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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산재 줄인 비결이요? 위험은 '남의 자식'에게"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외주화 문제 애써 외면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

"나는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 사고가 발생하면 사장을 비롯해서 경영진도 문책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사장이나 임원진들이 자기 일처럼, 자기 자식 돌보듯이 직원들을 돌보도록 만들어야죠. 그것을 못하면 전부 책임지고 물러나야 되는 거고."

지난 1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 얘기라고 한다. 청와대 측은 故 김용균 노동자와 같은 사고 예방을 위해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대통령 얘기를 마치 미담처럼 길게 소개했다. 하지만 <인사이드 경제>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보다는 가로저어진다. 미안하다, 삐딱해서. 하지만 천성이 그런 걸 어떻게 하겠나.

자기 직원만 자식처럼 돌본 게 불행의 씨앗

엄밀히 말하면 공기업 사장들이 직원들을 자식 돌보듯이 챙긴 게 바로 재앙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자기 직원들’만큼은 철저하게 돌봤다. ‘자기 직원들’에게 사고가 나지 않도록, 위험한 업무는 죄다 ‘남의 직원들’에게 외주화 시켜버린 것. 위험한 일을 외주화하자 놀랍게도 ‘자기 직원들’ 산재사고는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정부는 산재가 줄어든 모범 사업장이라며 상도 주고 혜택도 주었다. 실제로 김용균 노동자가 일했던 태안화력에서 지난 3년간 4명의 하청노동자가 죽어가는 동안 정규직 사망사고는 한 건도 없었다. 그러자 태안화력을 운영하는 서부발전은 재해 방지에 노력했다며 정부로부터 5년간 산재보험료 22억을 감면받았다. 직원들에게 무재해 포상금 4770만 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 CCTV에 찍힌 고 김용균 씨의 마지막 모습. ⓒCCTV 갈무리

도대체 산재를 줄인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 “위험한 일은 모두 하청·용역업체에 도급주었을 뿐”이라는 답이 나온다. 사고 때문에 문책당할 일도 없고, 외주화로 비용까지 줄였으니 정부의 포상은 곱으로 늘어난다. 이러니 너도 나도 외주화를 밀어붙인다. 정부야말로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를 부추긴 주범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바로 그 지점, 자기 직원들을 자식처럼 돌보느라 위험과 죽음을 ‘남에게’ 떼어 넘긴 ‘외주화’ 때문에 발생한 사고들이다. 그런데 대통령 발언 그 어디를 살펴봐도 외주화 문제를 짚은 대목을 발견할 수가 없다.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 아래 추진된 대규모 인력 감축과 과도한 경영합리화와 민영화, 상하분리 등 우리 철도가 처한 모든 문제가 방치된 것이 이번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본다."

KTX 강릉선 탈선 사고 등 끊이지 않는 안전사고로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며 했던 얘기이다. 자신이 임명한 공기업 사장도 알고 있는 저 사실, 설마 문재인 대통령이 외주화 문제를 모르고 있을까? 보고서와 신문을 누구보다 꼼꼼히 읽는 것으로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이다.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97 : 3, 정부가 부추긴 외주화

우선 고 김용균 노동자가 일하던 발전사부터 살펴보자. 2013년에 처음으로 발전정비 산업에 민간 경쟁이 시작된 이래 5개 발전 자회사(한국남동발전·서부발전·중부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에서 하청노동 규모가 수직으로 상승한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공시된 5개 발전 자회사의 ‘소속외 근로자’ 숫자의 변화를 추적하면 아래와 같은 그래프를 얻게 된다.


5개 자회사 모두 해가 갈수록 하청노동의 규모가 상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5개 하청노동 규모를 모두 합하면 2013년에는 2864명이었으나, 4년 사이에 무려 59.25%나 늘어나 2017년이 되면 4561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저 하청노동 규모만 늘어난 게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과 우원식 의원이 각 발전사들로부터 받은 자료 2가지를 분석해 보면, 5개 발전 자회사에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총 384건의 사고가 발생했으며, 이 중에서 372건(97%)이 하청 업무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이 아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9년 동안 이곳에서 산재로 사망한 40명 가운데 하청 노동자는 37명(92%)이었다. 김용균 노동자가 일했던 태안화력이 속해 있는 서부발전에서 지난 7년간 발생한 사고 중 사망사고는 10명, 부상사고는 55명으로 총 사상자는 65명인데 이중에서 하청 노동자가 무려 63명(97%)에 달했다.

