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같은 철거민들이 이 땅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해 저 위태로운 하늘 끝 망루로 오르는 일이 없도록 이 잘못된 재개발을 바로 잡아주세요."
지난달 4일 철거민 박준경 씨는 마포구 아현동 재건축 지역에서 강제집행 뒤 집을 잃고 거리를 떠돌다 한강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용산참사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10년 전 장례식에서 눈물로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철거민들은 여전히 망루와 죽음 사이에서 서성이고 있다.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아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박주민 의원과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는 15일 국회에서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를 열고 제2의 용산을 막기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용산참사 희생자의 유가족인 전재숙 씨는 "10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고 아직도 철거민들이 내몰리고 쫓겨나고 죽어가고 있다"며 "관련법을 개정해서 동절기에도 집 밖으로 내몰리지 않고 동등한 삶을 살 수 있는 철거민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전 씨는 용산참사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 한국당 의원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용산참사 진압으로 공권력 투입해서 지시했던 김석기는 지금 국회의원이 돼서 국회의사당을 활보하고 있다"며 "그건 도저히 볼 수가 없다. 사람 죽이고도 공소시효 지났다고 처벌받지 않는 그 법을 바꾸려고 이 자리에 와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철거민 "사는 동안 괴롭히지 말아달라. 그것이 욕심이냐"
강제철거가 현재 진행 중이거나, 이미 강제집행이 완료된 지역의 희생자들도 증언을 이어갔다. 희생자들은 △옛 노량진 수산시장 △청량리 4구역 △서촌 궁중족발 △월계 2 인덕마을 △강남 우장창창 △파리바게뜨 효자점 등에서 자행된 폭력적인 강제집행 현장을 눈물로 증언했다.
백채현 전국철거민연합 청량리 위원장은 2015년 청량리 4구역에서 자행된 강제 퇴거에 대해 증언했다. 백 씨는 "청량리 구역의 주민들은 주민과 사전 협의 한번 없이 진행된 재개발 사업과 강제이주 강제철거에 반대하며 청량리 구역 주민들의 생존권 보장을 주장하며 투쟁을 시작했다"며 "청량리 조폭은 용역업체라는 이름으로 24시간 주민을 괴롭히고 감시했다"고 말했다.
백 씨는 경찰이 폭력적인 강제퇴거 과정에 대해 방관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이 자고 있는 시간에 집으로 벽돌을 던지거나 쇠파이프를 휘두르거나, 집에 있는 부녀자를 폭행하고 현행범이 오토바이를 타고가도 경찰은 수수방관만 했다"며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라는 유동렬 구청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7년 5월 18일 불법 용역 200여 명이 빠루와 해머로 온 집을 다 때려 부수는 불법집행과 철거를 감행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는 동안 괴롭히지 말아달라. 그것이 욕심이냐"며 눈물을 흘렸다.
석 달 째 단전, 단수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옛 노량진 수산시장에서도 강제집행의 현실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윤헌주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 공동위원장은 "물과 전기를 끊어서 (현대화된 수산시장으로) 강제 입주를 시키고 있다"며 "이러한 방식에 대해 대법원의 경종이 울리지 않으면 단전, 단수를 통해 강제집행을 하려는 시도가 보편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윤 공동위원장은 "옛 노량진 수산시장 부지 개발 계획이 없음에도 구시장 상인들을 내쫓겠다는 것은 과거 용산참사 이후 수년간 방치됐던 남일당 터와 다를바가 없다"며 "한국 사회가 사람이 먼저라는 것이 슬로건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폭력집행을 막기위해 △경비업법 △민사집행법 △집행관법 △행정대집행법 개선과 함께 '강제퇴거금지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사무국장은 "그동안 철거 폭력과 인권침해는 일정한 수준에서 법 의 보호아래 합법적 으로 이루어져왔다. 우리는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데 저들 철거민 이 법적인 업무를 방해한다는 논리는 어쩌면 틀리지 않는 말"이라며 "이제는 모든 법 상위에 '강제퇴거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이어 "강제퇴거금지법은 건설자본과 투기적 소유자의 재산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현행 개발사업에서 '주거권'보장과 '재정착'권리를 명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며 "'강제퇴거 금지'라는 원칙을 수립하기 위해 모든 거주민의 재정착 가능성까지 살피는 '인권영향평가'를 재개발 과정에서 실시해야 한다" 강조했다.
한편,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증언대회가 끝난 뒤 의원회관에서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이 담긴 플랜카드를 들고 "김석기가 죽였다"를 외치며 기습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오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용산참사 10주기 빈민대회:김석기 처벌, 강제철거 중단 결의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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