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2019년 기업인과의 대화'라는 주제로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국정 농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을 포함한 상위 25개 대기업 총수 22명과 카카오,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39개 중견기업 회장이 참석했다. 청와대 비서진뿐 아니라 경제 관련 각 부처 장관들도 총출동했다. 이날 행사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사회로 기업들이 애로사항을 토로하고, 정부가 답하는 형식의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들에게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독려하면서 법·제도적, 예산적 지원을 약속함으로써 힘을 실어줬다. 문 대통령은 "올해 세계 경제 둔화와 함께 우리 경제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정부와 기업, 노사가 함께 힘을 모은다면 얼마든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리 경제의 활력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들에게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한국 경제의 큰 흐름과 전환을 이끌어 왔다"고 치켜세운 뒤 "새로운 산업과 시장 개척에 여러분이 앞장서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정부는 올해 여러분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현장의 어려움을 신속하게 해소하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먼저 일자리 문제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300인 이상 기업은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좋은 일자리이고, 좋은 일자리 만들기는 우리 경제의 최대 당면 현안"이라며 대기업 총수들에게 "지금까지 잘해오셨지만 앞으로도 일자리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고용 창출에 앞장서달라"고 당부했다.
기업 투자와 관련해서는 "여러 기업들이 올해부터 대규모 투자를 계획 중인데, 정부 내 전담 지원반을 가동해 신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돕겠다"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선도하는 경제로 나아가는 데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주역이 되어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20조 원대에 달하는 2019년 연구개발 예산을 통해 "수소 경제, 미래 자동차, 바이오산업, 에너지 신산업, 비메모리 반도체, 5G 기반 산업, 혁신 부품과 소재 장비 등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커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규제 완화 입증 책임, 기업 아닌 공무원에게 돌리자"
이어진 자유 토론에서 사회를 맡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사적인 이해에 국한된 개별 기업의 소원 수리 형식의 제안은 지양하고, 가급적이면 제도나 정책,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개별 기업의 민원과 구별되지 않는 규제 완화와 관련한 소원수리가 쏟아져 나왔다.
가장 먼저 질의권을 얻어낸 황창규 KT 회장은 "인공 지능(AI)이나 빅데이터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개인 정보 보호 규제를 좀 더 풀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답변에 나선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정부·여당이 발의한 '빅데이터 경제 3법(개인 정보 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소개하며 관련 지원을 약속하는 한편, "빅데이터를 어떻게 미래 먹거리 산업 측면으로 연결할지 기업과 정부, 이해관계 당사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답했다. 개인 정보 보호 규제 완화는 시민단체가 '인권 침해'를 우려해 반발하는 사안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경제 민주화법'을 없던 일로 해달라고 민원을 넣었다. 손 회장은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일부 기업이 우려하고 있는 대목도 있다"며 "법 개정보다 시장의 자율적 감시 기능을 통해 기업이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 투자 확대에 매진토록 해 달라"고 말했다.
답변에 나선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입증 책임을 공직자가 갖도록 하자는 것은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며 "국정 전반에 걸쳐 모두 할 순 없지만, 굉장히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직자가 입증 책임이 안 되면 과감하게 없애보는 시도를 저희가 해보겠다"고 맞장구쳤다.
문 대통령도 "규제 혁신을 위해서 법률의 개정이 필요한 부분은 우리가 입법 절차상 시간이 걸리겠지만, 행정 명령으로 이뤄지는 규제 같은 경우는 우리 정부가 더 선도적으로, 집중적으로 노력해주시기 바란다"고 거들었다.
이날 행사에서 관심을 모은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자리였다. 이재용 부회장은 문 대통령 바로 옆은 아니지만 문 대통령 바로 왼쪽 뒤에 앉는 배려를 받았다. 정면에서 봤을 때 문재인 대통령의 왼쪽 뒤에 이재용 부회장, 오른쪽 뒤에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앉았다.
2016년 "재벌도 공범"이라는 촛불 집회 구호로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 씨와 더불어 '국정농단'의 주역으로 꼽히던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2일 새해 첫 청와대 공식 행사였던 신년회에 초청받은 데 이어 이날 문 대통령 지근거리에 자리를 배정받음으로써 화려하게 복귀했다. 집권 첫해인 2017년까지만 해도 이재용 부회장은 '불법 비리로 수사나 재판을 받거나 사회적 물의를 빚은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문 대통령의 경제사절단에서 제외됐었다.
발언 기회를 얻은 이재용 부회장은 "작년 하반기부터 수출 실적이 부진하면서 국민에게 걱정을 드린 점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설비와 기술, 투자 등을 노력하여 내년에 이런 자리가 마련되면 당당하게 성과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해 문 대통령에게 내년에도 자신을 초대해달라는 뜻을 내비쳤다. 이 부회장은 "대한민국 1등 대기업으로서, 작년 숙제라고 말씀드린 '일자리 3년간 4만 명'은 꼭 지키겠다"고도 했다.
행사가 끝나고 문 대통령과 산책할 기회를 누가 얻느냐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문 대통령은 이재용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최태원 SK회장, 구광모 LG회장 등 4대 재벌 총수와 함께 산책함으로써 이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4대 재벌 총수 외에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회장,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방준혁 넷마블 의장만이 문 대통령과 산책할 기회를 얻었다. 사회자였던 박용만 의장을 제외하면 행사 참가 기업인은 대기업 22명, 중견기업 39명 등 총 61명이었지만, 그 중 8명만이 선택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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