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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마피아' 응징의 길 튼 양승태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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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마피아' 응징의 길 튼 양승태 구속

[기고] 헌정 사상 첫 대법원장 구속의 의미

대한민국 헌정 71년 역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희대의 사건이 일어났다. 2011년 9월, 당시 대통령 이명박이 대법원장으로 임명한 양승태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71세의 고령으로 24일 새벽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곧장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그는 2013년 2월 말 대통령으로 취임한 박근혜에게 충성을 바치다 못해 갖은 사법농단을 일삼다가 '그분'이 갇혀 있는 감옥의 쇠창살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2012년부터 대법원장 양승태를 정점으로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들과 일선 판사들이 저지른 사법농단의 실상은 지난해 11월 14일, 구속된 상태로 첫 재판에 넘겨진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임종헌의 공소장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A4용지로 무려 243쪽이나 되는 그 문서 맨 뒤에는 33쪽에 이르는 '범죄일람표'가 붙어 있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그 공소장에 양승태라는 이름이 '공범'으로 45 차례나 올라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양승태는 언론의 끈질긴 추궁에 대해 '나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번에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그의 사법농단 지시와 직접 개입 증거를 많이 확보했기 때문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임종헌과의 공모관계를 입증하는 노력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 명재권은 검찰이 제시한 양승태의 40여개 혐의 사실이 대체로 소명되고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영장을 발부했다. 6시간 가까이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동안 양승태는 "실무진이 한 일이라 알지 못한다", "대법원장으로서 죄가 되는 일을 하지 않았다"며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일하던 이규진(부장판사)이 3년 남짓 동안 수첩 3권에 빼곡히 적은 '사법농단 기록'을 검찰이 보여주는 데도 양승태는 "자기가 살기 위해 나를 모함한 것"이라거나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완전히 결백하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검찰의 수사와 언론의 취재를 통해 밝혀진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양승태는 '사법마피아의 수장'이었음이 명백히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거나 법관들을 지배하기 위해서라면 헌법과 실정법을 어기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박근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피고인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하던 김앤장법률사무소를 찾아가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와 전범기업 승소를 약속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법관 사찰을 위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고 하급자들에게 지시하고, 헌법재판소의 기밀을 위법적으로 입수하는가 하면 법원행정처에 비자금을 조성하도록 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양승태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명재권과 달리, 다른 영장전담부장판사들은 사법농단의 공모자라는 증거가 명백히 드러난 혐의자들에 대해 청구된 영장을 90%나 기각했다. 그들을 '사법마피아의 일원'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명재권을 '용기 있는 법관'이라고 칭송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국사회에는 '마피아'라고 불리는 집단이 여럿 있다. 학연이나 지연 또는 사법·행정고시 등을 고리 삼아 정치·경제·법조·교육·문화예술 분야 등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대중은 잘 알 수 없겠지만 전문가들의 눈에는 명백히 보일 것이다.

얄궂게도 양승태 구속이 사법마피아 응징의 길을 트게 된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2017년 들어 박근혜 정권 시기 사법농단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이래 여러 부문에서 그들을 엄정하게 심판하자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11월 12일 안동지법 원장(차경환) 등 법관 6명이 대구지법 관내 대표법관 3명에게 보낸, 사법농단 관련 판사들에 대한 '탄핵촉구결의안'이 언론을 통해 주권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로부터 이틀 뒤,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주민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법관에 대한 탄핵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에 앞서 2018년 9월 17일 전국 법학대학원과 법과대학 교수 137명은 성명을 통해 "권력분립과 법관의 독립을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을 짓밟은 헌법파괴자이자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해당 법관 탄핵, 국회의 국정조사, 특별재판부 설치를 위한 관련법 제정 등을 촉구한 바 있다.

사법농단에 대한 법적 처벌은 양승태와 임종헌에 대한 재판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이제야말로 관계당국이 주범급과 공범급 모두를 철저히 조사해 사법마피아를 단호히 처벌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그렇게 되어야 대한민국의 법관 3000여 명이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각자가 헌법기관으로서 '법과 양심에 따라'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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