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200명 '패닉' 속 안전요원 단 1명...누구 탓일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200명 '패닉' 속 안전요원 단 1명...누구 탓일까?

[강릉선 KTX 사고 마이너리티 리포트] ②

현직 기관사이자 철도 정책 전문가인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이 직접 취재한 '강릉선 KTX 탈선 사고' 르포를 '강릉선 KTX 사고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름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 글은 그 두번째 꼭지입니다. 편집자

[강릉선 KTX 사고 마이너리티 리포트] ① KTX강릉선 사고,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공개합니다

탈선 현장에는 강원도의 찬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모두가 급한 마음에 현장으로 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괴롭힌 것은 지독한 한파였다. 출동한 기중기가 붐대를 늘어뜨리고 선로를 가로막은 채 누워있는 기관차에 인상용 쇠줄을 늘어뜨렸다. 복구반원들은 이 쇠줄을 차량 밑으로 집어넣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탈선한 차체이지만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상용 쇠줄이 차체에 닿은 부분에 고무 완충재를 대는 작업도 이어졌다.

겹친 차체를 1~2미터씩 앞쪽으로 움직이는 작업이 아주 더디게 반복적으로 진행됐다. 이런 작업 중에 철도공사 오영식 사장이 올라왔다. 강릉시청에서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선로에 이상이 발생했다"는 그 유명한 기자회견을 마친 뒤였다. 기자회견 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개인적 궁금함보다는 복구가 우선이었다. 사고 복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철도공사 강원본부장이 와서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오영식 사장은 사장이 할 일이란, 강추위 속에 고생하는 복구반원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인 양 기중기가 내린 쇠줄을 차체에 감는 노동자들을 지켜보았다.

현장에 설치된 사고대책본부의 사장 호출로 천막으로 가는 동안 오영식 사장에게 몇 마디 했다. 'CEO의 능력은 위기 속에 발현되는 것이므로, 이번 사고를 잘 돌파해야 한다'고. '성과를 내고 꽃길을 걸을 수도 있지만 폭풍우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니, 일단 이번 사고부터 잘 복구하고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보자'고. 오영식 사장은 대책본부 천막으로 묵묵히 걷기만 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기온은 더 떨어졌다. 교대 후 대책본부 천막으로 식사를 하러 내려온 복구반원들은 손이 곱아 젓가락질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컵라면 면발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계속 놓치기만 했다. 포털사이트에는 날씨 탓 선로 오작동이 사고 원인일 수 있다고 말한 '철도 비전문가 사장'을 비웃는 기사가 날개 달린 듯 솟아나고 있었다. 사장과 비서진, 그 수행원들을 쭉 훑어봤다. 헤드라인(기사 제목) 뽑기 딱 좋게 인터뷰를 기획한 분도 추위에 떨고 있었다.


▲탈선후 진행방향으로 90도 꺾인채 밀려간 KTX 열차 기관실을 인상하고 있다. ⓒ 박흥수

그런데 사실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선로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어떻게 다니느냐고? 다 그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다니고 있다. 겨울철 시베리아 횡단열차 차장의 필수 휴대품 중에는 도끼가 있다. 정거장에 열차가 정차하면 차장은 승강장에 내려가 객차 밑 제동장치에 단단히 얼어붙은 눈덩이를 향해 도끼질을 한다. 선로 전환기를 비롯해 선로 주변에 얼어붙은 눈을 치우는 일은 겨울 시베리아 역무원들의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열차 한 대가 제대로 달리게 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수많은 노동이 존재한다.

추워진 날씨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추정이 가능한 것은 개통 후 1년 가까이 멀쩡하던 선로가 몰아친 한파 뒤에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계전기의 회로나 선로전환기의 작동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선로나 신호기 오작동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은 강추위보다는 눈이다. 폭설이 내릴 때면 곳곳에서 신호기가 점멸하거나 꺼지고 선로 전환기 오류가 발생한다.