외주화 권한 정부, 산재보험료도 대폭 할인

65명의 사상자 중 원청인 서부발전은 부상자 2명뿐이었으며, 사망자 10명은 전원 하청 노동자였다. 그 중에서도 태안화력에서만 58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무려 90%를 차지했다. 굳이 ‘하인리히 법칙’ 같은 거창한 이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저런 수치가 매년 국정감사에서 폭로되는데도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태안화력에서 대형사고 발생은 필연적이었다.

97%의 재해가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되는 동안, 5개 발전 자회사는 정부에 단 3%의 재해만을 보고할 뿐이었다. 이런 보고를 받아든 정부는 5개 자회사에게 무재해 사업장으로 인정받아 막대한 산재보험료를 감면받아왔다. 우원식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개 자회사가 감면받은 산재보험료는 111억이 넘었다.


개별실적요율이란 “재해방지 노력을 기울인 사업주와 그렇지 않은 사업주 간 형평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하여 납부한 보험료와 공단에서 지급한 보험급여의 비율에 따라 산재보험요율을 가감”해주는 개념이다.(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제15조 보험료율의 특혜) 공기업 사장들은 위험과 죽음을 외주화하며 산재보험료 할인까지 받았던 것이다.

외주화 참혹한 실상이 발전사뿐이랴


위 통계자료는 자유한국당 문진국 의원이 2016년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최근 5년간(2011~2015) 주요 30개 기업 중대재해 사상자 발생 결과’이다. 여기서 주요 30개 기업이란 민간·공공을 불문하고 산재와 사망사고가 빈발하는 최상위 30개 기업을 의미한다.

위 통계치가 적용된 5년간 원청에 대한 법원의 최종 처분은 징역 1건, 집행유예 8건, 불기소·기소유예 43건, 벌금형 106건, 혐의없음 38건이 전부였다. 원청 사업주는 외주화의 이점은 모두 챙긴 반면,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은 전혀 지지 않았다.

아래 자료는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이용득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이다. 최근 6년간 3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이 총 28건이었는데, 그 사건들에서 원청과 하청 소속 사망자·부상자 규모에 관한 자료이다.


사망자 중 원청 소속 노동자는 16명(15%)인데 비해, 하청 소속 노동자는 93명(85%)에 달했고, 부상자 또한 원청 소속 노동자가 14명(11%)인데 비해 하청 소속 노동자는 113명(89%)에 달해 위험의 외주화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는 조선업 사고 실태를 조사한 '조선업 중대 산업재해 국민 참여 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부터 작년 9월까지 약 10년 동안 조선업 산재 사망자는 모두 324명인데 그 중에서 하청 노동자가 257명으로 무려 79.3%에 달했다. (아래 그래프)


앞서 문진국 의원실과 이용득 의원실이 발표한 자료에서 발견되는 80%대 중후반보다는 수치가 낮은 편인데 그건 기간을 2007년부터 길게 잡았기 때문이다. 위험의 외주화 속도가 더 가파르게 진행된 2012년 이후 수치만 따지면, 총 사망자 143명 중 하청노동자가 120명으로 83.9%라는 수치를 얻게 된다.

해법은 정규직 전환뿐이냐고? 그렇다!

국무총리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故 김용균 노동자 빈소를 찾았지만, 정규직 전환 대책에 대해서만큼은 입을 닫거나 부정적인 얘기를 쏟아낸다. 그들은 과연 해법이 정규직 전환밖에 없냐는 문제를 던진다. <인사이드경제>는 그 문제에 대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그렇다. 정규직 전환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앞에서 모두 확인하지 않았던가. 사장님들이 ‘자기 직원들’만큼은 애틋하게 돌보고 챙겼음을 말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은 ‘남의 직원들’이 되어버려 사각지대에 내버려진 그들을 ‘자기 직원들’로 되돌려놓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본격적인 해법 얘기는 바로 이어지는 글에서 할 예정이지만 간단한 문제를 제기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2013년 성수역, 2015년 강남역, 그리고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노동자가 사고로 죽어갔다. 모두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사고는 유독 舊 서울메트로가 관리하던 곳에서만 벌어졌을까? 유사한 사고가 舊 도시철도(5~8호선)에서는 발생하지 않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도시철도에서는 스크린도어 수리업무를 모두 정규직 노동자들이 수행했다. 마찬가지로 구의역 사고 이후 해당 업무를 모두 무기업무직으로, 그리고 정규직으로 단계적 전환을 실시한 서울메트로에서도 사고 숫자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의 사망사고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이 간단한 예만 보더라도 정규직화가 답임을 알 수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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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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