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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노믹스, 親재벌로 급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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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DJ노믹스, 親재벌로 급선회

재벌규제 완화, 특소세 및 세무조사 면제 등

“해방후 수십 차례 뜯어고쳐진 우리나라 세법의 공통점은 선거철만 도래하면 누더기가 됐다가 선거가 끝나면 다시 원대복귀를 한다는 것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일년 앞둔 올해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여기에다가 재벌에 대한 규제를 사실상 공정거래법 무력화 수준으로 대폭 완화하고, 내년 상반기까지는 기업 세무조사도 안하기로 하는 등 말이 좋아 경기부양이지 여기저기서 정치 냄새가 풀풀 난다.
더욱 김대중대통령이 선거패배의 책임을 지고 여당총재직에서 물러난 레임덕의 여파인지, 정부가 대기업과 상류층 등 우리 사회 주류의 입김에 밀리는 경향이 역대 어느 때보다 짙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DJ노믹스의 변질이자 사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관료의 탄식이다.
그의 지적대로 정부가 지난 12일부터 매일 한건씩으로 터트리고 있는 재벌정책을 비롯한 세법, 세무조사 등 핵심 경제정책의 노선 수정으로 'DJ노믹스'라 불리우는 현정권의 경제개혁 방향이 뿌리채 변질되는 분위기다.

***재계 압박에 굴복한 사실상의 출자총액 제한 폐지**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15일 그동안 출자총액 제한을 받아온 30대 대기업집단을 17개로 절반 가까이 줄이고 이들 17개 대기업에 대해서도 각종 예외규정을 인정하며 내년 3월로 예정됐던 출자총액 초과분 해소도 백지화하기로 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10차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연말 국회에 상정, 통과되면 내년 4월1일부터 시행키로 여당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고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의 주도로 지난 80년 12월31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이래 최대규모의 규제 해금조치다.

공정위의 이번 해금조치는 지난달 31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조찬강연에서 행한 이남기 위원장의 “아직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벌정책의 기본틀을 바꿀 경우 문어발식 확장 등 구태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재벌정책의 근간을 흔들 때가 아니다”라는 발언을 상기할 때 불과 보름사이에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조처였다. 이위원장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진념 재정경제부장관과 공개리에 격돌할 만큼 규제완화에 강력 반대했었다.

공정위는 그러나 이날 대기업집단 규제를 사실상 거의 대부분 해제했다. 무릎을 꿇은 것이다.
우선 출자총액이 순자산의 25%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는 출자총액 제한과 관련해선, 대상기업을 종전의 30대 그룹에서 자산 5조원이상의 17개 그룹으로 줄였다.

공정위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17개 대상그룹이라 할지라도 기업의 핵심역량 집중을 위한 출자, 민영화되는 공기업 인수를 위한 출자,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출자,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출자, 부실기업에 대한 출자를 할 경우에는 출자총액 제한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아울러 내년 3월말까지 처분토록 돼있던 출자총액 초과분에 대해서도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만 행사하지 못하도록 할뿐, 더 이상 해소를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과거 YS정권이 범한 오류를 되풀이할 위험성 커**

전문가들은 공정위의 이번 조치를 내용상의 출자총액 제한 폐지로까지 분석하고 있다.
우선 예외조항이 너무 많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애매한 표현도 많다. 그런 대표적 예가 ‘기업의 핵심역량 집중을 위한 출자’나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출자’같은 식의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공정위는 내년 3월말까지 기업들이 ‘핵심역량 사업’을 제출하면 이를 심사해 승인한다는 입장이나, 이는 이미 과거 김영삼정권때 실패로 결론난 정책의 리바이벌에 불과하다.

김영삼정부는 집권후 ‘신경제 5개년 계획’에 따라 각 기업들이 주력업종을 선정토록 하고 이에 대한 각종 특혜를 베풀었으나, 그 결과는 중복과잉투자였고 IMF위기였다. IMF위기를 경험한지 4년도 안지나 과거의 정책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관료집단의 심각한 건망증의 표출이자, 또다른 경제위기의 태동이 아닐까 우려되고 있다.

이같은 공정위의 파격적 변신(?)에 대해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은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재정경제부에 이어 비로소 공정위도 제대로 정책방향을 잡기 시작했다"는 식이다.
공정위 발표가 나오기 전날인 14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출자총액 제한, 주요 쟁점과 개선방안’이란 보고서를 통해 “30대 그룹에 대한 출자총액 규제로 39개사가 회사 신설이나 계열사 증자 등의 신규투자를 못했고 그 금액이 5조2천억원에 달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며 경기부양을 위해서라도 출자총액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요구대로 출자총액 규제 조항 자체가 폐지되진 않았으나, 사실상 폐지에 준할 정도로 규제가 대폭완화되니 대환영할밖에.