대설 주의보가 내리면 비상이 걸린다. 역무팀은 언제든지 문제가 있는 선로를 수동으로 취급하기 위해 출동 준비를 하고 기관사들은 혹시라도 신호에 이상이 없나 초긴장 상태로 앞을 주시한다. 한파나 고온 등 외부 기온 변화에 영향을 적게 받는 부품은 당연히 비싸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부품이 쓰였으면 하는 게 철도 현장 노동자들의 바램이다. 하지만 설계도 시공도 납품업체 심사도 철도공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한때 경부선 고속철도 일부 구간에서 검증되지 않은 불량 선로전환기가 시공돼 시속 300킬로미터 운행속도를 시속 170킬로미터로 낮춰 운행했다. 이때도 철도 공사는 저속철 운행에 대한 비난을 받았지만 선로전환기 시공은 시설공단이 책임졌다.

어떤 기자들은 21B 선로전환기가 시험단계에서 4번, 개통 후 운행 단계에서 2번 총 6번이나 '불일치' 현상을 보였음에도 안전불감증에 걸린 철도공사가 점검을 제대로 안 해 사고가 났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런 선로 불일치 현상은 전국 철도 현장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일이다. 승강장에서 승객이 버린 종이컵이 바람에 날리다 선로 전환기 사이에 들어가도 조작판에 '불일치'가 뜨고 열차가 달리는 진동에 의해 튄 자갈이 끼어도 '불일치'가 일어난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수분이 얼거나, 구리스나 오일이 굳어 선로 전환기에 오류 신호가 뜨는 경우도 있다. 겨울철 차량정비나 시설팀은 부탄가스통이 연결된 휴대용 토치가 필수품이다. 불일치는 계절과 상관없이 수시로 발생하는 일이고 그때마다 역이나 수송담당자가 출동해 원인을 파악해 해결하고 있다. 산업안전관리공단에서 주관하고 있는 철도운송산업기사 자격증의 실기 시험은 선로전환기 수동 전환 방법이다. 그만큼 '불일치' 현상이 많이 일어나기에 로컬 관제실(역 조작반) 원격조정이 안되면 바로 현장에 출동해 수동으로 전환하는 것을 산업기사 자격시험의 가장 중요한 실기 항목으로 채택한 것이다. 개통 후 두 번의 '불일치' 현상과 강릉선 KTX 사고의 간극은 생각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다.

다시 탈선한 열차로 가보자. 앞의 두 량이 잭나이프 현상으로 겹쳐진 채 처박히고, 나머지 8량이 선로를 벗어나 기울어진 열차 안에는 198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기관사는 사고 당시 충격으로 부상을 입었고, 앞의 객차가 꺾이는 바람에 전력과 통신선이 끊어졌다. 당연히 안내방송도 안 되는 조건이 되어 버렸다. 이 아비규환 속에 열차 안전을 책임지는 승무원은 딱 한 명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일까? 국토부와 철도공사의 입장에선 말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 많은 문제 제기에도 뚝심 있게 버텨낸 것이리라.

코레일이 운행하는 최고 등급의 고속열차임에도 불구하고 10량 한 편성, 단 두 명의 승무원. 그마저도 회사가 다르다. 철도가 구조 개혁이란 걸 시작한 이래 계속 이렇게 조각을 내왔다. 시설과 운영을 분리하고, 또 운영사도 코레일과 SR로 분리하고, 승무원도 다른 소속으로 분리하고 쪼개고 쪼개고 쪼개왔다. 그리고 그 상태로 계속 유지하다보니, 어느새 적응됐고 당연한 걸로 여기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강력하게 추진된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는 외주화가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 공기업 경영평가 항목에서 외주화 추진 성과가 높을수록 점수가 높았고 이에 따라 성과급도 더 많이 받는 일이 벌어졌다. CEO부터 경영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외주화 드라이브를 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외주화가 경영혁신의 중요한 과제이자 목표가 되었고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꼭 필요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는 일일까? 상식조차 효율화라는 가치 밑으로 다시 정의되고 재정렬되었다.

