉구한 바 있다. 시민단체 환경운동연합 역시 당시 "토건국가의 재탕"이라며 아쉬움을 표했었다.
한편 한국당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예타 면제 사업 추진에 대한 비판이 나왔지만, 비판이 겨냥한 지점은 바른미래·평화당이나 환경단체 등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25일 "예타 면제를 통한 총선용 선심 정책"이라며 "총선용으로 SOC 투자를 예타 면제해서 하겠다고 한다. 아마 경제 위기감이 팽배하자 찾는(듯한)데 저는 잘못된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27일 김순례 원내대변인 논평에서도 "현재 추진 중인 문재인 정권의 기준없는 예타 면제는 포퓰리즘 정책의 극치이자 매표(買票)를 위한 쇼"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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