***"지난 4년간 재벌들은 주로 부실 계열사 지원에 주력했었다"**

그러나 전경련의 주장은 상당부분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 12일 재경부 산하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금융연구원의 이동걸 연구위원이 상급기관인 재경부의 재벌 규제완화 방침에 역행하는 보고서를 내 상당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이위원은 지난해초 재경부가 4월 총선을 의식해 2차 공적자금 조성의 불가피성을 잘 알면서도 이를 이리저리 기피해 금융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을 때에도 “68조원 규모의 2차 공적자금 조성이 시급하다”는 충격적 보고서를 냈던 금융연구원의 ‘소신파’로 잘 알려져 있다.
이위원은 보고서에서 전경련 등 대기업 논리의 허구성을 ‘숫자’를 통해 날카롭게 반박했다.

“97년부터 2000년까지 지난 4년간 30대 재벌이 경쟁력 집중화 및 강화를 위해 동종산업에 출자한 비율은 23.1%에 불과한 반면, 선단식 경영체제 유지를 위해 부실 적자사에 출자한 비율은 무려 41%나 됐다. 특히 자산총액 5조원이상의 적자 계열사 출자비율은 무려 58%에 달했다.
연구결과를 종합할 때 지난 4년간 국내재벌은 수익성, 성장성을 무시하고 타산업에 속한 다수의 계열사에 무분별하게 출자했고, 선단식 경영체제 유지를 위해 적자 부실계열사를 지원하는 관행이 여전했음이 확인됐다. 이는 경영 역량을 핵심사업에 집중한다는 재벌 개혁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결과이다.”

그는 이어 재경부가 추진중인, 재벌 금융회사가 보유한 계열사 보유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 허용 움직임과 관련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금융기관 자산은 대부분 고객자산이다. 의결권 행사가 허용되면 재벌은 앞으로 막대한 규모의 고객자산을 활용해 계열사에 출자를 지원하고 영향력을 더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정책의 주무부처를 자처하는 재경부가 금융의 안전성을 저해하는 위험한 정책을 앞장서 추진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입유발만 우려되는 상류층 중심의 특소세 개편**

정부의 재벌정책 변질만 문제되는 게 아니다.
정부는 재벌정책 발표에 하루 앞선 지난 14일 역시 여당과의 정책협의를 거쳐 경기부양을 위해 특별소비세와 소득세를 대폭 인하하는 요지의 ‘2001년 세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개편안의 요지는 특소세의 경우 승용차는 내년말까지 1년동안 한시적으로 기본세율을 50% 낮추고, 에어컨과 골프.요트.스키 등 레저업종에 대해선 30%에서 20%로 낮추며, 프로젝션 TV와 고급사진기 등과 유흥업소에 대해선 아예 특소세를 없앤다는 파격적 내용이었다.
일반 급여생활자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득세에 대해선 종합소득세율을 10% 포인트 인하했다.

정부의 이번 세제 개편안은 경기부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실제로 사회윤리적 문제가 있기는 하나, 가진 사람들부터 돈을 써야 경기가 살아난다는 게 경제의 일반법칙이다. 그런 면에서 정부의 이번 세제개편안은 일견 경제원칙에 충실하고 있다.

그러나 한 거풀 속내를 들쳐보면 많은 문제점이 발견된다.

그런 대표적 예가 유흥업소에 대한 특소세 폐지이다. 유흥업소는 우리나라 전체업종 가운데 가장 탈루율이 높은 업종인 동시에 외제 다소비 업종이다. 우리나라의 고급양주 소비량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런 업종에 대한 특소세 폐지가 과연 얼마나 경기부양에 자극제가 될 지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다.

골프,스키,요트 등 레저업종에 대한 특소세 인하도 마찬가지 비판을 낳고 있다. 골프채의 경우 90%가 외제일 정도로 수입유발 효과가 큰 제품이다. 이런 부문에 대한 특소세 경감은 국내 경기부양 효과는 없고 수입 유발 효과만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이번 특소세 인하 속에 경기부양 이외의 다른 목적이 담겨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대목이다.

***세무조사도 내년 상반기까지 안하겠다**

국세청은 이에 앞서 지난 12일에 "내년 상반기까지 경제활력 회복을 위해 수출주력기업, 건설업, 지역경제 기반산업, 생산적 중소기업 등에 대한 세무조사를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밝혔다. 세무조사가 자제되는 수출주력기업은 연간 수출액이 매출액의 20%이상 되는 기업이라 하니, 사실상 대기업 거의다가 세무조사를 안받게 되는 셈이다. 정부는 전체 24만개 법인기업중 4만~5만개가 세무조사 자제대상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사실상의 기업 세무조사 중단 선언에 다름아니다.

이같은 일련의 DJ노믹스 변질 과정을 지켜보는 경제전문가들의 표정은 씁쓰름하다.
정부가 위기의 본질을 잘못 읽고 있는 데다가, 레임덕과 선거논리라는 비경제 변수까지 가세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길 없기 때문이다.

과연 왜 한국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주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실물보다 저평가돼 있는가. 과연 한국기업들의 경쟁대상은 정부나 시민단체인가, 아니면 외국의 대기업인가. 정부는 과연 이같은 물음에 대해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고 있는 것인가.

경제주체들이 밤을 하얗게 새우며 진지한 해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과거 정권교체기마다 연례행사처럼 퇴행을 반복할 시간적 여유가 우리에게는 더이상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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