사고 당시 코레일의 늑장 대응이나, 군인들이 승객 구조, 안내 방송도 없는 무책임 등의 뉴스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런 현실은 그동안 한국 사회가 한 마음으로 추구한 결과물이었다.

두 명의 승무원, 그중 한 명은 안전업무를 할 수 없는 승무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고로 패닉에 빠져있는 198명의 승객들에 어떤 유효한 조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코레일의 비효율을 해결하겠다며 인력은 지속적으로 줄었다. 1996년의 철도청 정원은 3만6730명이었다. 시설과 운영이 분리된 후인 2005년 철도공사 정원은 3만1480명 이었고 2010년에는 2만7456명으로 줄었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2008년 7월 22일 청와대와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연 당정협의회에서는 1) 경쟁 가능성이 높은 공기업 민영화 2) 업무 유사 및 중복 공기업 통폐합 3) 기능·역할 재정립 필요 공기업 재조정 4) 경영 효율화 지속적 추진이라는 공기업 선진화의 4대 원칙이 정해졌다. 이 원칙에 따라 철도 공사는 지속적인 경영 효율화를 추진하되, 임기 내 적자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면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 발표됐다. 이어서 5115명의 인력감축안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인력 구조에 대한 정밀한 조사나 진단 결과 내려온 것이 아니라, 그냥 뚝 떨어졌다.

그런데 한국철도는 고속철도노선만 해도 2010년 경부고속선 2단계 개통, 2015년 호남고속철도 개통, 2017년 경강선 개통 등 신규 인력 소요가 끊임없이 발생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력감축이 지속된 2000년대에만 안산선 오이도 연장, 경부선 전철 천안·신창 연장, 일산선 복선 전철화, 경춘선 전철화, 중앙선 전철화, 경원선 전철화 등에 따른 인력 소요는 늘기만 했다.

강릉역에서 열차 운행을 관리하는 로컬 관제원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책상 위에 나란히 놓인 관제용 모니터만 해도 7개에 용도별 전화기가 8개다. 열차가 출발하거나 도착하고 대기하거나 선로를 변경할 때마다 기관사와 무선교신을 수시로 하면서 열차의 진로를 조정해야 한다. 중앙관제실과의 연락도 계속 주고받는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로 벨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두 시간쯤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방전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2인 1조의 근무자는 2시간에 한 번씩 교대를 해줘야 한다.

문제는 예비 인원이 없는 관계로 근무자 중 한 명이 병원 치료를 받기 위해 병가를 내거나 다른 일로 연차라도 내면 교대 없이 계속 근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관제원 증언에 따르면, 10시간을 쉬지도 못하고 일한 적도 있다고 한다. 설사 두 사람이 근무하더라도 현장에 문제가 생겨 한 사람이 출동하게 되면, 꼼짝없이 남은 한 사람은 자리를 지켜야 한다. 전국에 퍼져 있는 로컬 관제원들의 근무 조건 실상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인력 부족 현실이 관제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있다. 고속철도도 없었고 현재와 같은 광역철도망도 갖추지 않았던 1990년대 말에 비해 1만 명 이상의 철도 인력이 감축됐다. 직원이 한 30만 명쯤 되는데 1만 명이 줄어든 게 아니라 3만 명 대에서 2만 명대로 줄었다.


▲강릉역 로컬 관제실, 2명의 근무자 중 한 사람이 사정이 생기면, 교대 없이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모니터링해야만 한다. 이 모든 '안전'을 1인에게 맞기는 게 이른바 '철도 경영 효율화'라고 한다. ⓒ박흥수

마침내 이명박 정권은 임기 말 수서발 고속열차를 민영화하겠다며 민간사업자 입찰까지 시도했다. 서울 지하철 9호선처럼 효율적인 회사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한국교통연구원의 철도 전문가가 수서 고속철도 민영화는 한국철도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설파했다. 국토교통부가 이 모든 정책의 배후였다.(계속)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